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서늘해진 내 발길은 
저절로 고려산 자락을 밟는데 
산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그 빛은 내 거절에 화끈 달아올랐던 
아버지 얼굴빛이어서 가슴이 아렸다 

고향집 뒷동산에 피었던 
진달래와 철쭉이 생각나신다고 
진달래 화분 하나를 달라고 
하셨던 아버지! 

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그 땅에 겨우 3km밖에 안되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녘 땅을 바라볼 수 있다는 핑계로, 나는 3년째 유배자처럼 스스로 발을 묶어놓고 이 섬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신혼집 선물로 진달래 화분을 선물하셨다. 그 화분이 몇 년 분갈이로 몇 개 더 늘었고, 아버지가 다니러 오셨던 그 해 봄은 화분들을 이웃에 다 나눠주고 두 개가 남아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진달래꽃을 보시더니 고향집 뒷동산에 피었던 진달래와 철쭉이 생각나신다고, 진달래 화분 하나를 달라고 하셨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공교롭게도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가 좋지 않은 때여서 은근히 오기를 부렸던 것인데, 아버지는 그 일로 몹시 실망하신 듯 나를 보면 외면하셨다. 하지만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는데 뜻하지 않은 비명횡사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 빛으로 남아 있었다.

삼십 년이나 지난 어느 해, 우연히 강화로 문학기행을 오게 된 날이었다. 민통선을 돌아보다 바다건너 연백과 개성이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끊임없이 가슴을 부대끼게 하는 파동은 금방 아버지의 얼굴로 겹쳤다. 임진강에서 북녘하늘만 바라보며 애를 태우시던 아버지의 영상이 내 애간장을 태웠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다시 찾아 온 강화에는 봄날을 알리는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그 진달래가 내 발목을 잡는 바람에 무작정 강화로 이사를 했다.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고려산 주변에는 사찰이 많아서 오며 가며 만나는 스님들과 얘기도 나누고 귀동냥으로 <법구경>도 듣게 되어 꼭 봄철이 아니어도 자주 들리게 되었다. 

불교에서의 관심은 자기 마음의 본성을 밝히어 살피는 일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 나는 스스로 겸손해지려고 많이 애썼다. 원래 고집이 센 나는 무슨 일이든 쉽게 생각하고 혼자서 결정하고 나서는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많다. 그것이 겸손의 결핍이라는 것을 겨우 눈치 챘을 때, 겸손이 덕목이라는 어느 스님의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깨달음은 그 순간이 아닌가? 라는 내 교만인지도 모르는 그 생각은,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현세적 즐거움도 큰 행복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가끔 여기 저기 기웃거려보기도 한다. 어쩌면 세속적 삶과 종교적 삶의 균형을 잡아보겠다는 내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자신에게 의지하라고 하신다. 나는 그 말씀이 마음에 들었다. 인간에 대한 강력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 같아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 속 온갖 잡념들을 부처님께 맡겨버리려고 애써봤지만 아직도 내 안의 욕심은 요지부동이다. 그래도 매일 후회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으니 절간을 기웃거리는 게 공염불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제는 비온 뒤의 햇살이 너무 좋아서 교동으로 걸음을 옮겨 철책선까지 둘러보는데, 바다 건너 북쪽에서 들려온 방송을 듣게 되어 우두커니 바다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한 떼의 철새들이 줄을 지어 바다를 건너 교동 서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진 내 발길은 저절로 고려산 자락을 밟는데 산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그 빛은 내 거절에 화끈 달아오르셨던 아버지의 얼굴빛이어서 가슴이 아렸다. 그러나 서서히 그 빛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이름을 다시 입속으로 되뇌었다. 아버지! 

[불교신문3385호/2018년4월18일자] 

안혜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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