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종단 스님들,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에 가다<下>

해외문명기행에 참여한 어느 비구니 스님이 '요르단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아르논 계곡을 응시하고 있다.

유대교 장로들의 모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십자군전쟁으로 사이가 크게 틀어진 크리스천 세력과 무슬림 세력은 여전히 앙숙이다. 이렇듯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얼핏 불구대천 원수지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뿌리는 같다. 성경 속의 인물인 아브라함(Abraham)의 혈육이다. 아브라함의 적자(嫡子)였던 이삭을 받들면 기독교와 유대교이고, 장남이었으나 몸종의 자식이었던 이스마엘을 받들면 이슬람교다. 

‘여호와’나 ‘알라’나, 똑같은 하나님이다. 아울러 유대교가 믿는 구약(舊約) 성경은 아브라함의 6대손인 모세의 약속이고, 신약(新約)은 40대손인 예수의 약속이다. 유대교가 신약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랑과 용서를 말하는 선인(善人)이 아니라, 숱한 핍박과 유랑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고 보복해줄 초인(超人)을 원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요르단의 페트라.

<요르단...사라진 도시 ‘페트라’>

이집트는 생각보다 못 살았고 요르단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암만 공항을 조금씩 벗어나면서 틀린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황량한 사막 위에 가끔 허름한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요르단의 1인당 국민소득은 4500여 달러. 이집트보다는 많지만(2800여 달러), 한국의 5분의 1수준이다. 무슨 조화인지, 중동에 있으면서도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 천연자원과 고급인력이 태부족이어서 주로 관광산업에 기대어 국가를 유지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페트라(Petra)가 대표적인 관광지다.

페트라로 들어가는 길목인 시크 협곡을 걷고 있는 스님들.

기원전 7세기부터 2세기까지 아라비아반도 등지를 떠돌던 유목민족 나바테아인(人)들이 건설한 도시다. 붉은 사암의 돌산 곳곳에 구멍을 뚫어 집을 만들었다. 사원(寺院)도 있고 배수구도 있다. 사도 바울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아시아와 유럽 간 교역의 주요 길목이었다가 로마제국의 멸망과 지진으로 폐허가 된 것을 19세기에 발견했다. 

훗날 영화 <인디아나 존스3-최후의 성전>의 촬영지로 쓰이면서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당시 국왕 후세인 1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을 후하게 대접했다. 관람료가 8만원을 호가하는 데도, 외국인 손님들로 북적인다. 참고로 피라미드 관람료는 1만2000원 정도. 우리나라 세계문화유산 사찰에 비해 현격히 비싸다.

페트라의 암벽에 새겨서 조성한 알카즈네 사원.

페트라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 아침과 오전은 선선한 편이다. 정오부터 슬슬 뜨거워지더니 오후에 들어서면 4월인데도 체감온도 40도의 폭염에 숨이 막힌다. 하지만 해가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을 날씨로 돌변한다. 한밤중에는 영하까지 떨어지는데 유목민들은 얼어 죽기도 한다. 무엇보다, 눈앞에 살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죽음과 불임의 벌판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길을 일러주는 하늘의 별 그리고 ‘하나님’뿐이다.

사막이 만들어낸
강인함 또는 잔인함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세계 3대 유일신 종교는 흔히 ‘사막의 종교’라고 불린다. 삶이 팍팍할수록 비빌 언덕이 절실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성서 속의 선구자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우한다’는 확신으로 꿋꿋이 위기를 타개해나간다. 게다가 가뜩이나 먹을거리가 변변찮은 상황에서 숟가락을 꽂으러 들어오는 외지인들은 즉시 적으로 간주된다. 

아랍인과 유대인 특유의 교조주의와 배타주의는 사막에 크게 힘입은 셈이다. 반면 불교와 힌두교 등 인도 계열의 종교는 ‘숲의 종교’로 이들과 대비된다.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는 명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그래서 포용과 균형을 중시한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생존이 절대적인 명제다. 오직 의탁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는 신(神) 밖에 없었으리란 걸 땡볕의 황야에서 새삼 실감한다. 종교도 결국 환경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성품은 강인하지만 그만큼 난폭하고 독선적인 면모도 있다. 신의 이름을 내건 종교가 과연 인류에게 이익을 더 주었는지 해악을 더 끼쳤는지, 계산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경주 금선선원 현도스님).”

예루살렘 '통곡의 벽'.

이스라엘...예수의 ‘생사일여’

전 세계 유대인 인구는 17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절반이 이스라엘에 산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의 유수(幽囚)’ 시절부터 2600년을 도망치거나 떠돌았다. 보석을 뜻하는 영어 'Jewelry'는 유대인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언제 강탈당할지 모를 토지 대신에, 당장 들고 튈 수 있는 현물을 선호했다.

본래 경제적 안목이 뛰어나고 처세에 능한 유대인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체제에 적응하며 잘 산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히틀러의 600만 유대인 대학살’이 ‘조국’에 대한 소망에 불을 질렀다. 1948년 팔레스타인의 땅을 조금 빼앗아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들은 사방으로 포위한 아랍 국가들의 수차례 침공을 거뜬히 막아내며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여성에게도 군복무가 의무다(남자 3년 여자 2년). 영토는 강원도 크기에 불과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 이상으로 한국을 능가한다. 세계금융을 장악한 유대인들이다. IT산업과 바이오산업의 발달로 주변의 산유국들이 부럽지 않다. 사막임에도 푸르른 농장들이 즐비하다. 최첨단 관개농법의 결실이다.

이스라엘 여군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비구니 스님들.

이스라엘이 들어서면서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란 별명을 갖게 됐다. 팔레스타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둘레 600km의 장벽을 치면서 요즘엔 폭탄테러가 90% 감소했다는 전언이다. 다만 입경(入境)할 때의 검문은 2시간 넘게 걸릴 만큼 깐깐했다. 인접한 시리아도 내전 중이지만 외려 현지인들은 한반도를 더 걱정한다.

예루살렘은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안정적 긴장’을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석성(石城) 안에는 사형을 언도받은 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가 갖은 폭행과 모욕을 당하며 죽으러 가던 길이 구간별로 보존돼 있다. 죽음의 장소인 예루살렘도, 태어난 베들레헴도, 성장한 나사렛도 전부 이스라엘 땅이다. 

특히 예루살렘엔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성전이 모두 자리했다. 크리스천과 무슬림과 주다이스트들은 서로 구역을 나누고 편을 갈라서 예배를 드린다. 의복도 다르고 모시는 성물도 다르지만, 신심만은 다들 간절하다. 기독교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다수가 나라 밖에서 온 백인들이거나 한국인들이다.

특별해져야만 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성(姓)이 ‘슈타인(stein)' '버그(berg)' '만(mann)'으로 끝나면 거의가 유대인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븐 스필버그, 페이스북 개발자 마크 저커버그가 비근한 예다. 천재들도 철학자도 예술가도 많다. 고통이 깊으면 생각이 깊어지게 마련이다. 이스라엘에서 역사지리를 전공하는 한국인 가이드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누군가 유대인 학자에게 ‘유대인들은 정말 특별한 DNA를 가졌느냐’고 물었다. 학자는 일단 웃었다. 그리고는 ‘다 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특별한 DNA를 가질 수 있겠느냐’고 고개를 저었다. 단지 이 말은 사족으로 달았다. ‘어쩌면 특별해져야만 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예루살렘 성 내부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

스님들은 예루살렘 성이 내려다보이는 시온 산에서 삼귀와 칠정례를 올리며 문명기행을 마무리했다. 종교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위로였다.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각 나라마다 달랐던 가이드들은 공통적으로 독실한 크리스천들이었고 목사이거나 선교사들이었다. 예루살렘 수태고지 교회에선 성지순례를 온 교회 사람들과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도법사였던 혜국스님(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은 “일부 편협한 교회 신자들에 의해 우리의 순례가 어이없이 악용될 수 있다”며 신중한 처신을 부탁했다. 더불어 한 마디 덧붙였다. “종교가 먼저인가, 도덕이 먼저인가. 만약 종교가 먼저라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처럼 오로지 국민을 위해 헌신한 위인들도 천당에는 못 갔을 것이다. 하나님을 안 믿었으니까. 도덕이 먼저여야 한다.” 

서울 연화정토사 주지 성천스님은 신도로부터 ‘예루살렘의 스님들, 안 어울리지만 종교를 초월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스님들의 소감은 한결같았을 것이다. ‘불살생(不殺生)을 가르치는 불교만이 인류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보장할 수 있겠구나.’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칠정례를 올리고 있는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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