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軍宗) 장교는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 군종장교의 전형적 모습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등장한다. 총탄에 맞아 죽어가는 병사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이는 전우가 아니라 성직자다. 독일군이 퍼붓는 총탄을 아랑 곳 않고 고통에 몸부림 치는 장병의 얼굴에 십자가를 대며 하나님 품에서의 평안한 영생을 약속하는 군종목사, 간신히 숨만 내쉬는 장병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빠르게 기도문을 읊는 장면이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군종장교의 일반적 모습이다.

그러나 한국군의 머리에 남아있는 군종장교는 그와 많이 다르다. 가끔 군복을 입는 것만 빼고는 사찰 교회 성당에서 보는 스님 목사 신부와 다르지 않다. 실제 활동하는 일상도 거의 같다. 절에서 설법하는 모습은 보통의 스님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제 달라지고 있다. 장소와 참석자만 다를 뿐 일반 사찰 법회와 다름없던 군 포교 현장이 피 흘리며 고통 속에 죽어가는 전투병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영화 속 군종장교로 탈바꿈 중이다. 국군이 전투 중심, 싸움에서 이기는 군대를 표방하며 군종업무도 함께 변화 중이다. 변화는 군승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놓고 있다.

요즈음, 야전 부대에서 복무하는 군승의 일과를 보자. 주말 법회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업무다. 음력을 중시하는 불교 특성 상 초하루가 있으면 평일에도 법당에 들르는 것은 전과 같다. 그러나 그 외에도 군인으로서 바쁜 일상이 기다린다. 매주 주요 작전회의에 참석하고, 부대업무 협조에다 훈련에도 빠지지 않는다. 군종장교라고 해서 열외가 없다. 장병 상담이나 각종 교육도 군종장교의 중요한 임무다. 

그 업무량도 만만치 않다. 개인별, 계층별 집단 상담이 매달 정례적으로 열린다. 부대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격오지 부대 순회도 매주 가야하는 정기 업무다. 물론 이 모든 업무들은 특별한 경우에 하는 것이 아닌 군종장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다. 어느 군 관계자가 이런 ‘격려’를 했다. “예전에는 열심히 활동하는 법사님, 목사님들 위주로 격오지 위문 활동을 시행했는데 요즘은 아예 국방부 연간 계획으로 하달되고 또 꼼꼼히 체크가 되기 때문에 빠짐없이 시행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015년 한미 연합 전시군종활동 교육 모습.

전투 중심, 장병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군승들의 주된 활동 무대도 법당에서 장병들이 있는 현장으로 확장되었다. 훈련 중인 부대를 찾아 간식을 주며 위문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주요 훈련에 당연히 군종장교가 함께 한다. 며칠씩 계속되는 훈련장에 야전천막인 ‘전시군종센터’를 설치하고 전투 피로증(전투가 지속되면서 급격하게 정신적 피로도가 쌓이는 것)을 호소하는 장병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치유활동을 시행한다. 정해진 시간에는 종교별로 야전 종교의식도 봉행한다. 이 역시 전투 현장 중심 군종활동이 만들어낸 변화다.

전투중심 군종활동은 특별한 변화가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다. 그 동안에도 준비를 해왔지만 그 중심이 법당 교회 등 종교공간이었을 뿐이다. 이제 군종제도가 만들어진 원래 목적으로 적응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군종장교 제도는 본래 전투병들의 안식을 위해 생겼다. 죽음을 안고 싸우는 군인들이 극한에 놓였을 때 종교를 절실하게 찾는다. 아무리 전투에 단련 되고 생사를 초월했다 해도 전투에 투입되면 극도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 때를 대비해 군종장교도 다양한 방안을 준비하고 함께 훈련하는 것이다.

종교 활동에 무게를 두던 군종장교들이 전투현장에 대해 본격적으로 주목하게 된 것은 1990년 걸프 전쟁 부터다. 이라크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미군들 가운데 수많은 미군 군종장교들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다 군종성직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처음에 자신만만했던 장병들이 막상 참혹한 전투현장에 들어서게 되자 심각한 전쟁 공황과 전투피로증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정신적 좌절감을 치유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군종성직자들의 역할이 주목을 받게 됐다. 미군은 걸프전쟁 이후 수 백명 수준이었던 군종장교 수를 2천명 이상으로 늘렸으며 전투현장에서의 군종활동 연구도 가장 활발하고 성과도 많다.

미군 부대의 군종 연구와 실험이 동맹국인 한국군에도 빠르게 전해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15년엔 미군 군종의 전시지원 훈련에 한국군종이 처음 참가했다. 그동안 미국 본토에서만 열리던 훈련이 최초로 타국인 한국에서 한국군과 함께 진행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전투현장에서 군종장교는 총기를 휴대하지 않는다. 제네바 국제협약에 따른 관례인데 군종병과(軍宗兵科)를 운영 중인 44개국 모두 동일하다. 그래서 작전 자체가 전투병과 완전히 다르다. 전투병을 따라 전투현장에 들어가 죽어가는 장병들을 위해 기도하고, 부상당한 장병은 구출하며 전투가 끝나면 현장에서 약식 장례의식도 거행한다. 

이러한 전쟁상황 속에서의 활동은 실제 전투를 많이 경험한 미군의 노하우가 상당했다. 그러나 이후 여러차례 연합훈련을 통해 수준을 향상시킨 한국의 군종장교들은 이제 한국형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연구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그런 연구에 더하여 우리 군종법사들은 추가된 숙제가 더 부여되었다. 개신교나 천주교는 서양 사례를 참조하여 그대로 반복 훈련하면 되지만, 불교에 대한 모든 전시활동은 참고할 사례가 거의 없다. 그래서 대부분 새롭게 연구하여 만들어내야 하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불교 군종장교가 100명이 넘는 규모로 운영되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해서 우리 군종교구가 만드는 군종 의례가 곧 세계 표준이 된다. 때문에 이를 연구하는 군승들의 어깨가 더 무거울 수 밖에 없다.
 

■ 전투 현장에서 장례의식, 의례는...

전시용 불구함

군종교구에서는 전투 현장에 맞는 불교 의식 개발을 위해 다양하게 연구 중이다.

우선 전투 중 휴대하는 ‘야전의식구’에 소형목탁, 요령, 작은 불감(佛龕), 촛대, 향로를 준비한다. 언제 어디서든 소규모 법회와 장례를 치를 수 있는 불구(佛具)들이다. 몇 년 전 개발 이후 매년 직접 함을 시험하며 점점 경량화 연구 중이다. 전투 현장에서 더욱 편리하면서도 종교적 위엄을 잃지 않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전시 군종가사 또한 중요한 연구 테마이다. 현재 사찰에서의 표준인 대가사는 물론 반 가사도 실제 전투현장에서 사용할 수 없음이 입증됐다. 그래서 전시(戰時) 전투복 위에 착용 가능한 특별 가사를 연구 중이다. 빠르면 올해 안에 선보인다. 군종교구는 “한국군의 전시 가사가 세계적 표준이 될 수 있어 심도 깊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와 함께 중요한 분야는 전투현장에 맞는 의식과 의례문이다. 전사자 장례의식, 부상병을 위한 기도문 의례 등이 그것이다. 이 특별한 기도문은 부상병이나 죽어가는 장병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에 한문이 아닌 우리말로, 또 최대한 간결하며 감화력 있는 기도문이어야 한다.

물론 이 또한 과거 수차례 연구된 사례들이 있으나 최근에는 실제 전투현장에 적용해보는 다양한 실험과 함께 더욱 완벽하고 수준 높은 결과물을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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