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성폭행 사건 막후
권력, 갑질 문화, 집단주의 
왜곡된 가족주의가 본질
소유물 부속물로 보는 의식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지금 떠들었다가는 그들은 너를 더더욱 무능하고 문제 있고 이상한 검사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입 다물고 그냥 근무해라’는 것이었다.”(서지현 검사가 자신이 당한 성추행을 폭로하며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 중에서)

“내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의 요지가 ‘침묵하라’였다. 이 글을 읽고 또 한 명이 용기를 내준다면 내 폭로도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이다.”(영화계 성폭력 피해자가 ‘미투 캠페인에 동참하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폭로한 내용 중에서)

말하고 싶을 때 말하지 못하는 고통은 가늠하기 힘들다.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고 진실을 밝히고 싶을 때 침묵을 권유하는 집단적 분위기는 거대한 벽이다. 말로는 고통과 슬픔을 같이 나눈다고 위로하지만 어느새 그들은 공범자나 다름없다. ‘세상의 감옥’에 그들을 가두는 조력자다. 강요받은 긴 세월의 침묵 속에서 피해자들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한다. “내가 왜 그 자리에 갔을까? 왜 그때 과감하게 뿌리치지 못했을까?” 자책하고, 자학한다. 그런 가운데 누군가는 침묵을 택하고, 누군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번처럼 용기를 내어 세상에 말을 한다. “나도 피해자다!”

지난해 미국에서 번졌던 ‘미투’(Me Too·나도 피해자) 운동이 우리나라에서도 번지고 있다. ‘미투’ 운동은 지난해 미국의 배우 애슐리 쥬드가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성추행 당한 일을 폭로한 게 계기가 됐다.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하면서 불이 붙었다. 국내에서는 지난 1월29일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당한 사례를 폭로하면서 검찰 개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임은정 검사도 “검찰에 많은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라며 ‘미투’ 운동에 힘을 보탰다.

흐름은 각계로 확산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영화계로 불똥이 튀었다. 동성의 영화계 동료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유명 여성감독 A씨 사례가 불거졌다. A씨는 2015년 영화아카데미 동기인 여성 B씨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준유사강간)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이 확정됐다. 피해자 B씨가 SNS에 관련 내용을 폭로하면서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여성영화인모임은 지난해 연말 A씨에게 준 감독상을 취소했다. 문단 내 성추행을 언급한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도 ‘미투’ 시로 불리며 주목받고 있다. 신입생 입학을 앞둔 대학가도 긴장하고 있다. 새내기 배움터(새터)와 오리엔테이션(OT)을 앞두고 행여나 성희롱 논란이 일어날까봐 각종 프로그램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미투’ 운동까지 불러온 성추행, 성폭행 사건들 막후에는 권력 관계가 있다. 단순한 남녀 간 성 문제가 아니다. 상급자-하급자, 선배-후배 관계 속에서 인사권을 갖고 있거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갑질’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갑질 문화’가 집단에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한편에서는 한국 사회의 ‘수직적 집단주의 특성’과 ‘가족주의’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내가 상급자니까~’ ‘내가 가장이니까~’ 하는 의식이 내 맘대로 해도 된다, 내 말을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표출되는 경우이다. 개개인의 독립된 역할로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소유물’ ‘부속물’로 보는 의식이 은연 중 존재한다.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침묵은 금이 아니다. 입을 열어 말하라!

[불교신문3369호/2018년2월14일자] 

소종섭 논설위원·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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