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념스님 ‘선학원의 미래는 어디로 흘러 갈 것인가’

 

선학원의 미래는 어디로 흘러 갈 것인가

어제 있었던 일련의 사태는 나를 절망으로 빠트렸다. 말로만 듣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져서다. 지난 3월21일 오후 2시 선학원에서 가진 모임에서였다. 그것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보다 앞서 ‘선학원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약칭 선미모)이 3년 전 발족됐다. ‘선미모’는 누가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각자 주머니를 털어 운영하는 순수한 모임이다. 모임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선학원 이사장의 성추행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면서 부터다. 불교집안이 이런 일로 얼룩져선 안 되고, 더욱이 이사장이란 직함을 가진 스님이 저지른 일이어서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인사동 사거리에서 묵묵히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인지 벌써 3년. 선학원 집행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선미모는 이대로는 절대로 안 되겠다 싶어 분연히 일어나 ‘선학원 원로·중진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서명날인이 첨부된 성명서를 발표했다. 동참한 분들은 39명이었다.

나도 흔연히 동참했다. 하지만 이사장을 비롯한 측근들은 지금까지 선미모를 얕잡아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엔 송아지가 부뚜막에 엉덩이를 덴 것처럼 ‘엇 뜨거워라’ 싶었던지 당장 반응을 보였다. 공문을 보내자 세 시간이 채 안 되어 모임을 갖자는 공문을 보내왔다. 얼마나 급했던지 육하원칙의 하나인 장소도 쓰지 않은 채 말이다.

요즘 신문지상이나 매스컴에서는 ‘미투 운동’이 날마다 보도되고 있다. 이런 현실이거니 현 선학원 이사장은 내내 변명에만 급급하다. 정말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인가.

그뿐인가. 모임시간에 맞춰 도착한 우리들을 맞이한 것은 단단한 철문 앞을 가로막은 건장한 비구 셋과 남자들 여럿이었다.

그것도 한 사람씩 신원 조사를 해서 들여보내 치밀한 007작전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다. 초청장을 받은 사람만 들어간다는 괴이한 원칙을 들이대어 나도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29명 중에 8명만 들어가는 행운(?)을 안았다. 그게 무슨 모임인가. 자기편만 모여서 하는 어용회의(御用會議)가 아닌가. 선학원이라는 명칭이 그렇게 부끄럽기는 처음이었다.

눈과 진눈개비가 번갈아 퍼 붇고 바람까지 불어 밖에서 오들오들 떨기를 두 시간여. 우리들은 믿었다. 거의 칠십이 넘은 순진한 비구니스님들이라 그들이 하는 말을.

“회의가 끝나면 이사장과의 면담자리도 마련해드리고 법당에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해드릴 테니 좀 기다려주세요.”

그 꼬드김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 속여도 유분수지 거짓말까지 해놓고도 태연했다. 철문 안은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했다. 회의가 끝나면 법당을 참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오죽하면 그 순간에 기독교 광신도들이 들고 다니는 ‘불신지옥(不信地獄)이란 피켓이 떠올랐을까.

심지어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은 밤10시가 넘도록 다섯 시간동안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경하며 기다린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사장을 둘러싸고 점퍼를 덮어 몰래 빼돌린 것이다. 뒤를 쫒아갔지만 역부족이었다. 예닐곱 명의 경찰이 도와주는 척하더니 뒤통수를 친 것이다.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고 도망간 이사장이 도리어 불쌍하게 여겨진다.

선학원이 조계종단의 모태였던 그 시절을 생각해 보자.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불교정화를 위해 몸 바쳤던 당시 선지식들의 희생정신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정녕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정말로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암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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