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한 상호 축서사 불상과 유사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상 사진=문화재청

평택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에 대한 경기도향토문화총서인 <기내사원지(畿內寺院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심복사 창건과 불상봉안에 대한 얘기가 전해진다. 고려시대 말 경기도 파주에 살던 천(千)씨 등 세 노인이 고기잡이를 하다가 바다 속에서 석불상을 건져 올린 게 시작이다. 불상을 어떻게 봉안할지 걱정하던 차에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난파된 배의 목재를 이용해 법당을 건립하면 된다고 일러줬다. 그렇게 창건한 절이 심복사이다. 바다에서 건졌다는 불상은 석조비로자나불로 예전에는 능인전(能仁殿)에 봉안돼 있다가 지금은 대적광전에 모셔뒀다.

바다에서 끌어올렸다는 불상은 고려 초인 10세기 경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121cm로, 광배는 사라졌지만 불상과 대좌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머리카락은 소라모양 나발로 표현했고 육계는 나지막하다. 얼굴은 동그란 편이다. 눈은 감은 듯 가로로 길고 코는 오똑하고 입은 작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상호를 하고 있다. 목은 짧은 편이다 삼도가 깊게 표현돼 있다. 양쪽 어깨에 걸쳐놓은 대의는 옷깃과 소매깃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가슴 아래에는 리본모양의 내의 매듭이 표현돼 있다. 팔 주위로 새겨진 옷 주름은 몸의 윤곽을 드러나기보다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지권인을 하고 있다. 대좌는 상대만 드러나는데 연꽃무늬가 겹쳐 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중대는 두 마리 사자가 앞발로 상대를 받치는 형상이고 하대 역시 연꽃문양으로 장엄했다.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는 심복사 불상을 두고 “신라하대 조각의 고려적 계승이라는 명제 아래 논의될 수 있는 고려시대 초기 석불의 중요한 예”라고 봤다. 867년경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본 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습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고려시대 불교조각 연구>에서 “온화한 상호를 비롯해 대의에 새겨진 평행 띠 주름과 대의 양쪽 깃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점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유사하다”며 “다만 심복사 불상은 대의가 두껍고 옷주름이 단순하며 소매에도 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위축된 불신 표현 등을 보여 조성시기가 내려옴을 드러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두 불상을 비교해보면 축서사 불상의 주름이 좀 더 자연스러움을 알 수 있다. 팔이나 다리 윤곽에 맞게 흐르는데 특히 다리부분에서 축서사 불상 주름이 여러 겹으로 대좌 쪽으로 흘러내리는 반면 심복사는 수평에 가까운 주름이 3~4개가 표현돼 있다. 꽃무늬도 축서사는 꽃잎이 하나지만, 심복사는 꽃잎 두 장이 겹쳐져 있다.

이처럼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축서사 불상과 비교해 볼 때 신라하대 불상의 영향을 받아 고려시대 10세기 초반에 조성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

[불교신문 3383호/ 2018년4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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