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문화와 석가모니 붓다’ 조준호 고려대 연구교수 강연

 

지난 3월22일 수원 경기불교문화원 강의실에서 열린 첫 강의에서 조준호 교수는 ‘인도문명의 기원-자연, 사람, 사회, 종교’를 주제로 강의했다.

인도 자연환경과 역사

인도역사는 오래됐다. 4대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문명 발상지이기도 하다. 인도가 중요한 것은 바라문 베다종교가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지금 바라문 베다종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다. 그 시대 인도에는 계급이 있었다. 브라흐만은 태어날 때부터 성전을 암기하는 훈련을 한다. 발음하나 안 틀리게 전승을 하는데, 발음 틀리면 기도발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인도 4대 베다에서 시작된 성전인데 지금까지 발음이 99%가 같다고 한다. 불교경전도 많은 부분이 산스크리트어로 썼다.

인도 자연환경은 3가지로 나눈다. 히말라야 산맥지역, 갠지스강 대평원, 데칸고원지역이다. 인도아대륙이라 불리는 이유는 크기가 독자적인 대륙수준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남북한 합쳐서 16배, 남한의 33배에 달한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서 인도에 도착하기까지 구법승들의 고행은 엄청났다. 설산을 통과하는 눈물겨운 장면들이 기록돼 있다. 저렇게 가져온 문화가 우리에게 자양분이 됐지만, 스님들은 목숨을 걸고 다녀왔다. 20여 명이 단체로 구법여행을 떠났지만 서너 명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히말라야 설산지대가 그 정도로 험난했다. 히마는 눈, 알라야는 산이란 뜻으로, 히말라야=설산이다. 데칸 고원지역은 인도 아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지형으로 알려져 있다.

갠지스강 대평원은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이었다. 길이가 2414km, 넓이가 240~320km, 넓이가 100만㎢에 달하는 충적평야지대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하면 산사를 떠올린다. 그래서 산중불교란 이미지가 있다. 원래 인도에서 불교는 도시의 종교였다. 불교 경전 속에서 수많은 도시가 나온다. 기름진 땅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상업이 발달했다. 불교 경전 속에서는 수닷타 장자 등 장자가 자주 등장한다. 그 사람들이 바로 상업을 기반으로 하는 상인계층이다. 불교교단을 발전시키고 뒷받침해준 주요한 인물들이 바로 상인계층이었다. 그래서 경전에 장자가 자주 등장한다. 농업 상업 공업이 발전하는 데 그 중 돈 많이 벌었던 사람들이 상인이다. 그들이 부처님 교단이 발전할 수 있게 보시를 하고 지원했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도시가 발달한다. 도시의 특징은 익명성이다. 시골에서는 옆집 숟가락 숫자까지 꿸 정도다. 동네 대소사에 관여하고 동네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징벌할 수 있었다. 도시는 익명성 때문에 숨어서 욕망을 쫓는 행위를 했다. 허리띠 졸라매고 살던 시대를 지나 넉넉해지면 윤리 도덕적으로 느슨해진다. 가정이 어려울 땐 부부가 협심단결 하다가 넉넉해지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시대적으로 보면 이 시대가 그랬다.

상업이 발달하고 생활이 풍족해지면서 인간의 문제, 세계란 무엇이고 윤리란 도덕이란 무엇인지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환경 자체가 전격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익명성 속에서 욕망과 윤리도덕이 충돌하면서 삶에 대한 고민도 제기됐다. 세계와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올곧게 풀어내야 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 속에서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 인류문명에 영향을 지금까지 미치는 게 바로 불교다. 인도를 벗어나서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민족 자양분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알던 모르던 그 기반으로 살고 있다.

동아시아문화권에서 인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인도는 신두(辛頭) 신독(身毒) 현두(賢頭) 천두(天豆) 등으로 불렸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스님은 인도를 천축이라고 불렀다. 인도에는 파키스탄과 인접해 아라비아해로 흘러가는 신두강이 있다. 인도를 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강이다. 인도를 뜻하는 신두라는 말은 강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를 보면 강 건너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알 수 있다.

서역으로 가 경전과 문화를 수집해 당나라로 돌아온 현장스님을 통해 동아시아 정신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인도라는 이름도 현장스님으로부터 시작됐다. 인도에서 17년 동안 유학하고 돌아온 스님은 신두가 아닌 인도라고 이름을 붙였다. “인도의 뜻은 당나라의 달에 해당된다. 달에는 많은 이름이 있지만, 인도는 그 중의 하나를 말한다. 뜻하는 바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윤회하여 그침이 없고, 그 무명의 장야(長夜)에는 새벽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해가 숨어버리면 밤의 등불이 밝음을 계속 이을 수 있는 것처럼 달 없는 밤의 별빛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어찌 둥근 달의 밝음에 미칠 수 있으랴. 인도를 달이라 한 것도 진실로 이 같은 이치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 실제로 인도의 성현들은 전해오는 법을 이어받아 사람들을 가르치고 사물을 다스리는 법이 마치 달이 천하를 비추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인도라 부른다.”

동아시아 많은 사람들이 인도의 자유로운 문화, 종교의 자유로움을 보고 인도로 향했다. 인도순례기를 남긴 사람들은 인도를 찬양하고, 심성이 좋다고 감탄한다. 현장스님은 수십 개 나라를 밟아본 뒤에 인도만한 나라가 없다고 해서 달로 지칭했다. 불교경전에서는 인도 아대륙 염부제로 한역했다. 남섬부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인도말로는 잠부드위빠라고 한다. 잠부는 꽃사과, 드위빠는 대륙을 의미한다. 인도 바라문교에서는 인도를 ‘바라타’라고 한다.

한국문화속의 인도

우리문화와 인도문화의 관련성을 떠올려 보자. 인도로부터 기원한 문화가 있다면 무엇일까. 의외로 생활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건강이나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요가가 대표적이고, 요샌 거리에 인도음식을 파는 곳이 적지 않다. 인도에서 기원한 것 중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불교다.

한국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한국사상을 논할 때 크게 네 가지를 이야기한다. 불교, 유교, 도교, 무속이라고 하는 무교다. 유럽, 미국 등 한국학을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네 가지 사상이다. 이걸 이해해야 제대로 한국을 알 수 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을 느끼지 못하고, 사람이 공기를 인식하지 않듯이 불교는 한국문화 속에 깊이 내재돼 있어 알게 모르게 우리는 불교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한국불교는 1700년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 정신문화의 아래층을 형성하는 문화다. 삼국시대도, 고려도 국교가 불교였다. 조선시대도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삼았지만, 기층 민중의 종교는 불교였다. 불교문화가 한국 사람들 유전자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리 의식이 불교적이고, 언어 또한 불교적이다. 행위도 마찬가지다. 공간, 시간개념이나 언어생활에서 불교적 내용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 온 것인지 안 온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인연’이라고 한다. 인연은 불교의 핵심사상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성당 다니는 사람들도 사귀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인연은 과거현재미래 삼세가 전제된 말이다. 기독교 이슬람교에는 전생이 없다. 윤회 개념도 마찬가지다. 종교를 떠나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 정체성은 유불도에 근간하고 있는데 겉도는 교육으로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우리가 <천수경> 기도를 많이 하는데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주로 독송한다. ‘신묘장구대다라니경’은 원래 독립된 경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돼 있어 의미를 해석하기보다 그대로 독송하는 경우가 많다. 다라니 속에는 인도 보편적인 신화와 관련 있다. ‘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는 ‘왼쪽 어깨에 흑사슴 가죽을 걸치신 분께 경배하옵니다. 성취케 하소서’라는 뜻인데 왼쪽 어깨에 흑사슴 가죽을 걸치신 분은 바로 시바신을 말한다.

시바신은 관세음보살과 관련돼 있다. 인도 종교문화적인 맥락에서 대승불교 관세음보살이 시바신과 연관이 있다. 불교라는 종교 속에 시바신이 주문에 등장하는 것이다. 용맹스런 호랑이를 타고 앉은 모습은 시바신의 힘을 보여준다. 우리는 산신각에 가면 호랑이를 탄 산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서로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인도는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는데 불교를 수용해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덕분에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에 갇힌 문화가 아니라 중앙, 남아시아문화까지 접할 수 있었다. 당시 불교전래는 우리 조상들에게 엄청난 문화충격이었다. 삼국시대 국가적으로 불교를 공부했다. 스님들이 국사를 지낸 이유가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를 넘어 새로운 문화경험을 시켜준 게 불교다. 문화적으로 하나만 알다가 수준을 달리하는 윤리, 철학, 문학의 문제를 다룬 불교가 전해지면서 한반도 문화는 살찔 수 있었다. 

[불교신문 3381호/2018년4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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