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절에서 예불 올릴 때 다 같이 <천수경>이나 <반야심경>을 외우잖아요. 그런데 경전을 왜 소리 내어 읽는 거죠?

높낮이를 살려 읽어가다 보면 
눈으로 볼 때와는 느낌이 달라 
부처님 말씀을 듣는 것도 같고 
내게 일러주시는 것 같기도 해

하하,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마는데 누리는 그냥 넘기는 법이 없네. 배움이란 궁금한 것을 물어보거나 스스로 찾아 아는 것을 일컬어. 그러나 그러는 사람이 드물지. 그런데 누리는 남다르구나. 

경전은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한 말씀을 제자들이 함께 외워 이어오다가 뒷날 적바림한 것이란다. 경전을 만든 까닭은 부처님이 가르쳐준 뜻을 몸에 새겨 참답게 살아가려는데 그 뜻이 있어요. 초기 경전 <진리의 말씀>은 부처님이 돌아가신지 석 달 남짓할 때 스님들이 처음으로 모여 부처님 가르침을 함께 외우면서 모아냈다고 해. 

종이가 생기기 전에는 나무껍질 같은데다 글을 새겨야 해서 경전이 많지 않았어. 종이가 만들어진 다음이라고 해도 낱낱이 사람 손으로 써서 적어서 책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값이 비쌌을 뿐더러 구하기도 힘들었어요. 글을 아는 사람도 매우 적었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살려면, 여럿이 둘러앉아 경을 외우는 수밖에 없었어. 

“책도 흔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글을 읽을 줄 아는 요즘에도 어째서 경전을 여럿이 소리 내어 외우고 있냐고?” 우리 조상님들은 오래도록 책을 소리 내어 읽었어. 왜 그랬는지 궁금해서 소리 내어 읽어봤지. 그랬더니 글이 생생한 말로 다가오더구나. 높낮이를 살려서 경전을 읽어 나가다보면 가락이 나서 눈으로 볼 때와는 느낌이 아주 달라. 부처님이 하는 얘기를 옆에 앉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때때로 부처님이 내게 일러주시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 <진리의 말씀> 같은 초기경전을 읊는 것을 눈을 감고 듣노라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흔드는 울림이 있어. 여럿이 가락을 타며 경을 읽다보면 절로 흥이 나지.

그리고 아무리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도 책을 눈으로 쓱 읽고서 그 뜻을 바로 헤아리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거든. 그럴 때 소리 내어 찬찬히 읽어 나가다보면 책에 담긴 뜻이 살과 뼈에 스며들듯이 잘 헤아려진단다. 마치 밥을 허겁지겁 먹지 않고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소화가 잘되는 것처럼. 

그렇더라도 경전이 알 수 없는 한문이나 인도말로 쓰여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면 소리쳐 읽어봤자 살아가는데 힘이 되지 않아요. 요즘에는 쉬운 우리말로 풀어낸 경전이 많아서 참 다행이야. 

[불교신문3386호/2018년4월21일자] 

변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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