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이 궁금하다고요? 이 불화를 보세요”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아미타불도로 1776년 조성됐다.

오로지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나라. 온갖 보배가 널려있고 항상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 누구나가 원하는 이곳이 바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극락세계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서쪽으로 10만억의 불국토를 지난 곳에 있다는 극락세계는 무량한 광명과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 곧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는 정토세계이다. 

석가모니불 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미타유스(amityus, 無量壽) 또는 아미타바(amitbhas, 無量光)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우리들에게 무량한 수명과 광명을 주시는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아미타불은 원래 법장(法藏)이라는 보살이었다. 무상의 깨달음을 얻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본원(本願)으로서 48대원(四十八大願)을 세우고 5겁 동안 수행을 거듭했다. 그 결과, 지금으로부터 10겁이라고 하는 오랜 옛날에 부처가 되어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10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안락(安樂)이라고 하는 정토에서 교설(敎說)을 펼치고 있다.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은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 등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미망(迷妄)의 세계에서 헤매는 중생은 누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만 염불하면 죽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아미타정토신앙은 어느 곳,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열렬히 환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6~7세기경 신라의 원효(元曉)스님에 의해 아미타신앙이 널리 보급되고 체계화되었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사후(死後)신앙인 지장보살(地藏菩薩) 신앙, 그리고 선(禪)사상과 결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염불신앙으로 널리 성행하면서 아미타사상은 침체된 불교계에 신앙의 불을 밝히기도 하였다. 

 

극락세계 상주하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협시
이행문 정토신앙 언제나 각광
우리나라 원효스님 널리 전파

아미타불이 망자 맞이해주는
‘내영도’ 고려시대 많이 제작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아미타삼존내영도.

이처럼 아미타신앙은 시대를 막론하고 또 계층을 막론하고 유행하였던 신앙으로 일찍이 여러 종류의 그림으로 그려졌고 지금까지도 많은 작품들이 남아있다.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극락세계의 장엄한 모습을 묘사하거나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을 그린 그림, 아미타불과 권속들이 내영하여 임종자를 맞이하는 그림, 극락세계의 장엄함을 묘사한 그림 등 다양한 불화들이 그려졌다. 아미타불화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그림은 아마도 극락전에 봉안되는 아미타극락회상도(阿彌陀極樂會上圖)가 아닌가 싶다. 극락전이라는 전각은 그 뜻 자체가 서방극락정토에 주재하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이다. 극락전 안에 들어가면 가운데 아미타불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뒤에는 서방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과 여러 권속들을 그린 불화가 봉안되어 있다. 

그림의 형식은 대개 중앙에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신 아미타부처가 앉아 계시고 그 주위로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비롯하여 많은 보살들이 부처님을 둘러싸고 있다.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등 10대 제자, 부처님의 설법을 옹호하는 사천왕, 팔부중 등이 협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아미타불화의 형식은 석가모니부처를 그린 영산회상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영산회상도에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반면 아미타불화에서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수인도 다르다. 영산회상도에서는 석가모니불이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고 있다. 아미타불은 한 손은 들어서 엄지와 셋째손가락을 맞잡고 한손은 무릎 부근에 대어 손가락을 마주 잡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을 결하고 있는 모습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사찰의 극락전에 봉안된 아미타불화는 대부분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들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전남 구례 천은사의 아미타불도, 통도사 아미타불도, 용흥사 아미타불도, 파계사 아미타불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서울 수국사 극락구품도.

한편 아미타불화 중에는 임종할 때 아미타부처님이 와서 임종자를 맞이해가는 그림, 즉 내영도(來迎圖)가 널리 그려졌다. 아미타신앙에 의하면 평소 염불수행을 잘하는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서방극락에서 아미타부처님이 내영하여 극락으로 인도해 간다고 한다. 이 때 임종자의 수행 정도에 따라 때로는 아미타부처님이 혼자 내영하여 맞이해가기도 한다. 또 때로는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등과 함께, 또는 무수한 성중들이 함께 와서 맞이해 간다. 아미타내영도는 바로 이런 장면을 그린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고려시대 때 많이 제작되었다. 

일반적인 아미타불화와는 달리 아미타불 혹은 권속들이 대개 왼쪽을 향하고 서서 내영자를 맞이하는 모습인데,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내밀어 임종자를 맞이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내영도 중에서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호암미술관소장 아미타내영도(국보 218호)는 손을 내밀어 임종자를 맞이하는 아미타불과 앞으로 나와 몸을 숙이고 두 손으로 연화대좌를 받들고 임종자를 맞이하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아미타내영도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라든가 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 등 역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불화이다. 반야용선도는 반야용선에 왕생자들을 태우고 지장보살과 인로왕보살이 극락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1582년 비구니 학명(學明)스님이 혜빈 정씨(惠嬪 鄭氏)의 만수무강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제작한 아미타내영도 하단에는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는 일행들이 붉은 바탕에 금니로 그려져 있다. 

1576년 안락국태자경변상도(安樂國太子經變相圖) 중의 극락용선도, 서울 안양암 대웅전 반야용선도(조선후기), 경기도 청룡사 대웅전 극락용선도(조선말기) 등도 전하고 있다. 또한 극락구품도는 <관무량수경>에 묘사된 극락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조선후기, 특히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제작되었다. 

수국사 극락구품도(1907년)는 화면을 가로, 세로 각 3등분하여 9면으로 구획한 뒤 아미타설법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극락정토의 장엄한 모습과 극락연못에 왕생한 중생들에게 아미타삼존이 수기를 주는 장면을 묘사하였는데, 왕실발원 불화답게 화려한 금니의 사용이 눈길을 끈다.

서방 극락정토의 아미타불과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극락세계를 묘사한 아미타계 불화는 모든 중생들의 종교적 원망(願望)을 불화를 통해 표현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아미타불화는 사후세계를 그린 지장시왕도, 지옥도와 함께 불교적 세계관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불화가 아닐까.

안성 청룡사 대웅전에 그려진 반야용선도.

[불교신문3383호/2018년4월11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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