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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 (2018).12.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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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사자후] <29> 우화스님“요깟 아픔에 화두 잃으면 죽을 땐 어떻게 하겠어”

 

병석에 누워있다 법문 청하자
“젊은 스님들께 알고 있는 대로 
전법하다 죽으면 영광”이라며 
흔연히 일어나 ‘살아있는 설법’

무생에 사랑이 어디 있으리?

“화두 하는 자에겐 삼라만상
일체세간사 화두 아님이 없고 
술 취한 자에게는 일체 닿는 
경계마다 술독만 만나는 게야” 

우화스님은 다보사에서 30년 넘게 ‘천진도인’으로 대중을 제접했다.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대중들을 미소와 하심(下心)으로 맞이했던 우화스님은 참선화두에 대한 치열한 구도심을 한시도 놓은 적 없었다.

동심(童心)은 불심(佛心)이 아닐 수 없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이라면 번거로이 종교를 택할 필요도 없을게다. 마음이 항시 고요 적적하여 몸짓 또한 소요자재 할 수 있다면 구차스레 신앙이라는 작업 또한 군누더기에 불과 할게다. 전라남도 나주읍 경현리의 금정산 다보선원에 계신 우화 대선사님은 그런 의미에서 동심불(童心佛)이 아닐 수 없다. 선방 스님들 간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에피소드의 산실(産室)이 또한 스님이기 때문이다. 

크신 법(法)의 위력은 우리네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무서운 힘이었다. 법력(法力)은 그대로 심성(心性)수양에서 얻어지는 커다란 지혜의 바퀴였고 인내의 희귀한 열매였다. 기자가 전라남도 나주 땅 다보사에 들어서자 아이구! 아이구! 하는 고통에 찬 우화 대선사의 신음소리가 들려왔었다. 

5~6년 만에 찾아오는 다보사였고 그러기에 건강하신 모습으로 반겨 맞아주실 큰스님께서 저리 큰소리로 고통스러워하시니 찾아간 방문객은 매우 충격적이었고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그러나 큰스님께서는 법문(法門) 해달라는 기자의 근심 덮인 어두운 얼굴을 보고 자리를 바르게 고쳐 앉으며 거친 숨을 애써 고르시더니 태연히 아무렇지도 않은듯 더구나 여유마저 보이시며 “내가 뭘 알아야 법문하제!” 하신다. 

너무나도 야위신 피로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곁에 있는 시자 스님의 귀띔인즉 3개월 동안 물이나 마실 정도로 식사를 안 하고 계신단다. 왈칵 울어버리고 싶은 사문(沙門)이 된 진한 서러움에 큰스님의 손을 두 손에 쥐고 방문객의 얼굴에 비벼 대며 법문은 완쾌되어 하시고 누워계시길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무슨 소리야? 이까짓 몸은 본시 사대(四大, 地·水·火·風)로 흩어질게 아냐? 늙어 병든 주제에 젊은 스님들께 알고 있는 대로 부처님의 법이나 전하다 죽으면 영광이지.” 

스님께서는 방문객이 누군지 모르시는 표정이다. 

- 저를 아시겠어요? 제가 향봉이야요. 5~6년 전 스님 모시고 지내던 얼굴 밉고 성질 고약한 향봉이야요.

“가만있자…. 옳지, 옳아! 해인사 방구덕 판 ‘꼬갱이’스님이구나. 그래, 그동안 어데 있었소?” 

독자들은 이 글을 읽으며 얼마나 얼굴이 밉고 성질이 고약스러우면 큰스님께서 기억 못하시다가 기억하시겠느냐고 혀를 차며 향봉이 앞길이 뻔하다고 염려해 주실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일소(一笑)하고…. 

- 병중(病中)에서도 화두(話頭)가 잘 들립니까? 지금 말씀하시며 화두를 잃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요까짓 요정도 아픔에 화두를 잃으면 죽을 땐 어떻게 하겠어.”

- 스님께서 아까 아이구! 아이구! 신음하시며 아야! 아야! 하셨는데 마음이 아픕니까? 육체가 아픕니까? 

“육체가 병드니 마음이 따라 가려고 해.” 

- 마음이 어느 곳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순간,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스님께서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신다. 방바닥 치신 뜻을 향봉이가 알까? 이 글 읽는 독자분들이 알까? 알아도 30방이요 모른다 해도 30방일게 분명하겠다. 

- ‘시심마(是甚)’ 라고 화두가 있지요? 어떤 것이 시심마 입니까? 

“오늘이 칠월칠일이니라.” 

동문서답(東問西答)이 아닌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아닐 수 없다. 찌꺼기 비늘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는 칼날 말씀이시다. 

- 인생에 있어 사랑만큼 아름다운 게 없는 줄 압니다. 여자에 있어서는 ‘잊히진 여자’가 죽은 여자보다도 더욱 가련하고 불쌍하다고 마리 로랑생은 읊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지난날 사랑을 나눈 이야기 있음 조금만 들려주셔요. 

“관색관공(觀色觀空) 즉색공(卽色空)이야. 본래 무생(無生)인데 사랑이 또한 어데 있으리오.”

- 스님께서 지금껏 정진해오며 뭘 얻으셨는지 얻은 것 좀 보여주셔요. 

“결부득(結不得) 해부득(解不得)이야. 이 자리에 이르러 스님은 뭐라 대답하시겠소?”

-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이심전심으로 전한 삼처전심(三處傳心)이 있지요? 염화미소(拈花微笑)에 대하여 한 말씀해주시지요. 

“항상 자고새 우는 곳에 일백꽃향기더라.” 

- 다자탑전(多子塔前) 반분좌(半分座)에 대해서요?

“동하(洞下)에 상봉(相逢)이나 불상식(不常識)일뿐!” 

- 곽시쌍부(槨示雙趺)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셔요. 

“천년고목(千年枯木)에 조비토주(鳥飛兎走)야” 

- 해인사 지월(指月)스님의 49일재에 스님께서 법문하신 게송이 있지요? 생각나시면 알려주십시오. 

“가야석다(伽倻石多) 노전심(老傳心) 고암지상(古岩之上)에 일범찰(一梵刹)이라 했지. 어떻소? 법문이 좋소?” 

‘어떻소 법문이 좋소?’ 하고 묻는 스님의 말씀에 온 방안이 웃음의 꽃보래로 가득하였다. 천진(天眞) 그대로의 스님 특유의 살아있는 법음(法音)이 아닐 수 없다. 

- 이별만큼 서러운 것도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별은 어떤 의미에서는 또 하나의 커다란 죽음이 아닐 수 없어요. 스님께서 이 세상을 이별하시며 저희에게 무슨 말씀을 남기고 가시겠어요? 

“스님이 아마도 이별하다가 오도(悟道)한 모양이구만 하하하…. 설부청산(雪浮靑山)에 일봉(一峰)이 독로(獨露)야”

- 스님께서는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셨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무슨 소릴! 대오는커녕 소오(小悟)도 못했는데! 보면 모르겠소? 이래 몸댕이 하나도 못 이겨 아이구! 아이구! 소릴 지르더라고 아까 스님이 흉봐놓고선. 하하하”

- 스님! 언제 제가 흉봤습니까? 그토록 아파하시다가도 이렇게 저의 질문에 답해주시니 크게 감동하고 감사드릴 뿐입니다. 큰스님의 화두가 무엇인지 저희에게도 귀띔 해 주셔요. 

“본래무생인데 화두 또한 어느 당처에 있으리오.” 

- 저로선 어려운 말씀인데요. 그러시다면 무생 밖의 또 다른 화두를 알려주십시오. 

“허허 참! 화두 하는 자에겐 삼라만상의 일체세간사가 화두 아님이 없고 술 취한 자에겐 일체 닿는 경계마다 술독만 만나는 게야” 

다시 거듭 병중에서도 불청객의 질문에 혼연히 응해 주신 스님의 크신 법력에 감사드리는 마음뿐임을 밝혀 둔다. 큰스님의 건강이 하루속히 완쾌되길 간절히 빈다. 노선사(老禪師)의 건강 회복을 빌고 또 비는 바다.  

불교신문 전신인 대한불교 662호(1976년8월29일자)호 1면에 실린 다보선원 조실 우화스님의 인터뷰. 스님은 인터뷰가 신문에 실린지 두 달이 채 안 돼 열반에 들었다.

■ 우화스님은…

1903년 4월7일 전남 담양군 무정면 성도리에서 부친 이규준(李奎俊) 선생과 모친 하남(下南) 정(程)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5세 되던 해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무상(無常)을 절감한 것이 출가 동기가 됐다. 덕유산으로 입산해 영각사에서 영명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출가사문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해인사 불학강원에서 교학 연찬 후 참선수행의 길을 걸었다. 금강산 마하연을 비롯해 오대산, 묘향산 등 명산대찰에서 만공, 혜월, 한암, 용성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만공스님 회상에서는 성철스님과 같이 공부했으며, 만공스님이 많은 수좌 가운데 “성철수좌가 1등이고, 우화수좌가 2등”이라고 했다고 한다. 전국 방방곡곡을 행각참상(行脚參商)하며 공부의 깊이를 더 하는 과정에서 오도(悟道)의 경지에 이르렀다.

1935년 천성산 내원사 동국제일선원에서 정진할 때 운봉(雲峰)스님의 법제자가 되면서 우화(雨華)라는 법호를 받았다. 우하(雨下)라고도 한다. 해방 후에는 나주 다보사에 주석하면서 납자 제접, 중생제도로 일생을 보냈다. 단순담백하고 천진무구한 모습과 음성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스님은 1976년 10월1일 “금성산(錦城山)에도 해가 저무는 구나”라면서 “각자 노력하라”고 당부한 후 원적에 들었다. 법랍 60세, 세수 74세였다. 

[불교신문3372호/2018년3월3일자] 

정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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