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르지만 알고 보면 ‘너는 나, 나는 너’ ”

 

 

지난 4월14일 적멸보궁 정암사에서 ‘봄날의 서재’로 유명한 전윤호 시인을 초청, 인문학 특강이 열렸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 사부대중이 참가했다.

시인은 소통하는 자 

바퀴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를 가면서 정암사를 자주 들렸다. 지나다니면서 정암사는 이름도 정갈하고 절집으로 규모가 크지 않아 좋아하는 곳이다. 

“만항재를 올라갔지/ 한나절 내내 장대비에 시달리다/ 등짝을 후려치는 안개 속 내게 손짓하는 이무기를 따라온 거야/ 정암사 적멸보궁 지나/ 해발 1000미터를 견디지 못해 귀가 먹먹해지더니/…솔밭에서 잔등이 덥도록 토하고 나면/ 사방에 빗장 지르는 밤이 내리고/ 거대한 무덤 속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만항재에서 말야 -<만항재> 中” 

어려서 어머니와 헤어졌는데 이쪽 고한, 태백에 사셨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만항재 올 때마다 혹시 어머니가 여기서 어딘가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만항재는 제게 회한의 장소가 되었다. 차를 타고 레이더 기지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 때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소회를 적은 것이다. 

저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한번 읽어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는 어렵게 쓰는 거 보다 쉽게 쓰는 게 어렵다. 제가 시를 쉽게 쓰려고 하는 것은 소통이란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소통 하는 자이다. 세상은 둘로 나눌 수 있다. 나와 우주, 나와 나를 제외한 모든 것. 내가 아닌 것들과 뜻이 통하고 내가 아닌 것이 나와 뜻을 통하고 이런 것이 소통이다. 쉬운 것 같지만 어렵다. 왜냐면 우리는 진심을 담아서 말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기호다. 그 기호는 그런데 완성돼 있는 게 아니고 불구 같은 것이다. 

언어는 생활 편의를 위해서 만든 약속일 뿐이다. 오랫동안 살면서 인류는 그런 기호, 약속에 익숙해져서 본뜻을 잃어버리고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텅 빈 말이다. 그 안에 사랑은 정말 몇 % 없는 것이다. 시인은 죽은 언어를 채워서 살아있는 언어로 바꾸는 사람이다. 

그러면 죽은 언어를 채운다는 의미는 뭘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그냥 기호가 아닌 뜻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표현에 의미를 채우려면 비유를 쓰면 가능하다. 나는 너를 새끼손톱만큼 사랑해라고만 바꿔도 내용이 확 달라진다. 나는 너를 새끼손톱만큼 사랑해라는 표현은 나는 너를 사랑해 보다 훨씬 충전된 언어가 된다. 새끼손톱에는 의미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죽은 언어를 채워서 소통하도록 해주는 사람이다. 

대상과 나를 동일시해야… 

한 30, 40년 글을 쓰면서 스님들처럼 깨달음이라고 할까 얻은 게 있다. 이를테면 동일시라는 건데, 시 창작 강의를 할 때 첫 시간에 적어 놓고 무조건 쓰고 수학공식처럼 외우게 하는 것이 있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내가 우주고 그 우주가 곧 나다!’ 

사실은 우리가 우리 속을 들여다보는 게 내 방을 들여다보는 것과 마찬가지고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본다고 하더라도 내 속을 구성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새롭고 신기한 것을 보기 위해 여행을 간다. 세상 어느 곳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곳도 내 속과 똑같이 생겼구나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곧 우주고 우주가 곧 나니까. 이 말에 동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를 쓸 때는 대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나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소통이 중요한데 결국 열린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열린 마음, 열린 공간, 열려있다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다. 최근 잡지에 연재하기 위해 전국 도시들을 취재 다녔다. 도시 사람이 사는 모습들을 그런 것에 대해서 썼는데 도시를 다녀보면 크게 발전하는 도시가 있고 항상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도시가 있다. 대전은 1800년대 말 1900년 초까지 허허벌판이였다. 당시 그 근처에 큰 도시는 공주였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기차역이 생겼다. 기차역 주변에 가게도 생기고 공장도 생기고 그러다 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전이란 도시가 생기고 대전은 점점 더 커졌다. 

공동체는 소통해야 발전

대전이 커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토박이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오래된 동네처럼 토박이가 있어서 여기가 내 땅이라고 텃세를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전에 토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30%가 안 된다고 한다. 우리 고향은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대전 같은 곳을 모델로 삼을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전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란 시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결국은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체가 된다. 동국대학교를 다녀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종교는 불교인데 제가 불교신자라고 이야기 하지 않지만 절은 친해서 지나다니면서 부담 없이 들릴 수 있고 밥도 얻어먹을 수 있고 법당에 가서 꼭 법도대로는 아니지만 부처님께 인사도 할 수 있고 그런 점이 좋다. 결국 절은 열려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교회는 아무리 크고 웅장하더라도 신도가 아니면 들어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곳은 스스로 닫혀 있다.

고한이란 마을에 열려있는 정암사란 절이 있다는 것은 상당한 축복이다. 이렇게 열려있는 공간은 예전에 광부의 아내들이 모여서 남편 안위를 걱정하던 곳이다. 그 정성들이 이곳에 쌓여있다. 결국은 마을과 함께 발전한 곳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절을 만들 때 사람들이 호응을 해주어서 절이 생긴 것, 열린 마음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에 정암사란 절이 생겼다.

저는 역사를 전공했는데 이런 말이 있다. 만리장성을 쌓은 수나라는 망했고 길을 낸 로마는 번영했다. 조그만 동네에선 계속 새로운 것을 받아 들여서 발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곳들이 많다. 밖에서 새로운 충격을 받아들이고 소화를 해야 발전할 수 있다. 

시인이 필요 없는 시대 

그렇다면 소통은 꼭 해야 하는가? 모두들 ‘나’라는 하나의 우주다. 자기 안을 파고 들어가도 찾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우린 왜 또 소통을 해야 하나? 저 같은 경우 지금 춘천 산중에서 하루 종일 사람 한 명도 안 만나고 글을 쓴다. 나는 내 속을 파고 들어가 나와 대화하는 중이지만 내가 글을 쓰듯이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예술이다. 그렇게 해서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정암사 준공기를 보니 금탑, 은탑, 수마노탑이 있다고 한다. 수마노탑은 있고 금탑, 은탑은 보이지 않는다. 옆에 있는 사람을 금탑, 은탑으로 생각하고 소통을 한다면 소통은 훨씬 더 잘 될 것이다. 저 사람을 외지인이라고 얘기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저 건너편 산을 파서 석탄을 캐내서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카지노에서 제 속을 파내려가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고한은 그걸 품고 있다. 굉장히 삭막한 시대이다. 

열린 공간과 소통이 있으면 이런 힘든 시대를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저 같은 시인이란 존재도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는 각자 서로 주관적으로 알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 차이를 엄격하게 인식하고 나서 서로 소통을 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단 훨씬 유익한 대화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 하지만 알고 보면 너는 나고 나는 너라는 것…. 

[불교신문3389호/2018년5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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