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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에세이] 오월, 찬란한 슬픔의 달 

내가 살고 있는 강화도 오두리 마을은 장미꽃이 흔해서 마을 전체가 환하다. 오월의 맑은 햇살이 장미에 취한 듯 흔들리는 걸 보게 되면 저절로 걸음이 멈춰진다. 그때마다 가슴이 저려오는 슬픔 한 자락이 내 애간장을 녹인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입원하셨던 병실 창밖에 핀 장미 한 송이가 내 눈 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엄마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엄마는 창밖을 보고 계시다가 내가 부르는 소리에 얼굴을 돌리며 빙그레 웃으셨다. “여기 와서 저 장미를 좀 봐, 얼마나 이쁜지…” 나는 엄마 옆으로 다가가서 장미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함과 동시에 오 헨리 소설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 존시가 떠올라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장미꽃은 이미 지기 시작해서 붉은 꽃잎들이 몇 잎 떨어져 나가서 이삼일이면 모두 떨어져버릴 것 같았다.

소설에서는 주인공 존시가 폐렴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창밖 담벼락에 붙어있는 마지막 나뭇잎이 떨어지면 자신의 삶도 끝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건물 아래층에 사는 노년의 화가 역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였지만 젊은 존시를 위해, 생애 최고의 걸작인 담쟁이 잎을 그려서 존시를 살려내고 자신은 죽음을 맞는다는 줄거리로 무명화가의 마지막 생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명작이다. 

그날, 나는 병실을 나오면서 엄마를 위해 후원에 핀 장미가 시들기 전에 조화라도 구해서 대처해 놓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집안 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엄마의 부음을 듣고 말았다. 결국 내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도 못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 기억이 작년 오월, 17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아침 산책 중에 아치형 대문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장미꽃을 보면서 ‘참 이쁘다’라는 내 입속말에 스스로 놀라 소스라쳤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의 병실 밖 장미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올해 역시 며칠을 장미꽃 앞에서 마음을 빼앗기고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내일모레가 어버이 날이라고 가슴을 쓰다듬고 눈물을 질금거렸다. 나이가 들수록 한 해가 다르게 부모님이 그립다. 아마도 그래서 장미의 기억은 엄마가 보내준 오월의 선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오늘을 후회 없이 사는 일이 최선이었다. 마침 어린이날이라고 손주들과 아들 내외가 찾아온단다. 나는 부리나케 시장을 보고 음식들을 장만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할머니’를 외치며 품에 안기는 손주들 때문에 내 속앓이는 봄눈 녹듯 녹아버리고, 세 살배기 주아와 초등하교 1학년생인 상우와 함께 딱지도 치고, 공치기도 하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인들 못할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 했다.

밤늦게까지 노느라 피곤에 지쳐서 늦잠을 잘 줄 알았던 아이들이 새벽같이 일어나 할미를 찾더니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할머니 어제 너무 재미있었어, 상우의 상기된 볼에 내 얼굴을 비비자 주아가 달려와 안긴다. 할미 나하고 숨바꼭질 해. 내가 숨을 게. 그래 좋아, 아이들은 후다닥 새털처럼 날아가 숨을 곳을 찾느라 부산스럽다.

경전에서는 자비란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덧없음을 느낄 때 생겨난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이어져 있음을 이해할 때 생겨난다고도 했으니, 행복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그리움과 아픔은 사랑에서 솟는 것이 분명하리라. 

[불교신문3393호/2018년5월16일자] 

안혜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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