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총림 동화사서 불기2562년 대종사 법계품서식 봉행

불기 2562년 대종사 법계품서식이 17일 팔공총림 동화사 통일기원대전에서 봉행됐다. 사진은 진제 조계종 종정예하가 대종사 법계를 품수받은 전 교육원장 무비스님에게 가사를 수여하는 장면.  신재호 기자

진제 조계종 종정예하 법어 통해
“수행풍토 진작·승가화합 우선” 설해
원로의원 성타스님 등 대종사 법계 품수
불법 증장 종단 발전 위해 용맹정진 발원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품서식이 17일 팔공총림 동화사 통일기원대전에서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대종사 법계품서식은 조계종 법계위원장 종진스님의 고불문 낭독을 시작으로 헌화, 법계증과 가사수여, 불자봉정, 청법게, 종정예하 법어, 기념촬영 순으로 여법하게 진행됐다.

진제 종정예하는 이 자리에서 원로의원 성타스님과 지하스님, 보선스님, 법타스님, 철웅스님, 기림사 주지 덕민스님, 전 교육원장 무비스님, 법계위원 법산스님, 금봉선원 선원장 혜국스님, 전등사 조실 세연스님, 법계위원 무관스님, 축서사 주지 무여스님 등 총 12명의 스님들에게 대종사 법계증과 가사를 수여했다. 원로의원 월주스님과 봉암사 수좌 적명스님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법계를 품수 받은 스님들은 가사를 이마 위로 올리는 정대를 행하고, 진제 종정예하에게 받은 가사를 수한 뒤, 부처님 전에 삼배의 예를 올렸다. 이어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깨달음과 지도자의 상징인 불자(拂子)를 봉정했다.

종정예하 법어.

진제 종정예하는 이 자리에서 법어를 통해 “마음은 근본이요, 법은 티끌이라. 두 가지는 거울 위의 흔적과 같은지라 흔적이 다할 때 빛이 비로소 나타남이요 마음과 법을 쌍으로 잊을 때 성품이 곧 참이라”고 설했다. 

그러면서 “우리 조계종은 뼈를 깎는 성찰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급변하는 시대환경에 부응하고, 규거준성의 종강을 바로 세우고 수행풍토를 진작하고 승가 화합에 우선해야 할 것”이라며 “연민과 자비로 구세대비의 행으로 대중들을 섭수하고 행화에 매진해 종지종풍을 부양하고 무상의 불법이 구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인천의 사표인 대종사의 출현은 종도들이 삼보에 대한 신심과 원력을 키우고, 여법하게 수행해 삶 속에서 체현되어 세상을 맑게 밝히는 연등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원로의장 세민스님도 축사를 통해 “승단을 화합과 단결로 인도하시어 정법으로 당간지주를 드높이고 불조 혜명이 면면히 계승되도록 불퇴전의 정진을 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총무원장 설정스님도 치사에서 “오늘 대종사 법계를 품서 받은 대종사들께서는 긴 세월 동안 부단한 정진으로 오늘에 이른 분들”이라며 “대종사 스님들의 큰 원력과 공덕의 힘이 이 나라 방방곡곡에 스며들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무여스님(왼쪽)에게 불자를 봉정하는 총무원장 설정스님.
발원문을 낭독하는 성타스님.

이에 대종사 스님들은 발원문을 통해 모든 사부대중이 성불에 이를 때까지 물러남 없이 용맹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대표로 발원문을 낭독한 성타스님은 “이 인연공덕으로 불법이 더욱 증장하고, 종단은 나날이 발전해 법의 수레바퀴를 쉼 없이 굴릴 것”이라고 서원했다.

대종사란 수행력과 지도력을 갖춘 승랍 40년 이상의 스님에게 주는 법계로 종단 최고 지위에 해당된다. 종단 지도력의 상징으로써 종단 위계 서열의 기본인 대종사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증득함은 물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승가의 지위를 뜻한다. 대종사 법계는 법계위원회의 심의와 중앙종회의 동의, 원로회의의 심의 등을 거쳐 종정예하가 거행하게 된다.

법계품서식 직후 기념촬영.

이날 대종사 법계를 품수 받은 스님들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손꼽힌다.

성타스님은 월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2년 3월 학성선원에서 금오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8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98년과 2006년, 2010년에 불국사 주지를 맡아 교구발전과 화합에 힘을 기울였다. 1980년부터 제6, 7, 8, 9, 10, 11대 중앙종회의원을 지냈다. 1995년 포교원장을 맡아 종단 포교행정의 기틀을 다졌으며, 2016년 3월부터 1년여 간 호계원장을 맡아 청정승단을 위한 종단 승풍 진작에 진력했다.

월주스님은 금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54년 3월 법주사에서 금오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6년 10월 화엄사에서 금오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과 총무부장을 거쳐 1980년 제17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선출됐지만, 10·27 법난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1994년 개혁종단이 들어서면서 제28대 총무원장에 취임해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에 진력했다. 스님은 2003년부터 지구촌공생회를 통해 저개발국가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하스님은 추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0년 7월 법주사에서 추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0년 4월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제5, 6, 7, 9, 10, 11, 12대 중앙종회의원을 지냈으며, 제12, 13대 중앙종회의장을 역임했다. 지하스님은 제13교구본사 쌍계사 주지를 역임하고, 중앙승가대 총장, 남원 실상사, 서울 개운사 주지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법융사 주지를 맡고 있다.

보선스님은 1966년 3월 용암사에서 천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2년 3월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보선스님은 화순 용암사, 봉암사, 송광사, 마곡사, 백담사 무문관, 대흥사 등지에서 32안거를 성만했으며, 총무원 호법부장, 제22교구본사 대흥사 주지, 제14대 15대 중앙종회 의장, 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한국다문화센터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흥사 조실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법타스님은 추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7년 1월 법주사에서 추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7년 4월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총무원 총무부장,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주지, 동국대 정각원장, 경주 기림사, 동두천 자재암 주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철웅스님은 일현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8년 1월 마곡사에서 지정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9년 4월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제6교구본사 마곡사 주지를 지낸 철웅스님은 제9대 중앙종회의원, 법규위원, 광덕사와 공주 갑사, 제천 고산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종정예하에게 수여받은 가사를 봉대하는 대종사 스님들.
법계품서식을 마친 후 신도들과 기념촬영.

덕민스님은 종한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56년 3월 범어사에서 종한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8년 3월 범어사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청암사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했고 합천 태동서사에서 사서삼경을 수학했으며 1973년부터 1974년 까지 법장사 주지를 역임했다. 1999년 10월부터 2003년 11월까지 부산 범어사승가대학 학장을 지냈다. 현재 석림금강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무비스님은 여환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58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5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탄허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스님은 통도사·해인사·범어사 승가대학장 및 종립 은해사승가대학원장, 조계종 교육원장, 동국대 역경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동안의 공로로 2002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0년 중앙승가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일생을 경전연구에 매진한 대강백 무비스님은 국내 최초로 <대방광불화엄경> 81권 모두를 해설한 강설집을 최근 선보여 큰 주목을 받았다.

적명스님은 우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0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6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평생 토굴과 암자에서 수행정진해온 스님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승 중 한명으로 꼽힌다. 영축총림 통도사 선원장, 고불총림 백양사 선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종립특별선원 봉암사 태고선원 수좌이며, 우리나라 선풍의 상징인 봉암사를 수행중심도량으로 만들어가는 일에 진력하고 있다.

법산스님은 덕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1년 화방사에서 정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3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법산스님은 1968년부터 동국대 선학과 교수로 임용돼 25년간 후학양성에 앞장섰다. 동국대 불교대학장, 한국정토학회장, 정각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1년 2월 정년퇴임했다. 조계종 고시위원장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와 조계종 법계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혜국스님은 일타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2년 해인사에서 혜수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0년 범어사에서 혜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장경각에서 10반배 발심정진과 소지공양을 올리고 태백산 도솔암에서 장좌불와 정진한 선지식이다. 성철, 경봉, 구산스님 등 당대 내로라하는 선사들의 회상과 제방선원에서 수행정진에 진력해 왔다. 현재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에 주석하며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다.

세연스님은 서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3년 직지사에서 고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1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으며, 흥국사, 유가사, 전등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현재 강화 전등사 조실이다.

무관스님은 희섭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4년 향천사에서 보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2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무관스님은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조계종 계단위원회 위원, 조계종 의제실무위원회 위원장, 조계종 법계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무여스님은 희섭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8년 용주사에서 탄허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1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무여스님은 상원사 동화사 송광사 해인사 관음사 칠불사 망월사 등 제방 선원에서 20년 동안 수선 안거했다. 1988년부터는 축서사에서 제방의 수좌들과 재가불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조계종 초대 기초선원 운영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선의 가풍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온힘을 쏟고 있다. 무여스님은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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