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아침 세 쪽 글쓰기. 일주일에 한번 자기와 데이트하기.’ 글쓰기에 관한 책 <아티스트 웨이>에서 저자는 창조성을 일깨우려는 사람들에게 이 두 가지 과제를 준다. 매일아침 글쓰기까지는 해보겠는데 일주일에 한번 자기와의 데이트에서 나는 난감해졌다. 예를 들면, 고물상에 가보기, 해변에 혼자 가기, 낯선 동네 걷기 등이다.

뭘 할까 고민하다 동네 목욕탕을 찾아갔다. 평소 사우나나 목욕탕을 가지 않아 낯선 건물로 들어서는 일부터 좀 어색했다. 예전에는 꽤 신식이었을 아치형 카운터에서 무표정한 주인은 주황색 수건과 거스름돈을 내밀었다. 평일 낮이라 목욕탕은 한산했다. 탕 안에서 깜빡 졸았던 탓인지, 아니면 탕의 열기 탓인지 어느 사이 희뿌연 연기 사이로 언뜻언뜻 나의 젊은 엄마와 어린 내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나는 목욕탕 가는 게 참 싫었다. 명절 전날처럼 어쩌다 날을 잘못 잡은 날은 그야말로 장터가 따로 없었다. 신발이 뒤섞이고, 사물함이 모자란 건 다반사며, 한쪽 엉덩이 비집고 들어앉기도 어려워 자리싸움이 나기도 했다. 돌 두꺼비 입에서 쏟아지던 수돗물은 무시무시한 폭포 같았다. ‘빨래금지’라는 커다란 팻말은 사람들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붙어 있었고, 그 밑에는 으레 ‘적발시…’로 시작되는 경고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빨래비누까지 챙겨와 아이의 내복을 빠는 용감한 엄마들이 꽤 있었다.

수십 명, 어쩌면 수백 명이 몸을 담갔을 탕은 어린아이에겐 항상 뜨거웠다. 어린 나는 탕 안에서 슬쩍 오줌을 누기도 하고 입으로는 그 물을 꿀꺽 삼키기도 하며 그렇게 조금씩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온 아주머니는 제 처지처럼 혼자 온 사람에게 다가가 선뜻 등을 맡기곤 했다. 때론 너무 세게 밀어 살갗이 빨갛게 되어도 아프다 말할 수 없었다. 등을 미는 이가 남의 등이니 잘 밀어줘야겠다는 마음이고 보면, 등을 맡긴이는 그이의 성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그렇게 작고 사소한 풍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가만히 눈을 뜨고 보니 지금 목욕탕은 예전에 비해 참 넓고 컸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장터 같던 목욕탕의 풍경과 소음, 내복을 빨던 엄마, 깨져서 물이 새던 바가지가 그리워졌을까. 느리고 비어있는 것이 오히려 미덕일 수 있었던 시절들. 모두 가난했고 모두 따뜻했다. 한없이 빠르고 넘치기만 한 지금, 그래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더 행복해졌는가 하고 자꾸 묻게 되는 것이었다. 천천히 옷을 입으면서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흑백의 아날로그 풍경들이 나는 참 많이도 그리웠다.

[불교신문3387호/2018년4월25일자] 

전은숙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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