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목련, 눈 시리게 환히 피어있는 봄날, 생두를 주문해서 커다란 가마솥에 커피를 볶아 보았다. 가마솥에 커피 볶는 일, 내게는 신선하고 설레는 작업이었다. 어린 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자칫 망치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정성을 다해본다. 

커피 볶아지는 고소한 냄새가 도량 전체에 향기가득 퍼진다. 타지도 않게 그렇다고 색이 애매하지 않게 정성을 다해 볶으며 저 먼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난한 집 꼬맹이가 아픈 엄마를 위해 가냘픈 손으로 원두 하나하나에 깃들었을 소년의 마음을, 혹은 아픈 아들의 약을 살 돈을 벌기 위해 콩 하나하나 담았을 엄마의 간절한 마음을 떠올려본다. 

그래서 대강 할 수가 없다. 템플을 찾아와 무거웠던 마음을 털어놓는 이들의 마음도 고맙게 받는다. 귀하게 듣는다. 그들에게 건네는 차 한 잔도 정성스럽게 우려낸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다. 커피 마시는 일도 커피 마시며 대화 나누는 일도 그러하다. 예사롭지 않은 인연의 순간이어서 한 구석도 성의 없이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순간순간이 간절한 기도의 순간이다. 뭘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진심이, 지극한 마음이 바닥끝까지 닿는 긴 호흡의 종적 순결성의 회복. 깊은 우물 속 바닥끝까지 내려간 두레박이 설레며 물 한 바가지 끌어올리는 정결한 기도, 맑은 청정한 기운으로 매순간마다 세속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간절한 기도다. 

저 맑고 투명한 목련꽃을 보며 겨울을 묵묵히 견뎌내고 잎사귀보다 먼저 꽃을 틔우는 목련의 진화가 순결한 기도이다. 나의 커피 볶는 이 순간도 간절한 기도와 함께 한다. 모두들 마음의 심저에서 그 찬란한 생명의 원천을 문득 발견하시기를 모두가 평안하기를.

[불교신문3382호/2018년4월7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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