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만 있고 괴로움 없는 불국토를 그리다

 

 

당대 돈황석굴 172굴에 그려진 관경16관변상도 .

라자그라하에서 일어난,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비극적인 이 이야기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중 하나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전해온다. 424년 강량야사(畺良倻舍)가 번역한 <관무량수경>은 서분(序分)과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분은 빔비사라 왕과 아사세태자의 왕위찬탈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정종분은 석가모니가 위데휘 왕비를 위해 제시한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13관(十三觀)과 일반인들을 위해 제시한 3관 등 16가지의 관상법, 유통분은 경전의 내용을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유통시키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무량수경>은 그 소재의 드라마틱한 성격 때문에 일찍이 그림과 조각으로 널리 조성되었다.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그린 것을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라고 하는데, 관경변상도는 경전이 설해진 연유를 그린 관경서분변상도(觀經序分變相圖)와 정종분을 도설화한 관경16관변상도(觀經十六觀變相圖)의 두 종류가 있다. 중국에서는 특히 당나라 때 <관무량수경>이 크게 유통되었으며, 실크로드에 위치한 돈황석굴에는 무려 100여 점에 달하는 <관무량수경> 관련 벽화가 남아있다. 돈황의 관경변상도는 중앙의 설법도를 중심으로 서분의 내용과 정종분의 내용이 좌우, 아래 부분에 빙 둘러가며 그려져 있다. 송대에 이르면 북송 초기 절강성의 영파(寧波)와 항주에서 천태정토교(天台淨土敎)를 주도한 지례(知禮)와 준식(遵式)이라는 스님이 16관게송(十六觀偈頌)을 만들어 유포하고, 1099년 영파의 연경사에 16관당을 창건하였다. 이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 정종분을 그린 16관변상도가 크게 유행하였다.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소장 고려시대 관경서분변상도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정토신앙이 유행하면서부터 <관무량수경>의 16관법이 널리 행해졌다. 광덕(廣德)스님이 16관법을 닦아 달빛을 타고 극락에 왕생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일찍이 <관무량수경>의 16관법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여러 고승들이 <관무량수경>의 주석서를 펴낼 정도로 경전이 크게 유통되었으나, 고려시대 이후 <아미타경>이 널리 성행하면서 <관무량수경>의 유통은 크게 줄었다. 또 고려시대에는 아미타신앙의 성행과 함께 천태종과 밀교에서도 정토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특히 백련결사(白蓮結社)를 주도한 천태종의 원묘 요세(圓妙 了世, 1163~1245)는 정토삼부경 중에서 하근중생(下根衆生)의 구제를 위주로 교설된 <관무량수경> 사상을 도입하여 일반 범부 중생들의 교화에 힘썼다. 이를 반영하듯, 현재 고려불화 가운데에는 <관무량수경> 변상도가 여러 점 전해온다.

<관무량수경> 서분의 내용, 즉 경전이 설해진 연유를 담은 서분을 도상화한 서분변상도는 일본 다이온지(大恩寺)소장 서분변상도(1312년)과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소장 서분변상도 등 2점이 남아있다. 그림은 왕사성의 왕궁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4〜5장면으로 나누어 그려진다. 오른쪽 하단에는 아사세 태자가 모후 위데휘 왕비를 살해하려 하자 월광(月光)과 기파(耆婆) 등 두 신하가 이를 막는 장면이 배치된다. 오른쪽 상단에는 합장한 채 선 빔비사라 왕과 위데휘 왕비의 뒤로 시녀들이 무리지어 선 장면, 건물 바깥쪽에서 목련존자와 부루나존자가 공중으로 날아오는 장면 등이 묘사된다. 또 왼쪽 아래에는 빔비사라왕이 부루나존자의 설법을 경청하는 장면과 석가불을 향해 통곡하는 위데휘 왕비, 제일 상단에는 석가여래가 위데휘 왕비에게 설법하기 위하여 영취산을 떠나 여러 성중들과 함께 왕궁에 출현하는 모습 등 서분의 내용이 지그재그로 내용이 전개되어 있다. 

돈황석굴 45굴에 그려진 관경16관변상도 부분

반면 <관무량수경> 중에서도 정종분의 16관을 그린 16관변상도는 석가모니가 위데휘 왕비를 위해 설한 1~13관과 일반 범부를 위해 설한 14~16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13관은 일상관(日想觀: 해를 생각하는 관), 수상관(水想觀: 물을 생각하는 관), 보지관(寶地觀: 땅을 생각하는 관), 보수관(寶樹觀: 보배나무를 생각하는 관), 보지관(寶池觀: 보배연못의 공덕수를 생각하는 관), 보루관(寶樓觀: 보배누각을 생각하는 관), 화좌관(華座觀: 연화대를 생각하는 관), 상상관(像想觀: 부처와 보살의 형상을 생각하는 관), 진신관(眞身觀: 부처의 몸을 생각하는 관), 관음관(觀音觀: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관), 세지관(勢至觀: 대세지보살을 생각하는 관), 보관(普觀: 자신이 정토에 나는 것을 관찰하는 관), 잡상관(雜想觀: 장육(丈六)의 불상 모습을 관찰하는 관)으로, 경전에 기록된 내용이 충실하게 도상화 되어 있다.

16관경변상도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드라마틱한 부분은 바로 화면의 아래 부분에 배치되는 14~16관, 즉 상배관(上輩觀), 중배관(中輩觀), 하배관(下輩觀)일 것이다. <관무량수경>에서는 중품상생인(中品上生人)은 아미타여래와 여러 비구 및 권속, 중품중생인(中品中生人)은 아미타여래와 많은 권속, 중품하생인(中品下生人)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왕생인들을 영접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꽃이 가득 피어있는 연못 속에서 환생하는 인물을 아미타불과 그 권속들이 영접하는 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가 상상하는 극락의 모습이다.

현재 관경십육관변상도는 고려시대 작품 3점, 조선 전기 작품 2점 등 모두 5점이 남아있다.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고려)는 상부 중앙에 제1관인 일상관(日想觀), 향우측 가장자리에 2〜7관, 향좌측 가장자리에 8〜13관을 배치한 후 다시 중앙의 일상관 아래 석가여래설법도(釋迦如來說法圖)와 14〜16관을 표현한 정연한 구도를 보여준다. 반면 1323년 설충(薛沖) 등이 그린 관경십육관변상도(일본 지온인(知恩院) 소장)는 상부와 중앙부에 일상관에서부터 잡상관에 이르는 13관까지를 묘사하고, 하단부에 상배관, 양 가장자리에 중배관과 하배관 등을 배치하여, 사이후쿠소장본과는 구도 상의 차이가 있다. 또한 효령대군(孝寧大君)·월산대군(月山大君) 등이 발원하고 화원 이맹근이 그린 관경16관변상도(1465년, 일본 지온인 소장)는 1323년 16관변상도(일본 지온인 소장)를 기본으로 하였으나, 16관 중 일부가 생략되고 외연부가 거의 사라진 반면 중앙부가 확대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일본 사이후쿠지 소장 관경16관변상도.

이처럼 관경변상도는 <관무량수경>의 내용 중 서분의 내용과 석가모니가 위데휘 왕후와 일반인들을 위해 제시한 16가지의 극락관상법을 도상화한 그림이다. 서분변상도가 비극적 쿠데타라는 역사적 사건을 도설화한 반면, 16관변상도는 서방극락세계의 모습을 장엄하게 펼쳐내었다. 특히 16관변상도에 그려진 극락의 모습은 ‘이 세상으로부터 서쪽으로 10만억의 불국토를 지난 곳에 있으며, 오로지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나라, 온갖 보배가 널려있고 항상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며 백조와 공작과 앵무새, 사리새, 가릉빈가, 공명새들이 밤낮없이 항상 평화롭고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한다’는 바로 그 극락정토일 것이다. 서방 극락정토의 아미타불과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극락세계는 누구나가 원하는 유토피아이다. 따라서 관경변상도는 중생들의 종교적 염원을 불화를 통해 표현한 것이자 극락왕생을 희구하는 중생들의 마음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불화가 아닐까.

[불교신문3387호/2018년4월25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