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정희성 시 ‘그리운 나무’에서


두 그루의 나무가 있다. 두 나무는 사모하는 관계이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나무는 서로를 향해 가지를 뻗어가고,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오가게 하고,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낸다. 요지부동으로 서 있는, 무정하게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에게도 이처럼 부드럽고 애타는 마음이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나무에게도 그리운 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운 나무가 있어서 바람도 일어나고, 바람도 불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생명 존재들의 관계가 이러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든 생명 존재들 사이에는 마음 속 깊은 곳에 보고 싶은 마음이 날마다 간절하게 자라고, 벌과 나비가 연모하는 마음의 서신을 전달하고, 바람도 활발하게 불어가고 불어올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의 교신은 나지막하지만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가. 

[불교신문3392호/2018년5월12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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