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화계사 불화반 행렬등 꾸밈 현장

부처님오신날을 40여 일 앞둔 지난 13일 서울 화계사 대적광전 앞 임시로 설치된 하얀 천막 안에서 ‘화계사 불화반’ 수강생들이 자신의 몸집 열 배가 넘는 대형 행렬등에 화려한 색을 입히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40여 일 앞둔 지난 13일 서울 화계사 대적광전 앞 임시로 설치된 하얀 천막 안에서 잔잔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화계사 불화반’ 수강생들이 자신의 몸집 열 배가 넘는 대형 행렬등에 화려한 색을 입히며 소담을 나누고 있던 것. 불화반 수업이 없는 금요일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부터 늘 그래왔던 것처럼 수강생들은 저마다 물감을 풀고 붓을 들었다.

사다리를 타고 높이 2m가 넘는 ‘국보83호 반가사유상’ 어깨를 노란색 물감으로 물들이고 있던 불화반 반장 서영미(60) 씨도 매일 출석 도장을 찍는 수강생 중 하나. 

“보기에는 쉬워 보이죠? 이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몰라요. 집에 가면 다리에 쥐가 다 날 정도라니까요. 그래도 다같이 공동작업을 하다보면 대여섯시간이 언제 가는지 몰라요. 부처님을 내 손으로 그리는 영광도 누리고 수다도 좀 떨고, 그러다 출출해지면 스님이 사주는 간식도 얻어먹고, 뭐 그런 재미죠. 고되고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굳이 제 발로 찾아와 하겠어요?” 

서영미 씨 말처럼 수업이 없는 이날도 채색 작업을 위해 7명의 수강생이 나왔다. 화계사가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선보일 대형 행렬등은 3가지. ‘반가사유상등’ ‘반야용선등’ ‘숭산스님설법등’ 등이다.

밑그림을 바탕으로 공장에서 틀을 제작해 들여오면 화계사 거사회가 배접(종이를 포개 붙임)으로 중심을 잡는데 이 작업이 끝나면 불화반이 채색에 들어간다. 보통 2월부터 초파일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행렬등 뿐 아니라 30여 개에 달하는 장엄등까지 색을 입히는데, 매일 5~6시간씩 모두 300시간 이상 걸리는,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손이 행여 ‘반야용선등’에 닿을까 조심스레 붓 칠을 해나가는 수강생.

1년 중 불화반이 가장 빛을 보는 시간이기도 한 만큼, 연등에 색을 입히는 수강생들 붓 끝에선 긴장이 묻어난다. 그라데이션이 살 수 있도록 전통 회화 기법인 바림(짙고 엷게 색을 표현하는 일)으로 색을 입히는데 스마트폰까지 찾아가며 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선명하게 돋보이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한다. 빛이 투과될 수 있도록 종이 사이사이 여백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불화반 색칠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화계사 주지 수암스님이 천막을 찾아 애정 가득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니, 그 고생들을 하는데 왜 짬뽕을 사준다 해도 싫대~” 하는 수암스님 타박에 수강생들이 “짬뽕말고 탕수육을 사줘야 먹지요 스님!” 하고 맞받는다.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손이 행여 ‘반야용선등’에 닿을까 조심스레 붓 칠을 해나가던 김명숙(51) 씨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린다. “아이고 스님, 짬뽕이든 탕수육이든 그걸 어떻게 먹어요. 아까워서. 그리고 우리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건데요. 내 손으로 부처님 그리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고 뿌듯한걸요.”

화계사 거사회가 만들고 불화반이 색을 입힌 대형 행렬등과 장엄등은 오는 5월 부처님오신날 사찰과 종로 한복판 등에서 대중 앞에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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