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자산일 수 있는 가족은 모르는 사이에 의무이고 족쇄가 되기도 한다. 템플을 찾은 어떤 분은 자신의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스스로를 묶어놓았음을 그녀는 알지 못하는 듯 했다.

나무가 살 수 없는 툰드라 지역의 사람들은 물이 흐르는 봄, 햇살 그리고 함께 숨 쉬고 있음을 가장 귀하고 충만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넘치는 자산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함이 다른 누군가에겐 은총이 되기도 한다. 그처럼 가까이 사는 누군가가 싫어서 벗어나고 싶고?늘 나를 힘들게만 하는 거 같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툰드라 지역의 사람들처럼 다르게 읽힐 가능성이 많다. 진실은 그러할진대 내 기준으로 좋고 싫음을 매겨서 괴로움을 불러들이는 건 스스로 가두는 작업이다. 그래서 늘 보던 방식으로 보지 않고 전혀 새로운 안목으로 보는 일은 몸속에 산소를 불러들여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과 같다. 

나는 화두를 들었다. 화두를 드는 것의 장점은 맥락 없이 앞뒤를 끊어내는 단호함이다. 단호하지만 차갑지는 않고 그냥 툭 끊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 좁게 보아졌을 때, 뒤로 크게 물러서지지 않을 때 맥락 없이 잘라내고 뒤로 훅 물러나기에 화두만한 건 없다. 

꼭 화두가 아니어도 좋겠다. 좁은 방안에 있다가 겹겹이 쳐진 커튼을 걷어내고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의 것들을 넓게 보려는 자신만의 여백을 가져보면 좋겠다. 열린 공간도 좋고 뚜벅뚜벅 걷는 것도 좋고 깊은 호흡도 좋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맥락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축적된 신념체계이다. 지식의 축적은 그 신념을 강화시키고 그 체계는 우리의 감옥이 되어 우리를 가두는 역할을 한다. 핵심은 맥락 없기이다. 지금 처한 상황에서, 늘 보던 방식에서 툭 떨어져 나와 맥락 없이 쉬어보는 것이다. 통찰은 넓고 깊게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겠는가. 자신이 의지했던 무거운 신념체계를 벗어내고 이 찬란한 봄에 가벼운 옷을 걸쳐보는 건 어떨까?

[불교신문3374호/2018년3월10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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