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라 고운 옷 차려입고 사찰을 참배 오는 분들로 도량이 떠들썩하다. 오늘도 한 가족이 세배를 오셨다. 같이 법당을 참배하고 향 하나를 부처님 전에 공양 올렸다. 향연이 그윽하게 법당을 맑힌다. ‘제가 이제 한 줄기의 향을 사르옵나니, 이 향기가 시방법계에 두루 퍼져, 일체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발원하옵니다.’ 엄마 따라 절을 하는 꼬마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서 마치 아기연꽃이 피어나는 듯 했다. 오늘은 부처님의 입이 귀에까지 걸리셨다. 이 천진불의 삼배는 훗날 자기 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남겨질까?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인연들에게 어떤 의미로든 자리를 잡게 하는 힘이 있다. 세상 모든 일은 인드라망처럼 얽혀있어, 어느 하나도 인연의 고리에 걸려있지 않은 것이 없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는 것이다. 오늘 아빠 팔에 안겨 부처님께 올린 저 천진불의 향공양이, 훗날 훌륭한 수행자의 인연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삶은 누구 탓도 아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는 정성스런 생각과 행동이 매 순간 ‘인(因)’을 지으면서 ‘연(緣)’을 맺는다면, 그 ‘인연’들의 결과물인 ‘과(果)’는 맑고 향기로울 수밖에 없다. 

기도란 내가 한줄기 향이 되어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기도란 삶에다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도란 자신의 안과 밖을 법당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네 삶 자체가 바로 기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보는 기도는 얼마나 하고 있는가? 내가 한 줄기 향이 되어, 우주가 되어보는 기도는 또 몇 번이나 되었던가? 삶을 살되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한 줄기 향연을 보면서 내가 우주가 되어 보는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기도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이제 곧 남풍이 불면, 겨우내 향기를 품고 있던 매화 꽃망울도 터질 것이다. 가끔, 풍경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코끝이 찡할 때도 있는, 나는 지금 기도할 수 있는 수행자라서 너무 행복하다.

[불교신문3372호/2018년3월3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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