맨발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부처님께서도 열반하셨을 때 
관 밖으로 맨발을 보이셨다

아카시아 향기를 전신에 감고 
맨발에 달빛을 감발하고 걸으며 
‘나는 무엇인가’ 수없이 되뇌었든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어린아이 눈에 비치는 솜사탕처럼, 가로등은 타원으로 서서 명멸하고 있다. 구민 운동장을 맨발로 걷고 있는 오월의 밤, 진한 아카시아 향기에 현기증이 난다. 누나가 시집갈 즈음, 항상 풍기든 향긋한 화장냄새와 다른 이 매력적인 향기는 전신을 몽롱하게 한다. 보도블록으로 나가 아카시아 나무아래 선다. 더 진한 향기가 전신을 감아올린다. 나를 놓칠 것 같은 향기의 소용돌이에 풍덩 빠져 잠시 멍청해 지면서, 아카시아 나무를 올려다본다. 가로등 불빛이 미처 닿지 못한 아카시아 군락이 부엉이의 큰 날개처럼 우렁우렁 보인다. 가까이는 아카시아 흰 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로등 불빛을 되쏘면서 몽환의 풍경을 만든다. 아카시아의 군락 위로 밤하늘이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그 가운데 쯤 하현달이 떠 있다. 달은 달무리를 거느리고 밤하늘에 신비의 달빛을 흩뿌린다. 나는ㅋ 자신도 모르게 아! 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저 넓디넓은 우주의 공간, 별마저 흐릿한 도시의 밤하늘에 마치 어린왕자의 오아시스처럼 아름다운 달이 은은히 떠있다. 나의 마음은 아카시아 향기를 건너, 달과 달무리를 향해 헤엄쳐 나간다. 코와 입으로 달빛을 들이마시며, 그 경이로운 환상의 하늘을 인어처럼 배영으로 헤어 나간다. 누구나 가질 수 있으면서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달, 오월의 하현달은 우주로 건너가는 문이 되어 활짝 열려있다. 그 팍팍하게 살아온 삶의 몸통은 한줌도 안 되는 빛의 줄기를 따라, 우주의 공간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어느 것도 세상에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어짐으로 이것도 없어진다. 나의 몸에는 무수한 이것, 저것이 한 테 뒤엉켜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저 우주를 유영하는 나는 단지 하나의 꿈이고, 헛것이고, 물거품이고 그림자일 뿐이다. 과연 나는 무엇일까. 

그 때 오월의 밤바람이 술렁술렁 불어온다. 아카시아 잎이 휘날리고, 그 향기는 진한 감동이 되고, 나의 잠자는 음악이 된다. 그렇게 현실로 돌아 왔을 때, 저 오월의 달밤은 삶의 비밀을 속삭여 주는 공간이 된다. 다시 운동장으로 들어와 걷는다. 달빛이 맨발을 적신다. SBS 스페셜 ‘걸음아 날 살려라’가 실감난다. 신발에 꽁꽁 갇혀있던 발이 해방된다. 맨발로 걸으면 발을 펴고, 굽히고, 비트는 갖가지 운동이 된다. 엄지발가락부터 다섯 발가락이, 뒤꿈치부터 발바닥 근육이 다 골고루 움직이므로 그 효과가 탁월하다. 맨발걷기는 혈액순환, 두통해소, 당뇨예방, 치매예방, 피로회복, 항 노화효과도 있다. 그야말로 만병통치의 치유법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신발을 신기 시작했을까. 신발을 신고 인간은 자연과 멀어졌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발을 신고부터 땅에, 자연에 못쓸 짓을 하게 되었다. 고대 왕릉에서 왕이 신던 황금신발이 발굴된다. 신발은 인간의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였다. 맨발로 걸으면, 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의 본성을 회복하게 된다. 맨발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부처님께서도 열반하셨을 때, 관 밖으로 맨발을 보이셨다. 구민 운동장을 열 바퀴 돌았을 때, 오월의 하현달은 제법 기울어져 있었다. 아카시아 향기를 전신에 감고, 맨발에 달빛을 감발하고 걸으면서, ‘나는 무엇인가’를 수없이 되뇌었든 그 오월의 달밤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불교신문3397호/2018년6월6일자] 

김찬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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