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설정스님 요구에 대통령 화답...38년 묵은 ‘진실’ 봉인해제될까

문재인 대통령이 불교계에 묵직한 선물을 안겨줬다. 현직 대통령 최초로 10.27법난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명한 것이다. 

“한국 불교는 군부독재 시절 국가권력에 의해 종교의 성역을 침탈당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며 “불교계에 여전히 남아있는 깊은 상처에 대해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지난 17일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주최한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기원법회’에서 전격 발표했다. 정부 차원으로는 1988년 12월 당시 강영훈 국무총리의 담화문 이후 꼭 30년 만이다.

무려 38년 만에 받아낸 국가수반의 사과다. 1980년 10월말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는 ‘불교정화’라는 미명 하에 3만2000여 명의 군경 합동병력을 투입해 전국 5700여 개의 사찰에서 1700여 명에 달하는 스님들을 무단으로 연행해 고문하고 가혹행위를 했다. 악의적 언론플레이로 두 번 죽였다.  

문체부장관 예방 당시
강경발언이 발단
5개월 만에 도착한 결실
명확한 진상규명은 '과제'

국가권력이 특정종교를 상대로 벌인 초유의 ‘묻지마’ 범죄이자, 근현대 한국불교사 최악의 상처로 못 박힌 이유다. 2008년 특별법 제정으로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의 길이 열리긴 했다. 하지만 사건의 가해자 격인 국방부가 주무부서로 관여하는 등 논란이 많았다. 역대 대선 후보들은 너나없이 10.27 법난에 대한 더 두터운 관심을 달콤한 말로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당선이 되면 입을 다물었다.

이런 와중에서 문 대통령의 공식적인 참회는 새로운 전기를 세웠다. 국가의 최고통치자가 과거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한국불교의 눈물을 손수 닦아준 셈이다. ‘5.18’과 ‘4.3’ 등 과거사의 정당한 해결을 통한 국민통합 행보의 연장선상에서 불교도 혜택을 받았다. 부지매입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10·27법난기념관 건립도 확실한 명분을 얻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공감은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의 ‘결기’가 결정적인 발단이 됐다.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한 당사자였다. 취임 직후인 작년 11월8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다. “10·27법난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잔악하고 치졸한 탄압이었다”며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현실이 공허하고 서운하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선물은 이때부터 준비됐다. 문체부 종무실 관계자는 “비공개로 전환된 자리에서 법난기념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쯤을 논의할 줄 알았는데, 총무원장 스님의 강한 어조에 사태의 심각성에 관해 새삼 깨달았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총무원장 스님의 입장을 곧 청와대에 전달했고 시민사회수석실이 대통령의 발언 내용과 시기를 조율해 17일 법회 축사에 넣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총무원 사서실장 금곡스님은 “당신은 수덕사 수좌 시절부터 정관계 인사들에게 법난의 진실을 성실히 알리고 설득해왔다”며 “그간의 진정성이 반향을 이끌어낸 것”이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지지하는 만큼 정부 주도의 진상규명 작업이 탄력을 받으리란 기대가 크다. 정확히 누구의 지시에 따른 폭거였는지, 강산이 네 번 바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속 시원히 알지 못한다. 현재의 명예회복은 그때 다친 스님들에 대한 의료비 지급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총무원 사회부장 진각스님은 “총무원장 스님의 생각도 ‘병 주고 약 주는 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진상규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관계부처 역시 대통령의 말의 무게에 걸맞은 신속한 일처리에 나서지 않는다면, ‘6.13 지방선거용’이라는 폄훼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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