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 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오,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 하늘 별이드뇨.
-신석정 시 ‘슬픈 구도’에서

이 시는 식민지 시대에 대한 인식의 구도를 보여준다. 시인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세계는 꽃과 새와 노루가 자라고 활동하는 자유로운 생명세계의 공간이 아니다. 캄캄한 밤, 산, 별이 있을 뿐이다. 시인은 ‘별’을 바라보되, 미래의 희망을 담아 바라본다. 시인이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라고 노래했을 때처럼 ‘별’은 적막과 어둠을 견뎌내게 하는 평화의 징표요, 초월 의지 그것이다.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라고도 썼으니 ‘별’은 외롭고 암담한 때에 살면서 의지하는 어떤 정신의 영원한 신성성일 테다.

[불교신문3374호/2018년3월10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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