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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특집] 영축총림 방장 성파스님
“좋은 것 많이 먹는다고 몸에 다 좋더냐?”
[원로의원 스님에게 듣다]이 시대에 필요한 부처님 오신 뜻
  • 통도사=박봉영 기자│사진=신재호 기자
  • 승인 2018.05.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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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총림 방장 성파스님은 “부처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탄생 일구를 통해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불국토임을 일깨워주셨다”며 “각자가 가지고 있는 존귀한 가치와 능력으로 감동적인 삶을 살으라”고 당부했다.

부처님 이 땅에 오신 뜻은
‘여기가 불국토’ 일깨운 것
각자 존귀한 가치·능력으로
감동적인 삶 살라는 의미

“부처님오신날 절 풍경은
더 화려하고 규모 커졌지만
정성·의미 새기는게 더 중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조계종 원로의원 성파스님을 만나기 위해 지난 3일 통도사를 찾았다. 초입부터 내걸린 연등과 장엄등으로 봉축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얼마전 영축총림 방장으로 추대된 성파스님은 추대법회를 거절했다. 여법하게 방장 추대법회를 열어 모시고 싶다는 통도사 대중들의 청을 마다하고 추대법회에 쓸 비용을 우리 사회의 어려운 곳에 쓰라고 당부했다. 이에 통도사 주지 영배스님은 추대법회에 들어갈 비용 5000만원을 공익기부법인 아름다운동행을 통해 소아암 환우 돕기 기금으로 기부했다.

성파스님의 주석처는 통도사를 끼고 영축산 깊숙이 분지에 자리잡은 서운암이다. 초막으로 있던 인법당을 손수 일궈 오늘의 서운암으로 바꾼 장본인도 성파스님이다. 성파스님은 통도사 주지 소임을 내려놓은 뒤 1991년부터 이곳 서운암에 머물며 도자대장경 불사를 시작했다. 10년에 걸쳐 남북 통일 발원을 담은 도자대장경 조성이라는 대작불사를 일궈냈다. 2013년 도자대장경을 봉안한 장경각 불사를 마무리하기까지 28년의 세월을 하루처럼 헌신했다. 숱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성공한 도자대장경 불사는 성파스님의 대원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성파스님은 “이 시대를 사는 불자들의 염원을 담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이런 불사는 반드시 기록으로 남아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스님은 “일제시대 때 우리 스님들이 독립운동을 참 많이 했는데, 한국독립운동사를 보면 스님들 이야기가 다 빠졌다”며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라고 우려했다.

2600년을 이어온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양한 형태로 전해져왔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불교는 700년전 고려팔만대장경을 탄생시켰다. 지금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초조대장경에 이은 찬란한 기록물이다. 거란의 침입에 맞서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초조대장경이 각판됐고, 몽고의 침입으로부터 국가와 민족을 지켜내고자 팔만대장경이 탄생했고, 오늘날 자랑스런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성파스님의 16만도자대장경 불사는 이에 버금가는 대작불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파스님에게 부처님오신날 불자들에게 들려줄 법문을 미리 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핀잔이었다. 성파스님은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슨 법문을 하겠느냐”면서 “모르는줄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일침했다. 헛헛한 웃음을 보이던 스님은 대신 부처님오신날 절 풍경에 대한 말을 꺼냈다. 처음 출가했을 때 보다 봉축행사가 더 커지고 멋있어졌다고 했다. 성파스님은 1960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눈밝은 선지식을 찾아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 만행하던 시절을 제외하곤 계속 통도사에 머무르며 선농일치의 가풍을 이어왔다.

부처님오신날이 사월초파일로 불리던 출가 당시엔 사찰에 내걸리는 연등을 모두 손으로 만들었다. 대나무와 철사로 등살을 만들고 연잎의 주름을 접어 풀칠했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고는 연등을 만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엔 직접 만드는 등을 보기 힘들어졌다. “그땐 그랬지”하고는 당시를 회고하며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성파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일 보다 사찰에서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하지만 화려하고 규모가 커진 만큼 정성과 의미를 마음에 새기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당부했다.

성파스님은 들꽃축제가 한창인 서운암에서 9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만드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큰절의 염화실에 머물지 않고 산내암자에 있는 이유였다. 부처님오신날이라고 하던 일을 일손을 놓을 수는 없다. “내가 나가면 다들 불편해진다”고 했다. 배려였다.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물었다. 물끄러미 찻잔을 들여다보던 성파스님은 “다 아는 얘기를 왜 묻느냐”고 타박했다. “부처님의 탄생 일설인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일체중생이 모두 존귀하다는 말씀이라는 것쯤은 다 아는 얘기 아닌가”하더니 “각자가 가지고 있는 존귀한 가치와 능력으로 감동적인 삶을 살으라는 옛날식 표현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 스님네들은 중생의 고통을 해소하고 중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하는걸 수행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며 “부처님은 무량한 숫자의 아라한보다 청정성을 잃지 않은 화합승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일깨웠다. 불자들에게도 “청정승가, 화합승가를 유지할 수 있도록 불자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것도 부처님오신날에 되새겨야할 가르침”이라고 꼽았다.

성파스님의 법문의 깊이가 점점 깊어졌다. 또한 한국불교와 승가에 대한 걱정과 우려도 쏟아냈다. 무엇보다 신심 부족을 꼬집었다. 스님은 “신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감동이 없고, 감동이 부족하니까 자꾸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라며 “스님들의 위의가 여법하고 바르면 법도 존중 받겠지만 스님들이 여법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감동이 일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행여 생명력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화엄경>을 아느냐고 물었다. 답이 나오기도 전에 사람들이 다 아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화엄경의 핵심이라고 했다. 성파스님은 ‘야마천궁게찬품’을 언급하며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하니 能畵諸世間(능화제세간)이라.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붓과 같아서 능히 모든 세간을 그려낸다는 의미”라고 했다.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어떤 가르침을 접하고 어느 정도의 신심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각자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긍정적인 안목으로 부처님과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원력보살이 모여 사는 보살의 공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파스님은 “범부중생의 공업이 아닌 불보살의 공업, 원력보살의 공업이 활발하게 실천되는 사회를 불국토라 할 수 있는데,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가 바로 이 땅이 본래 불국토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며 “이 보다 더 확실한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성파스님은 할 말 다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작업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스님을 따라 나섰다. 말없이 걷다가는 확트인 서운암 아래를 내려다보이는 곳에 섰다.

어려운 경전 이야기는 빼고 쉬운 말로 하겠다며 성파스님은 “좋은 음식이 많고 많지만 그게 다 몸에 좋은 것은 아니듯 적당히, 알맞게 먹어야 한다”면서 “많이 안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고 타일렀다. 필요한 만큼만 알면 된다는 당부였다. 

영축총림 방장 성파스님.

성파스님은

1960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 문하로 득도했다. 통도사 전문강원을 졸업한 후 1970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봉암사 태고선원을 시작으로 제방의 선원에 방부를 들이는 등 치열한 정진을 이어갔으며, 통도사 서운암에 주석한 이후 무위선원을 열어 납자들을 맞아들였다. 서운암을 손수 일구며 선농일치의 가풍을 세웠다. 남북 통일의 염원을 담아 1991년부터 28년에 걸쳐 도자삼천불과 16만도자대장경을 조성하고 장경각을 세웠다. 사경과 선서화, 불화, 도예 등 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고 문학에 대한 애정이 많다. 통도사 주지와 제5,8,9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고, 종단이 어려울 때는 총무원 교무부장과 사회부장을 맡아 솔선했다. 조계종 최고법계인 대종사 법계에 올랐으며,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과 영축총림 방장으로 있으면서 후학을 제접하고 있다.

통도사=박봉영 기자│사진=신재호 기자  bypark@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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