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커피를 선물 받았다. 이제 스님들 사이에서도 커피 마니아가 생길정도니 녹차와 함께 원두커피도 도량의 아주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 버렸다. 커피를 갈고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걸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커피향이 방안을 채워 꽃향기 못지않게 마음을 그득하게 채워준다. 아무리 좋은 원두라도 필터로 다듬어지지 않으면 좋은 커피가 그 맛을 제대로 품을 수 없다. 

누군가 말했다. 도반은 도(道)의 반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무슨 뜻일까? 도반이라는 말의 뜻은 길을 같이 걸어가는 친구, 혹은 도를 나눈 친구이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큰 배낭을 메고 먼 길을 걸을 때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하면 가방의 무거움은 그리 부담되지 않는다.

사실 세상살이는 모두 제 멋대로 살아간다. 동상이지만 이몽이 현실이다. 자신이 꿈꾸는 것이 제 마음대로라서 친구를 통해서 비추어 지고 검열되고 피드백 되는 과정이 없다면 커피가 필터과정을 지나지 않는 것과 같겠다. 요즘 혼밥 혼술 혼영으로 대표되는 신생부족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과한 무관심은 공기 부족한 방에 그와 함께 갇혀있는 느낌이다. 그런 사람들은 감각의 모든 창을 닫고 그냥 지나가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신체에 멍이 들어서 감각이 둔해진 것처럼 마음에 감당 못할 상처로 인해 멍이 들어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힘들 때 산사에 어렵게라도 찾아와서 고통스러워하는 절규가 오히려 인간답게 느껴져서 가슴이 뻐근해지는 것이다. 

아픈 것은 나쁜 것일까? 좀 아프자! 아파서 열리는 신세계로 걸어 들어가 보자. 그게 웅크리지 않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기회라면 미지의 세계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보자. 필터링을 통해 좋은 향기를 얻는 커피와 같이 우리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서 서로 기대어 섞이며 좋은 인간적 향내에 취해 보자.

[불교신문3370호/2018년2월14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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