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은 ‘조사선’ 기반 … 실천방법은 ‘간화선’

법랑선사의 스승인 도신의 도량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호북성(湖北省) 황매(黃梅)의 사조사.

 

인간 중시 관점에서 출발해
본 바탕 ‘자성’ 청정에 역점
‘돈오’ 달마 법맥, 혜능 이후
선종사 측면 큰 물줄기 형성 

구산선문 외 5가7종도 수입
“조계종 종조는 도의국사”…
지증대사적조탑비에 따르면
우리나라 禪 전래자는 법랑

신라 말 고려 초 산문(山門)이 받아들인 선법(禪法)이 중국 당나라 때의 조사선이다. 조사선은 한국선의 원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조계종 교육원에서 간행된 <간화선(조계종수행의 길)>에 조사선의 시작과 그 조사선의 발달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였고(三處傳心 : 靈山會上拈花微笑, 多子塔前分半坐, 沙羅雙樹槨示雙趺), 이 법이 전승되어 28번째 보리달마는 동토(東土)의 첫 조사가 되었다. 이후 6조 혜능이 실질적으로 조사선을 정착시켰으며, 마조와 석두는 조사선을 크게 융성시킨 인물이다.” 

실은 조사선을 정착시킨 인물들은 마조와 석두이고, 혜능은 조사선이 일어나게 하는 근원점이라고 해야 옳다. 처음 글을 연재하는 1회에서 중국이 불교를 수용하고 어떻게 발전하였는지의 양상에 대해 언급했다. 그 연장선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520년 달마가 중국에 입국한 이래 중국의 선(禪)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선종의 시작은 달마이지만, 달마 이전에 보지공(寶誌公, 418〜514)이나 부대사(傅大士, 497˜569) 등 선수행하는 선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 선종의 역사는 달마를 기점으로 하지만, 선사상은 달마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법랑선사의 선 전래 기록이 남아있는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국보 제315호이다.

당나라 시대는 중국 역사상 문화적으로나 대외적·경제적으로 최고의 전성시대이다. 그런데 755년 ‘안사의 난’을 계기로 경제 정치 문화 등 당나라 사회가 총체적으로 위축됐다. 불교의 경우, 교종은 쇠퇴하지만 선종은 최고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게다가 정치도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분산되는 양상을 띠었다. 바로 8세기 후반부터, 지방을 주축으로 발전하는 선이 조사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사선이 중국보다 80여 년 후에 전개됐다(구산선문). 현재 우리나라의 선은 실천 방법이 간화선이지만, 이론은 조사선에 기반을 둔다. 

‘선’이라는 말에 ‘조사’를 붙여 조사선(祖師禪)이라는 용어가 활용됐다. 조사선 확립으로 중국의 선종이 완성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본 바탕인 자성(自性)이 청정하다는 주제의식을 강조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이 선사상은 중국 기존의 문화(도교)적인 성향 아래 인도와는 다른 중국 선종의 새로운 태동이라고 보면 옳을 듯하다. 조사선 이전의 선을 여래선(如來禪)이라고 하는데, 달마가 제자인 혜가에게 <능가경>을 전하며 수행의 지침을 삼으라고 하여 조사선 이전을 여래선이라고 칭한다. 능가경에서 4종선을 언급하고 있는데, 최고의 선을 여래선이라고 하기 때문에 선종사에서 이렇게 호칭하고 있다. 

초조 달마부터 시작해 2조 혜가, 3조 승찬 대까지는 두타행자나 다름없었다. 즉, 왕권의 도움으로 교학불교가 크게 번성할 무렵, 초기 선종은 왕권이나 귀족들의 도움 없이 수행하였다. 4조 도신과 5조 홍인의 선법을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조직적인 승가 형태를 이루었다. 5조 홍인으로부터 배출된 신수계를 북종(北宗)이라 했고, 혜능계를 남종(南宗)이라고 했다. 이렇게 ‘남종’ ‘북종’이라고 불린 것은 혜능의 제자인 하택 신회(神會荷澤, 670˜762)선사에 의해서다. 신회는 북종을 방계라고 하고 수행법은 점수(漸修)라고 했다. 즉, 북종선의 습선적인 병폐를 비판하면서 혜능은 달마의 법통을 이어 받은 적손으로서 남종은 반야와 돈오(頓悟)사상이라고 주장했다. 6조 혜능(638˜713) 이후부터 선종의 역사는 큰 물줄기를 형성하게 됐다. 그런데 선종의 역사는 신회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파에서 발전되었다. 혜능의 제자인 남악 회양과 청원 행사 문하에서 선종이 크게 발전한 것이다. 남악 문하에서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이 배출됐고, 청원 문하에서 석두 희천(石頭希遷, 700˜791)이 등장한다. 

마조 문하에서 위앙종과 임제종, 석두 문하에서 운문종과 조동종, 법안종이 형성됐다. 다시 북송 시대 임제종에서 황룡파와 양기파로 나뉜다. 이를 5가 7종이라고 한다. 처음 송대 초기만 해도 운문종과 법안종이 위세를 떨쳤는데, 점차 황룡파로 옮겨갔고, 다시 양기파의 선사상이 발전했다. 훗날 양기파에서 간화선이 등장한다(이 점은 후에 거론키로 한다). 우리나라 9산선문 이외 수많은 선종이 개산되었는데, 5가7종이 모두 수입됐다.  

조계종의 종조는 가지산문의 도의국사라고 하지만, 한국선사상적 측면에서 보면 최초로 우리나라의 선 전래자는 7세기의 법랑(法郞, 신라 진덕왕 대, 647˜653년 재위)이다. 최치원이 쓴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에 의하면, “법랑이 중국으로 건너가 도신의 법을 이어왔다”는 기록이 전한다. 법랑은 4조 도신(四祖道信, 580˜651)의 제자이다. 중국에서 선종이 발전하면서 도신 이후부터 수행자들이 집단생활을 했다. 

또 북종선(대통 신수계 선사상)을 전래한 사람이 있는데, 법랑의 제자인 신행(神行, 704˜779)이다.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에 “쌍봉의 제자 법랑, 손 신행, 증손 준범, 현손 혜은, 말손 대사(지증)”라는 내용이 전한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신행의 행적이 전한다. 

“신행의 도는 시기가 적합지 못해 전해지지 못했다. 선사의 가르침은 바다에 떠 있는 듯, 하늘에 들리는 듯 했다. 숙종 황제는 몸소 시를 써서 ‘제자가 바다를 건너는데 뗏목을 의지하지 않았고, 봉의 아들이 마음을 고요히 비웠으니, 달마저 잊어버렸구나’라고 하였고, 신행선사는 이에 ‘산조해룡(山鳥海龍)’이라는 구절로서 답했으니, 깊은 뜻이 있다.” 

선종 4조 ‘도신의 탑’으로 불리는 자운탑. 사조사 내에 있다.

현존하는 ‘단속사신행선사비’에서도 신행의 행적을 알 수 있다. 신행은 일찍이 경상도 호거산에 은거해 있던 법랑의 문하에서 수학해 법을 받았다. 법랑이 입적한 후 입당한 그는 북종 대통 신수(大通神秀, 606˜706)의 제자인 보적(普寂, 651˜739)의 제자가 되는 지공(志空)을 만났다. 비문에 의하면, 지공은 신행에게 “그대는 지금 본국으로 돌아가라. 가거든 미혹에 싸인 중생들의 마음을 깨우쳐서 선의 바다를 물결치게 하여라”라는 말을 듣고 귀국했다. 그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단속사에서 수행하다가 신라 제36대 혜공왕 15년(779), 76세로 입적했다.

단속사신행선사비에 의하면, 법랑이 신행에게 선법을 전한 것으로 되어 있을 뿐 법랑의 행적과 사상은 전혀 알 수가 없다. 단지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의 비문에서 법랑의 법통을 추측할 뿐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최초로 수입한 선은 법랑에 의해 4조 도신의 법, 신행에 의해 북종선이 전래되었지만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이후 신행 문하에서 준범(遵範)이 나오고, 다시 혜은(惠隱)에게로 전해졌으며, 이어 지증(智證)에게 법이 이어졌다. 이 산문이 우리나라 대표 선원인 봉암사 희양산문이다.

한국선사상과 조계종 법맥

우리나라 선사들의 법맥은 중국 선사로부터 이어온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부처님이 가섭에게 전한 삼처전심이나 보리달마가 인도 28조로서 중국에서도 초조가 되고, 6조인 혜능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법맥은 전승되어 왔다. 물론 이런 법맥 법통설은 중국 선에서 발전된 것인데, 중국불교의 8종 가운데 제일 늦게 성립된 선종이 종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함도 배제할 수 없다. 

법통 문제는 여러 이설이 있으며, 난제이다. 현재 조계종의 법통과 관련해 종헌에서 ‘조계종의 종조는 도의국사이고, 고려 보조국사의 중천을 거쳐 중흥조는 태고보우이다’라고 하고 있으며, 이어서 ‘조선의 서산과 부휴 선사의 양대 법맥으로 발전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편 조계종의 법통설에서도 보조 지눌을 비판하기도 하고, 고려 말기 나옹 법통설과 태고 법통설이 있지만, 필자는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필자가 주장하는 대로 법맥을 꿰맞추다보면,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계가 드러남으로서 문중에 폐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찌되었든 선사들의 사상을 언급하다보면 당연히 법맥 문제가 거론될 수밖에 없는데, 혹 어떤 이는 ‘법맥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항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근자에는 초기불교와 위빠사나, 서양의 불교학(자국적 문화가 개입된 명상), 티베트 불교 등이 다양하다보니, 법맥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법맥은 승가의 절대적 가치요, 승가의 자존심이다. 무조건 추앙하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왈가왈부 하는 이가 있다면 그 개인의 가치관으로 남겨둔다.

[불교신문3376호/2018년3월17일자] 

정운스님 동국대 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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