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야말로 부처님보다 더 소중한 존재”

“누더기 한 벌에 만족하고 
풀 죽 한 그릇에 배부르니
이같이 걸림 없는 장부라면
어느 장자인들 당할 손가”

“묵은 땅서 새 사람 나지 않아”
총무원장 등 중책 역임하고도
서울 법수선원 함양 황대선원
산청 해동선원 ‘禪佛場’ 개원 

수행자엔 호랑이처럼 ‘경책’
팔순에도 인재불사 놓지 않아

성수대종사는 늘 “법당·종 불사보다 사람 만드는 불사 펴겠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구순에 이른 나이에도 늘 새끼사자가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조석으로 향불올려 부처님께 비옵나니/ 국가민족 화목하여 평화통일 이루어서/ 세상모두 안정되며 어느누구 할것없이/ 묘한이치 깨달아서 영원불멸 하여지이다/ 저희들이 날적마다 지혜마음 자라나서/ 석가모니 자비덕과 노사나불 힘을입고/ 아미타불 원과같이 문수지혜 얻고얻어/ 보현같이 행을닦고 지장같은 원을세워/ 관음같이 다니면서 시방세계 누구든지/ 여래진의 얻게하며 듣는모두 재앙없고/ 보는전부 해탈하여 이와같은 교화정신/ 언제라도 쉬지않게 하여지이다/우리절에 오는대중 너나모두 차별없이/ 보살마음 닦고닦아 지은복이 락이되고/ 삼보도량 수호신과 선망부모 무주고혼/유정무정 누구든지 밝은지혜 얻어지이다” -<발원문>

활산당(活山堂) 성수(性壽, 1923~ 2012)대종사는 스스로 쓴 발원문 그대로 수행자의 한 생을 산 선지식이다. “자연은 석 달 여섯 달 길어야 1년을 주기로 날 때 나고, 클 때 크고, 꽃 필 때 꽃 피고, 마침내 익어서 결실을 보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은 육십 지나 칠십 팔십 평생을 살아도 익을 줄 모릅니다. 사람으로 났으면 훌륭한 스승을 만나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워서 사람답게 살고 가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사람 키우는 일’에 열성 

성수스님은 ‘사람 키우는 일’에 열성을 다했다. “묵은 땅에서는 새 사람이 나지 않는 법”이라면서 칠순이 넘어서도 ‘인재불사’의 원력을 이어나갔다. 1973년 서울에 법수선원을, 1994년 경남 함양에 황대선원을, 2002년 경남 산청에 해동선원을 열었다.

“산중에 큰 절이 많고, 도회지에 포교당을 세우셔서 교육불사를 하셔도 되는데 굳이 노년에 함양·산청 산골짜기 외진 곳에 계실게 있느냐”는 아랫사람의 말에 스님은 “새 곳에서 새 사람을 기르겠다”는 의지를 폈다. 큰 절 주지, 총무원장, 대종사, 전계대화상, 원로의원 등 종단의 중책을 역임한 스님이기에 당신의 원력은 새로운 가르침으로 후학을 경책한다.

성수스님은 “나 자신이야말로 부처님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이를 생각하고 알고 사는 사람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불자라면 부처님 뜻을 알고 믿어야 한다. 이 절 저 절 많이 다녔다고 자랑은 하면서 일상행동에는 불자다운 모습은 고사하고 인간다운 면이 하나도 없는 사람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입을 모아 ‘절에는 많이 다녔어도 지옥 갈 사람은 저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면서 불자들을 경책했다.

“누더기 한 벌에 만족하고/ 풀 죽 한 그릇에 배부르니/ 이같이 걸림 없는 장부라면/ 어느 장자인들 당할 손가.” 출가수행자에게 주는 스님의 말이다.

성수스님은 1923년 음년 2월2일 경남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상작마을에서 아버지 이은영(李殷榮)공 어머니 정모심화 여사의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32년 10살 어린 나이에도 ‘나도 한 번 원효대사 같은 인물이 되어보리라’고 마음먹었다.

1941년 출가의 뜻을 품고 이 산 저 산으로 도인을 찾아다니다 범어사에 발길이 머물게 되었다. 법당 앞에서 “큰 중 나와라. 새끼 중은 가고 큰 중 나와라”고 큰소리를 내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1년 동안 원효대사 같은 도인을 찾아다녔으나 보이지를 않고 절간에는 한가한 중들뿐이니 불교가 백년을 못 갈 것이요, 그로인해 나라도 위태롭게 생겼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소. 나를 이해시키시오. 그러지 못하면 지금 당장 범어사를 불 지르겠소.”

世上萬事無非道 宇宙萬物無非禪 

“세상의 모든 일이 도(道) 아닌 것이 없고/ 우주의 억만 모양 모양이 그대로가 진리요 저마다 하는 짓이 다 도(道)이니라.” 

이 때가 스님 나이 19살. 당찬 기개를 보인 그가 나중에 범어사의 주지가 된다. 1944년 양산 내원사에서 성암스님(1889~1950)을 만나 출가 득도했다. 성수스님은 성암스님을 따라 정선 갈래사(현 정암사)에서 백일기도를 마치고 원효스님 토굴 터에 움막을 짓고 홀로 정진했다. 그러다 1945년 8·15광복소식을 듣고 내원사로 왔다. 은사 성암스님은 스님에게 해인사로 가서 공부할 것을 권했다.

당시 해인사는 효봉스님을 방장으로 해인총림이 설립되어 서옹스님이 입승을, 청담ㆍ구산ㆍ인곡스님 등이 정진하고 있었다. 해인사에서 안거한 스님은 1948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아 지녔다. 이 해에 스님은 성철ㆍ청담스님 등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에 참여, 3개월간 수행했다. 1967년 조계사 주지에 취임했다. 이 때 서울시장이 김현옥이었다. 김 시장을 찾은 스님은 “경상도 무지랭이 일 좀 하게 시장이 조계사 신도회장을 맡아주시오”했다. “서울시장이 조계사 신도회장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시장이 신도회장을 해야 구청장들을 부회장으로 앉힐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스님의 원력이 대단하십니다.” 김 시장은 결국 신도회장을 맡았다.

그 해 부처님오신날에 빵 3만개를 보시 받아 서울시내 양로원에 1만개, 조계사 주변에 1만개, 나머지는 1만개는 서울역 행인들에게 나눠주었다. 1968년 범어사 주지를 맡아 중창불사에 크게 기여했다.

1969년 스님은 경봉스님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고 건당했다.

“공도 색도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우나(非空非色難爲說)/ 서로 마주하고 옛 가풍을 전하네(目擊相傳古道風)/ 눈을 활짝 떠 걸림 없으니(活眼開時無碍處)/ 응당 법구름 속에 솟은 산이로다(是山應屹法雲中).” -오늘 영축산 삼소굴 노사가 활산 성수에게 주노라. 시일(是日) 영축산(靈鷲山) 삼소굴(三笑窟) 노사(老師) 서증(書贈) 활산성수(活山性壽) 선자(禪者).

1972년 스님 나이 50세 법랍 29세에 해인사 주지가 되고 이듬해 서울 법수선원을 개원했다. 1976년 의성 고운사 주지, 1978년 종단의 비상대책위 총무원장. 일본에서 열린 세계불교지도자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 1981년 조계종 18대 총무원장. 취임식에서 스님은 “우리불교가 불사에 치우치고 있는데 무엇보다 인재불사가 중요하다. 사람 있는 곳에 절도 있고 재원도 있게 마련”이라며 인재양성의 중요성 강조. 1986년 백암에 오도선원을 개원하고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을 설립했다.

1988년 함양에 황대선원을 개원하고 시민선방도 열었다. 1989년 연꽃마을 초대 이사장 취임. 1994년 조계종 원로의원, 2002년 산청 황석산 해동선원을 개원, ‘선불장(選佛場)’이란 글을 입구에 새겨놓고 원로 스님의 사상을 계승하는 도량으로 법을 펼쳤다. “원효대사는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고 남는 것은 평생에 지은 업보라 했다. 1초도 늦추지 말고 지금 이 순간부터 자기를 고치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는 새끼사자를 기다리느라 늙어도 늙은 척도 안하고 살아. 누군가 있어 황석산 괴짜 중의 보따리를 걷어찬다면 그를 끌어안고 한바탕 덩실덩실 춤을 출거야.” 이때가 스님 나이 80세, 인재양성의 원력을 놓치지 않았다.

2004년 대종사 법계 품수, 2006년 조계종 전계대화상으로 추대,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선출됐다. 2012년 4월15일 오전6시 함양 황대선원에서 입적했다. 법랍 69세, 세수 90세. ‘수거풍래(水去風來)’라는 제목의 임종게를 남겼다. “번개불이 반석위에 번쩍하니 우주의 법계가 둘이 아니로다/ 다른 것 다 버리고 보물을 찾아라// 보물을 찾아서/ 알고 살면 잘 사는 것이요/ 모르고 살아도 그만이니/ 우주만물이 모두 열반이로다// 시방세계가 눈을 깜빡이는 순간/ 다 보아도 모자라는데/ 무엇이 그리 바쁜가/ 눈을 떠도 그것이고 눈을 감아도 그것인데/ 볼 때는 내 것이고 안 볼 때는 남의 것이다/ 그러나 욕심낸다면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이 될 것이다// 물이 흘러가니 바람이 불어오네(水去風來) 미소(哂)” 스님의 장례는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통도사에서 봉행됐다. 2012년 12월 활산문도회는 <대나무그늘-활산성수어록집>을 발간했다.

■ 도움말 : 태응스님(활산문도회 대표) 홍제스님(선객)     
대승스님(진주 대승선원) 동우스님(양산 천성산 미타암) 
■ 자    료 : <대나무그늘-활산성수어록집>

[불교신문3392호/2018년5월12일자] 

이진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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