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수 71세인 서울 기원정사 창건주 설봉스님이 선학원 이사장과 이를 비호하는 이사들의 즉각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정진에 들어간 지 26일로 벌써 6일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경주 흥륜사 한주로 있는 법념스님이 ‘전국에 계시는 선학원 스님들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기고문을 보내왔다.

설봉스님의 절친한 도반이기도 한 법념스님은 기고를 통해 “선학원은 청정승가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이라며 “이러한 재단을 사리사욕으로 채우고 있는 법진 이사장은 물론 이를 묵인하고 비호하는 이사회까지 절대 용서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사장은 일반인보다도 못한 사람일 뿐 아니라 인천의 스승은 고사하고 일말의 양심도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이라며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스님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면 절대 이럴 수가 없다. 만약 이사장을 용납한다면 승가 전체가 도덕불감증이라고 세간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전문을 소개한다.

전국에 계시는 선학원 스님들께 드리는 글

귀의삼보 하옵고, 글을 올리기 전에 먼저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비구니 법념(法念)입니다. 선학원 분원인 경주 흥륜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은사는 혜해(慧海)스님이십니다. 선학원 분원장 소임을 두 만기 마치고 지금은 한주로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3월21일 오후2시부터 밤11시까지 보고 듣고 겪었던 일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올리려고 마음먹은 것은 그날 겪었던 일들이 제 가슴에 불을 지폈기 때문입니다. 도반인 기원정사의 설봉스님이 꼭 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선미모(선학원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심원스님의 헌신적인 활동상이 저를 감동시켜 경주에서 선학원 회의에 참석하려고 전날 올라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도 선학원 분원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선학원이 앞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모임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어서입니다.

3월21일 선학원 원로 스님들이 선학원에 운집하게 된 것은 3월13일 ‘선학원 원로·중진스님들의 성명서’가 발표된 바로 그 날짜로 선학원에서 성명서를 낸 창건주 분원장 스님들에게 ‘재단 이사회 동참 요청의 건’으로 공문을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선학원 집행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인사동 사거리에서 ‘선미모’가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침묵의 시위를 3년간 이어와도 일언반구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급하게 회의를 주선한 것을 보면 마음이 급하긴 급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일 중요한 모임장소도 밝히지 않고 공문을 보낸 것만 봐도 훤히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육하원칙(六何原則)을 벗어난 이런 공문을 보내다니, 누가 보아도 웃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서 쓸 수는 없습니다. 바늘구멍에 실을 꿰어야 바느질을 할 수 있습니다.

3월 21일 오후 2시에 열린다는 선학원 모임에 시간 맞춰 들어섰습니다. 저는 전 분원장이고 선학원 정상화를 위해 기치를 올린 “선학원 원로·중진들의 서명”이라는 성명서에 서명 날인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자리에 들어갈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철문으로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그냥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한 번 닫힌 철문과 법당문은 회의하는 내내 끝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문전박대였습니다. 이전부터 선학원 집행부의 만행은 소문으로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만, 실제로 그렇게까지 몰상식하고 유치한 방법으로 우리를 맞이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더 소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은 적은 일흔다섯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들어가는 철문은 철창처럼 꽁꽁 닫아놓고 한사람씩 신원확인을 한 뒤 들여보내주었습니다절 집안에서 스님들을 대하는 태도라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입구에는 우람한 체격을 한 비구 셋과 건장한 남자들 몇 명이 문을 턱 가로막고 지켜 서서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서명날인을 한 사람 중에 어느 스님은 되고 안 되고를 가리더니 겨우 여덟 명만 회의장에 들여보냈습니다.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못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모임을 가지자고 한 것은 현 선학원 집행부인데 모임에 참석하러 온 스님들을 가려서 들어가게 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어떤 모임이든지 찬반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가운데 건설적인 의견이 나오는 법인데, 제 편만 들여보내는 어용회의(御用會議)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민주화시대를 향해 부응하는 일이라고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일이 그날 벌어졌던 것입니다. 인천의 스승이 되고 대중을 이끌어나갈 스님들이 시대를 역행하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석하러간 스님들은 거의가 칠십대 이상인 노비구니스님들로서눈을 부라리며 막아내는 힘에는 당할 길이 없어 할 말을 잃었습니다그런 대응을 하는 선학원 집행부를 보고 우리 스님들은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학원에 모인 스님들이 이구동성으로 간청했습니다.

“회의에는 못 들어가더라도 법당에서 참배만 하도록 해주세요.”라고.

하지만 대답은 단 하나였습니다. “초대받지 못한 스님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비공개회의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하는 말이 “회의가 끝나면 이사장 면담도 해드리고 법당에도 다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라고 우리들을 회유했습니다.

그들의 말에 속아 두 시간 동안 눈과 진눈깨비가 번갈아 가며 펑펑 쏟아지는 문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못 들어간 스님들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우산을 들고 하염없이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려 차안으로 잠시 들어와 몸을 녹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줄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기에 목도리와 장갑은 물론, 옷도 얇게 입어서입니다. 그래도 스님들은 모든 걸 평화적으로 이끌고 가고프다는 마음이 더 커서 두 시간 동안이나 철문 밖에서 추위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사이에 경찰들이 서너 명 오더니 나중에는 예닐곱 명으로 점점 불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서로 몸싸움을 하거나 안 좋은 불상사가 일어날까봐 온 듯했습니다. 경찰복을 입지 않은 사복경찰들도 눈에 띠어 주위가 한층 삼엄해 보였습니다. 선학원측에서 경찰을 요청한 것입니다. 정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가자의 정신과 공심이라는 마음가짐만 있어도 충분히 대화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을 터인데,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아 사태를 이 지경까지 이끌었을까 라는 자기비판을 했습니다. 그와 동시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뭉치게 만들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주된 원인은 현 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이 중앙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3월 21일 모임에서 선학원 원로스님들과 중진스님들은 결의문을 낭독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에 전국에서 뜻을 같이 한 스님들은 29명이었습니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일당백으로 단단한 각오를 다졌습니다.

결의사항은 간단하게 줄여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사장은 조건 없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라.

둘째. 빠른 시일 내에 전국 분원장 회의를 개최하라.

셋째.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개관식은 여법하게 개최되어야한다.

예상은 했지만 회의가 끝나도 우리들은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사장 면담은커녕 법당조차 못 들어갔습니다. 같은 승복을 입은 승려로서 법당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보광선원 선방에서 온 비구스님 한 분이 설두(設頭)해서 ‘신묘장구대나라니’를 염불하기 시작했습니다. 눈비를 피할 곳도 없어 그대로 맞으며 쉼 없이 목탁치기를 다섯 시간이 넘어 밤 10시가 지났지만 선학원 측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보과에서 왔다는 사복경찰만 부지런히 들락날락하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일을 꾸미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진즉 말씀드려야 하는 일이 빠졌습니다. 저의 도반인 기원정사 설봉스님은 이런 일을 예상했는지 일찌감치 법당으로 올라가 밖이 보이는 난간에 앉아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습니다. 원하는 것은 오로지 단하나입니다. “이사장과 이사들의 퇴진”입니다. 오죽하면 그런 결심을 했겠습니까.

선학원 정상화를 위해 설봉스님에게 힘을 보태야 합니다. 비록 한 사람이 시작한 단식투쟁이지만 우리 모두가 다 같이 투쟁하는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합니다.

선학원은 청정승가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입니다이러한 재단을 사리사욕으로 채우고 있는 법진 이사장은 물론 이를 묵인하고 비호하는 이사회까지도 우린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뿐만 아니라 이사장은 성추행이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행동을 한 사람입니다.

지금 세간에는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투 운동이 신문과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고 있습니다일반인은 물론 공직자나 유명 예술인들도 그런 일이 보도되면 진상조사도 하기 전 모두 직함을 내려놓습니다그런데 이사장은 6월의 형을 받고도 또 항소를 한 상태입니다이런 이사장은 일반인보다도 못한 사람일 뿐 아니라 인천의 스승은 고사하고 일말의 양심도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입니다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스님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면 절대 이럴 수가 없습니다만약에 우리가 이러한 이사장을 용납한다면 승가 전체가 도덕불감증이라고 세간의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밤 10시가 넘어서 경찰들의 행동이 갑자기 바빠지며 소란해졌습니다. 그러더니 경찰들은 선학원 문이 폐쇄되어 화장실조차 못가고 있던 우리들에게 화장실을 안내하겠다하면서 우리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이와 동시에 다른 경찰들이 이사장을 비호하며 밖으로 빼돌렸습니다. 청정승가에 007 첩보작전도 아니고…. 오직 이사장과의 면담만을 기다리던 우리들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우리 모두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후 2시부터 밤 10시가 넘도록 추위에 떨며 기다린 보람도 없이 경찰마저 합세해 뒤통수를 치다니….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야 할 경찰이 한 개인, 그것도 부도덕한 사람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수십 명의 스님들을 기만하다니. 분노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뭐가 떳떳하지 못해 앞에 나서지 못하고 몰래 도망가다니. 인간적으로 이사장이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는 불변의 법칙”이라 이사장은 얼마 안 있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선학원 정상화가 너무나도 시급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국에 계시는 분원장 스님 여러분!

선학원 정상화에 힘을 모읍시다.

한국승가의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분연히 일어납시다.

만약 혼자 살려고 하면 모두 죽게 되지만 힘을 합치면 선학원의 미래는 어둡지 않습니다.

홀로 단식투쟁하고 있는 설봉스님의 원력과 지금 이 시간에도 헌신적으로 애쓰고 있는 선미모스님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분연히 일어나 행동합시다.

전국분원장회의가 열리는 날 한 분도 빠짐없이 동참하시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발원합니다.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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