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앤 ‘조계사 장애인불자 대법회’

조계사 장애인 불자 대법회가 4월14일 봉행됐다.

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시던 오늘(4월14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 법당 한가운데로 휠체어를 밀고 나가는 이순애 씨 얼굴에 긴장이 가득했다. ‘조계사 장애인 불자 대법회’ 시작에 앞서 ‘육법공양’을 올리기 위해 나선 것. 첫 번째 공양물 향(香)을 두 무릎 위에 올리고, 법당 가운데 계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다가가기 위해 휠체어 바퀴를 분주히 굴리는 이 씨 두 손이 금세 땀으로 젖었다.

봉사자 도움을 받아 불단 위에 가까스로 공양을 올리고 돌아서는 이 씨 뒤로 곧이어 지체장애 노옥선 씨가 두 번째 공양물인 연꽃 모양 등을 들고 섰다. 꽃 공양을 올리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던 시각장애인 강태봉 씨는 조마조마, 과일 공양을 준비한 발달장애인 김진상 군은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육법공양을 무사히 마친 보리수아래 회원 이순애 씨는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법회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데 부처님께 공양물도 직접 올리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육법공양을 올리기 위해 휠체어 위로 향을 올리고 이동하는 이순애 씨.
보리수아래 회원 이순애 씨가 향공양을 올린 뒤 합장하고 있다.
과일 공양을 올린 뒤 밝게 웃는 김진상 군.

육법공양 만이 아니다. 조계사가 장애인의날(4월20일)을 맞아 ‘차별없는 부처님 세상’을 염원하며 개최한 이날 법회의 시작과 끝에서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분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법회 시작전부터 장애인 불자 단체 회원과 조계사 봉사자 수십명이 장애인 불자들이 법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도왔다.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수화사랑합창단 회원, 중앙승가대 봉사모임 ‘자비소리’ 학인 스님 등은 수화로 찬불가를 부르며 법회 분위기를 돋웠다. 조계사 청각장애인 불자모임 원심회는 수화통역으로 법회 내내 시청각장애인들의 눈과 귀가 돼줬다.

이날 법회를 두고 장애인전법단장 도륜스님은 “깊은 이해와 넓은 배려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도륜스님은 “뇌병변, 시청각, 지체 장애 등을 갖고 있는 장애인 불자들이 한 곳에 모여, 그것도 법당에 들어와 법회를 보기 결코 쉽지 않다”며 “오늘 조계사에서 열린 이 대법회를 통해 전국 각 사찰이 장애인 불자들의 귀의처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했다.

도륜스님 말처럼 스님과 신도들의 따뜻한 배려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계사는 이날 법회를 위해 휠체어로 이동이 수월하도록 곳곳에 임시경사로를 설치했다. 아직 부족한 점자 블록판 대신 청년회 등 일일 봉사자들을 꾸려 언어 장애를 가진 이들의 안내도 도왔다. 듣지 못해도 눈으로는 알아들을 수 있도록 수화통역사도 곳곳에 배치했다.

조계사는 이날 시청각 장애인 불자들을 위해 수화통역사들을 법당 양쪽에 배치했다.
연화원 수화합창단 공연.
장애인 불자들에게 단주를 채워주고 있는 스님.

법사로 나선 조계사 주지 지현스님은 장애인 불자들 편의를 위해 청법가, 입정 등 절차도 생략했다. 지현스님은 “산중 사찰이나 도심 사찰이나 어느 절집을 가든 부처님을 멀리서 바라봐야만 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조계사부터라도 한 달에 한번이라도 장애인 여러분을 위한 법회를 준비해 그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달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를 소리없이 지켜본 조계사 신도들의 배려도 있었다. 김경순(64) 씨는 “장애를 가진 분들과 함께 법회를 본다고 해서 불편하거나 안 좋은 점은 없다”며 “몸이 단지 불편할 뿐인데 그간 부처님을 가까이서 못 봤다고 하니 그저 마음이 찡하다”고 했다.

뇌성마비 장애인 홍현승 씨는 이날 장애인 법회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장애인 불자 대표로 발원문을 읽어나갔다. 

“거룩하신 부처님, 법당의 문턱은 높기만 합니다. 문턱에 걸려 어렵게 만난 당신의 가르침과 멀어지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오늘 그 턱을 낮추고 문을 열어 우리를 반겨주신 부처님, 당신의 상호를 친견하며 바른 길을 찾고 세상을 긍정과 자비로 보고, 당신의 말씀을 등대 삼아 어려운 삶을 수행으로 살고자 합니다.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우리의 장애를 결코 장애로 여기지 않고 수행의 벗으로 삶아 깨달음의 길,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지혜의 날을 살겠습니다.”

법회가 끝나고 난 뒤 휠체어를 탄 박미연(80) 할머니가 염주를 채워주던 지현스님 손을 꼭 잡았다. “스님, 법당에는 처음 들어와 봤습니다.” 꽃다운 나이 19살,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60년 가까이 법당 근처만 빙빙 돌며 살았다던, 절에 모신 부모님 위패도 구경 못하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던 박 할머니가 수줍게 건넨 말이었다.  

임시경사로와 봉사자들 도움을 받아 법당 밖으로 나오는 장애인 불자들.
시각장애인 불자가 점자로 된 법회 의식문을 읽고 있다.
장애 인식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는 경내 마련된 원심회 부스를 둘러보는 지현스님(사진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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