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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입맛’ 사로잡은 스님 ‘손맛’ 알려주마도심 한복판에서 배우는 사찰음식
수원 봉녕사에서 100여 명 대중 살림을 책임졌던 동원스님. 스님의 ‘계절이 깃든 사찰음식’ 수업은 매번 열정 넘치는 수강생들로 붐빈다.

재치 있는 입담에 웃음 빵빵
30대 직장인부터 퇴직자까지
수강생 절반 이상 타종교인도

신선한 식재료 가득한 주방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린다. 미끌거리는 마를 꼭 잡고 ‘도마야 쪼개져라’ 채를 써는 맛깔나는 칼질 사이로 도시 소음이 오간다. 회색 빛 시멘트 건물 사이 자리한 이곳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초입에 위치한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 100여 명 비구니 스님들이 기거하는 수원 봉녕사에서 대중들 삼시세끼를 책임졌던 살림꾼 동원스님 ‘계절이 깃든 사찰음식’ 수업이 한창이다.

“스님~ 지난번에 만들었던 고추장 반응이 너무 좋아요. 슈퍼에서 파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더라니까요” “맞아요. 수업료로 500만원을 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여기서 배워 장사해도 될 것 같더라구요” “저는 만들 땐 몰랐는데, 집에 가져가보니 이상하게 절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신기하죠?”

새 메뉴를 배우기 앞서 지난 수업 후일담이 뜨겁다. “아니 절 냄새는 대체 뭔 냄새래~?” 하면서도 “고추장, 된장 맛은 메주가 좌우한다”며 절집 비법을 또 한 번 슬쩍 알려주는 동원스님이다.

평일반 수업은 보통 세 가지, 이날은 마죽과 무말랭이무침, 흑임자연근전 등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영양 가득한 사찰음식이 나왔다. 스님이 먼저 시범을 보이면 수강생이 따라 만들고 품평회를 갖는데, 만드는 것 뿐 아니라 맛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수업이라해서 대부분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는 메뉴로 구색을 갖춘다.

계율 때문에 아무거나 먹을 수 없는 스님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반찬 중 하나가 ‘무말랭이무침’, 사찰에서는 열흘에 한번 스님들이 삭발을 할 때 머리카락으로 빠져나간 기운을 보충한다고 해서 찰밥과 미역국을 먹곤 하는데 무말랭이는 여기에 곁들여 먹기에 좋고, 도시락이나 김밥을 쌀 때 단무지 대신 넣기도 해 ‘절집에 없으면 안되는 음식’으로 꼽힌다.

무말랭이무침을 할 때 꼭 넣어줘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보리가루를 넣어 뭉글하게 끓여낸 보리죽이다. 무말랭이 특유의 냄새는 잡아주고 구수함을 더해주는 보리죽은 미리 끓여 뒀다 식힌 후 별다른 양념 없이 오롯이 간장과 조청, 고춧가루만을 넣고 고춧잎과 함께 버무린다.

“무말랭이무침엔 고춧잎이 꼭 들어가야 감칠맛이 난다” “보리가루 말고 찹쌀가루를 넣어 죽을 쑤어도 괜찮다” 팁을 일러주던 스님이 숨겨둔 비법을 또 하나 꺼낸다. “고급지게 젓가락으로 뒤적이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양념이 스며들게 하려면 품을 더 써야죠. 일회용 장갑 보다 우리에겐 더 편하고 돈 안 드는 가죽장갑이 있잖아요?” 고춧가루 물이 베어 빨갛게 물든 맨손, 그야말로 깐깐한 대중 입맛 사로잡은 스님의 요리 비결이다.

“참기름 넣으면 더 맛있을 것 같아요”하는 수강생 말에 동원스님이 스리슬쩍 대중살림의 고달픔도 털어놓는다. “참기름도 좋고 김가루도 좋아요. 그치만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뭐 많이 안 넣는 게 습관이 돼서... 어른 스님한테 많이 혼났거든. 공양물 들어 온 거 아낄 줄 모른다고. 우리 때는 ‘IMF 행자’라 했거든요. 당시만 해도 출가하는 사람이 워낙 많았어야지. 그러니까 어른 스님들이 우리는 막 대해. 손목이 부러져라 일을 해도 ‘네가 마음을 못 써 그렇다’ 혼나고 감기에 걸려도 ‘신심이 없어 그렇다’ 막 혼나.”

스님 투정에 수강생 사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재미있죠? 그런데 사실 음식이 아까워서가 아니고 보시물 아끼라 그러신 거에요. 신도들이 애써 보시한 공양물 소중한 줄 알라고...” 한 수강생이 “스님은 안 그러시겠죠” 하니, 스님이 “난 더해! 난 깨도 세서 줬어요!”하고 맞받는다. “여러분도 500알 이상 쓰지 마요!”하는 스님 말에 쉴 새 없이 웃음이 빵빵 터진다.

다진 연근에 흑임자 가루를 섞어 손으로 치대 노릇하게 지져내면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흑임자연근전이 탄생한다. 시커멓고 둥그런 부침 위에 '나 연근!' 하고 말해주는 가니쉬를 더하면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음식이 된다.
수강생이 만든 흑임자연근전.

흑임자연근전 역시 손맛을 타야 제 맛을 내긴 마찬가지. 잘게 다진 연근에 흑임자 가루와 밀가루를 넣어 반죽이 손바닥에 쩍쩍 붙는 느낌이 들 때까지 여지없이 맨손으로 치댄다. “밀가루는 이왕이면 적게 넣어야 연근 맛이 살겠죠? 그런데 이렇게 그냥 부치면 둥글고 시커멓잖아요. 연근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럴 땐 ‘나 연근!’ 하는 느낌으로 앞뒤를 살짝 슬라이스해서 가니쉬로 올려주면 돼요. 바빠 죽겠는데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잖아~ 보기에도 훨씬 예쁘고 말이지.”

사찰음식문화체험관이라 하면 으레 불자 수강생이 많은 거라 생각하지만 동원스님 수업 절반 이상은 타종교 수강생이다. 퇴직 후 음식 장사를 하고 싶어 수업을 신청했다는 유덕현 (66) 씨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스님이 너무 재미있게 가르쳐주는 데다 사찰음식은 먹으면 먹을수록 속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어 수업 들을 마음을 냈다”고 했다. “부담 없고 맛도 좋은 사찰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커 근무 시간을 쪼개 수업을 듣고 있다”던 간호사 정선정(36) 씨는 “아버님이 목사라 시댁 몰래 수업을 듣고 있다”고.

인터넷만 들어가도 사찰음식 레시피 수천건이 나오는 세상, 큰 금액은 아니지만 없는 돈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수업을 들으러 오는 이유는 뭘까? 스님은 “음식은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며 “레시피만으론 같은 맛을 내기 힘든 것도 있다”고 했다. 조금 더 자연에 가까운 재료 고르는 법, 낭비하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쓰는 법, 짜증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하는 법, 동원스님 강의실이 매번 수강생들로 왁자지껄 붐비는 이유다.

‘모든 생명에게 감사하고 온 세상의 화평을 기원하는 음식’이 바로 사찰음식이다. 사진은 지난 2월27일 열렸던 '계절이 깃든 사찰음식' 오전반 메뉴, 마죽, 무말랭이, 흑임자연근전.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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