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토굴에서의 생활을 찍어 놓은 것처럼 낯익은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사계절의 변화와 생명들이 영화 화면에서 또렷하게 비추어지고 요리는 자연을 닮아 변화무쌍했고 창의적이었다. 

사람은 땅과 자연에서 힘을 얻을 수 있고 거기에 뿌리를 내릴 힘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고 주인공의 엄마는 믿었고 그건 진실이었다. 주인공의 내면에는 몸으로 배우고 익힌 자연의 요리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서울에서 억지로 ‘꾸겨 넣으려’고 했던 인스턴트 음식과 삶의 방식이 남의 옷처럼 불편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연 속에서 꼬여있던 매듭이 풀려갔고 스스로의 포레스트에 첫발을 딛게 되었다. 주인공에게는 돌아 갈 고향이 있었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는 자양분이 있었다. 서로의 눈을 따스하게 응시하며 막걸리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었고 땅이 주는 노역의 고단함과 그 고단함의 풀림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우리에게 포레스트는 무엇일까? 연봉이 올라가면 그만큼 개인시간이 없어지고 행복의 질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한다. 방 안에 물건을 정신없이 쌓다보면 빈 공간을 잊어버리기 쉬운 것처럼 이른바 스펙 쌓기와 맹목적 질주는 뭔가 중요한 것을 까먹기 십상이다. 잠깐 멈추어서 자신만의 휴식처를 발견해 보자. 시린 마음 아랫목처럼 따스하게 데울 수 있는 곳. 그곳이 포레스트로 들어가는 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할랑했던 빈 공간으로 발을 내딛어본다. 문득 느껴지는 해방감. 아, 공연히 복잡했구나! 환하게 빛나는 그 자리! 우리는 자신만의 포레스트를 찾아야 한다. 그곳이 어디든 느긋함이 있고 의무와 당위가 꿈처럼 존재하고 소통할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땡감이 곶감이 되어가는 처마 밑의 다정한 풍경처럼 자연이 스승이 되는 그런 곳이면 더욱 더 좋으리라.

[불교신문3390호/2018년5월5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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