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 띠와 팔자’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이 지난 7일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강의하는 모습.

오래된 동물민속의 역사

까치가 오면 반가운 손님이 올까. 돼지꿈을 꾸면 정말 좋은 일이 생길까. 우리는 까치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고 믿는다. 까치는 텃새로 지역 지형지물을 완벽히 이용할 줄 안다. 동구 밖 가장 높고 튼튼한 나무에 집을 짓는데, 자기 영역에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면 먼저 울기 때문에 나온 얘기다.

우리는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새로 가게를 열었을 때 고사상을 차리는데 그 때마다 돼지머리를 올린다. 꿈에 돼지가 나타나면 복권을 사러 간다. 돼지꿈을 좋아하는 민족은 우리나라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문화권에서 돼지는 중요한 동물이 될 수 없다. 돼지는 언제부터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까. 낙랑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옥으로 만든 돼지를 양 손에 쥐어줬다고 한다. <삼국사기>를 보면 돼지는 고구려 수도 국내성을 점지한 영험한 동물이기도 하다. 기록에 따르면 유리왕은 봄가을로 산천에 제사를 올렸는데, 돼지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었다. 그런데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을 가, 제물을 지키던 관리가 돼지 찾기에 나섰다. 돼지를 찾은 땅이 넓고 농사짓기 좋다고 판단한 관리가 이를 왕에게 알리면서 국내성 천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돼지를 뜻하는 한자(豚)가 돈과 소리가 같으면서 돼지는 행운과 복을 상징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돼지꿈을 꾸면 로또 사라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이다. 창원 성주사에 가면 절을 지키고 있는 한 쌍의 돼지석상을 볼 수 있다. 사찰 초입에 돼지 상을 둔 것에 대해서는 절에 사건사고가 많음을 염려한 한 도인이 절터에 화기(火氣)가 강해 이를 누르기 위해 돼지 상을 제작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음행오행으로 살펴보면 십이지 가운데 돼지는 물을 상징한다. 불을 끄기 위해 물을 가져다 놓은 의미다.

 

띠에 대한 한국인의 담론

한국 사람은 띠에 대한 담론을 많이 푼다. 새해 운세를 보거나 아이가 태어났을 때, 궁합을 볼 때다. 정초가 되면 동물이 가진 속성과 덕성을 그 해 운으로 풀어내는 일이 흔하다. 2006년은 입춘이 두 번 들었는데, 쌍춘년에 결혼하면 잘 산다고 해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맞았다. 정해년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아이는 만복을 타고난다는 속신 때문에 유난히 출산율이 높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띠동물에 따라 새해 운수나 팔자를 점치는 일에 익숙하다. 띠동물의 생태와 특징을 자신의 운명이나 팔자로 동일시했다. 쥐가 밤에 태어나면 식복이 많다. 잔나비띠는 손재주가 많다 같은 식이다. 범띠 해 정월달 밤에 태어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할머니들은 손자의 바람기를 걱정했다. 섣달그믐과 정월은 호랑이 번식기로 가장 활동적인 시간이라서 나온 얘기다. 제 어머니는 항상 저를 보고 “소띠가 4월 아침에 태어났으니 그 일복을 어찌하노” 하고 걱정했다. 4월 아침 소가 열심히 논밭을 갈아야 시간이라 할 일이 많다는 의미다.

십이지는 천문 역법에서는 방위와 시간의 개념으로, 풍수, 점복, 택일, 사주, 궁합 등에 길흉을 예지하는 비결로, 능묘의 호석, 사찰의 불화, 민화 등에서는 제액초복의 수호신 또는 길상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나타난다. 또 생활용구나 각종 장식물에서 문양으로 쓰인다.

열두 동물 순서와 상징

“옛날 하늘의 대왕이 동물들에게 지위를 주고자 했다. 그 선발기준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정월 초하루 가장 먼저 천상의 문에 도달한 짐승 순으로 선발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짐승들은 기뻐하며 빨리 도착하기 위해 저마다 훈련을 했다. 그 중 가장 열심히 노력한 동물은 소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쥐는 작고 약한 자신이 먼저 도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꾀를 냈다. 열심히 연습한 소에게 붙어 가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정월 초하루가 돼 동물들이 앞 다퉈 갔다. 부지런히 달려온 소가 선두에 섰는데 천상의 문에 도착하는 순간 소에게 붙어 있던 쥐가 뛰어내리면서 가장 문을 통과했다. 결국 쥐가 십이지 동물 중 첫 번째가 됐다.”

십이지 동물들 순서에 대한 유명한 설화다. 열두 동물의 순서를 두고, 동물들 발가락 수를 기준으로 했다는 주장과 동물들이 활동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 열반 당시 조문을 온 동물들의 순서라고도 한다.

십이지가 처음부터 열두 동물과 연관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시간과 방위의 부호였다. 천체와 날짜를 표현하는 기본 진법이 12진법이다. 1년은 12달이고, 태양이 지나가는 길에 나타나는 12개 별자리가 있다. 중국에서 십간십이지가 처음 쓰일 때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라는 문자에 그쳤다. 이는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수확하는 과정을 뜻한다. 십간 역시 자연의 변화양상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다 한나라에 이르러 십이지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동물과 결합하게 된다. 자=쥐, 축=소, 인=호랑이, 묘=토끼, 진=용 등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 흔적은 한나라 왕충이 쓴 <논형>에서 찾을 수 있다.

쥐는 재앙이나 농사의 풍흉을 예견하는 영물로 다산과 풍요, 현명함, 영리함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소는 우직하고 충직하고 성실한 동물로 부, 재산, 힘을 상징한다. 반면 둔하고 느리고 고집 센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호랑이는 벽사와 수호의 동물로 효자를 돕고, 은혜를 갚는 보은의 동물이다. 토끼는 달 속에 산다는 믿음과 함께 장수와 풍요, 번성을 상징하고 자애롭고 온순하고 영리한 동물로 여겨졌다. 용은 비를 내리게 하는 수신이며 나라를 보호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호국신이자 호법신이다. 뱀은 죽은 이의 영혼을 지키는 수문장이자 다산성을 상징해 집안의 재물을 지켜준다.

말은 생동감 넘치는 강한 동물로 죽은 이의 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신성한 동물이다. 양은 순하고 어질고 착하며 참을성 많은 동물로 희생과 평화를 상징한다. 원숭이는 꾀 많고 영리한 장난꾸러기이자 재주꾼이다. 장수와 부귀다산을 상징해왔다. 닭은 상서로움을 알리고 악귀를 쫓는 동물이고, 개는 인간과 가장 친근한 동물로 집안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돼지는 재산과 복, 재물을 상징한다.

현대도 유효한 띠동물 문화

동물에 대한 믿음과 상징은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상징은 하나로 정의되지 않고, 상반된 이미지를 갖는다. 시대나 나라에 따라 변하고 새로운 역사성을 담는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 23%가 돼지꿈을 꿨다고 하는 것은 돼지가 행운, 복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또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잃은 고통을 의미하는 단장(斷腸)의 슬픔은 6.25전쟁과 더해져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만들었다.

올해는 황금개의 해다. 십간을 오행으로 보면 무(戊)는 흙(土)와 황(黃)색을 상징하는데, 황색 중 으뜸인 황금을 붙여 황금개띠가 되는 것이다. 개는 오랜 기간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가장 친근한 동물이다. 불 속에서 주인을 구하고 희생한 오수의 개처럼 개는 영특한 동물이자 충복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개는 잡귀와 병, 요귀 등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해왔다.

불교에서는 삼목대왕이 등장한다. ‘이거인’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길에서 눈이 세 개가 달린 강아지를 주워와 집에서 길렀다. 강아지는 3년 만에 죽었고, 이거인은 개를 묻고 장사를 치렀다. 훗날 이거인이 죽어 저승에 가니 삼목대왕이 저승의 문을 지키고 있었다. 이거인이 키웠던 개가 삼목대왕이 된 것이다. 이승의 은혜를 갚고자 했던 삼목대왕은 이거인에게 “염라대왕을 만나거든 생전에 불법을 판에 새겨 널리 전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고 말하라고 일러줬다. 염라대왕을 만난 이거인은 삼목대왕이 시키는 대로 말하자, 염라대왕이 그의 이름을 명부에서 지웠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오동폐월도라는 그림이 있다. 오동나무 너머로 보름달이 떠 있고, 나무 밑에는 개가 한 마리 있다. 오동나무는 봉황이 앉는 성스러운 나무이고, 개는 삿된 것으로부터 지켜주는 동물이다. 또 보름달은 원만하고 완전한 풍요를 얘기한다. 오동나무가 기원하는 복을 개가 지킨다는 의미다. 황금개들이 집안의 행복을 수호하는 무술년 되길 바란다.

[불교신문 3371호/ 2018년2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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