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편 나눠 싸우는데 익숙
다른 의견 존중 소통 풍토 취약해
판문점만찬 야당소외 매우 아쉬워
북한 미국 겸허한 자세로 대했 듯
우리 내부 반대편 설득 왜 못하나

4·27 판문점 선언.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는 종전 65년 만에 마침내 평화체제로 성큼 나아갈 계기를 마련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은 상대에게 돌리고, 평화라는 실질적 성과를 얻는 데 주력하는 실용주의적 태도로 임했다. 그렇게 남의 의견을 들어주고 배려하다보니 대통령이 저절로 ‘한반도 운전자’가 되었다. 스스로 운전자임을 내세웠다면 주변부로 밀려났을 터인데 조정자가 되려고 낮추니 오히려 상황을 주도하는 것을 보면서, 겸손의 미덕이 갖는 힘을 생각하게 된다. 남의 행복을 위해 애쓰다보면 내 행복은 덤으로 얻어진다는 경전의 말씀도 틀림없음을 확인한다.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 회담에서 큰 틀의 합의를 이루더라도 ‘완전한 비핵화’라는 원칙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두고, 북미간, 남북간 많은 차이점들을 녹여내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최소 2~3년에 걸친 이행기간은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레 임해야 할 것이다. 최근 영국, 프랑스 등 동맹국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는 미국의 태도에서 보듯 합의를 이룬다 해도 굳건하게 지속되리란 보장도 없다. 

이런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을 극복할 힘은 결국 남북이 얼마나 서로를 신뢰하며, 협력의 끈을 놓지 않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데 남북 신뢰도 그 토대가 취약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긍정평가가 70%에 달할 정도로 크게 달라졌다지만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서로 적대해 온 공업의 상처를 씻고 평화의 길로 굳건하게 나아가려면 정치적 외교적 역량만으로는 부족하다. 남과 북 모두 지금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평화역량’이 쌓여야 한다. 당장 대통령과 정부부터 사회적 대화와 합의 경험이 매우 일천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싸우는데 익숙해져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소통하는 풍토가 매우 취약하다. 평화의 빈곤 상태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점에서 이번 판문점 만찬에 보수야당을 뺀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정부가 이렇게 다수의 지지를 앞세워 소수를 고사시키는 방식을 고집해서는 내적 평화역량이 길러지기 어렵다. 이제라도 보수정당, 보수단체들의 두려움과 염려를 듣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민의 평화역량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정치 외교 평화는 금세 위태해진다. 남한 내부에서조차 차이를 존중하고 평화롭게 소통하지 못한다면 지난한 과제들을 헤쳐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정부와 대통령이 먼저 정성을 다해 반대자들을 만나야 한다. 미국과 북한을 설득할 때 스스로를 겸허히 낮추고 상대에게 공을 돌리는 자세로 성공하였듯, 보수정당이나 탈북자들의 극단적 언행도 배제하고 내몰기보다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대통령부터 ‘내로남불’을 넘어 겸허하고 진실된 몸짓을 보인다면, 평화라는 용광로에서 녹여내지 못할 것은 없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촛불혁명 때 놀라운 주권의식, 성숙한 평화역량을 결집하였다. 지금도 언제든 정부를 든든하게 뒷받침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는 시민들의 평화역량이야말로 앞으로 전개될 숱한 어려움을 헤쳐 갈 원동력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남북정상이 합의한 대로 평화가 돌이킬 수 없는 강물로 한반도를 흐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불교신문3393호/2018년5월16일자] 

정웅기 논설위원·생명평화대학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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