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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25> 포항 오어사 종몸체에 처음으로 범자문 새긴 고려후기 종
  •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8.02.1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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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년 제작 중요한 편년자료
위패 모양에 육자진언 양각
13세기 중후반 문양화로 변화
동화사 순성·청련스님 등 발원
주조한 대장 순광, 승장 추정

경북 포항시 오어사(吾魚寺)가 소장한 종은 고려 1216년 조성됐으며, 보물 1280호로 지정돼 있다.

포항의 유서 깊은 사찰 오어사(吾魚寺)에 소장된 이 종은 1995년 11월 경 오어사 앞 계곡의 준설 공사 도중 우연히 출토된, 양식적으로 매우 뛰어난 고려후기 범종이다. 특히 몸체에 정우(貞祐) 4년인 1216년에 제작된 것을 기록하고 있어 13세기 범종의 귀중한 편년자료가 된다. 높이는 93.5cm, 구경 61cm로서 고려 후기 범종 가운데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종신은 위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불룩해지다가 배부분(鐘復)에서 종구(鐘口)까지 약간 직선화된 고려 후기종의 요소를 잘 보여준다. 

불룩하게 솟아오른 천판에는 용뉴(龍)와 음통이 웅건한 조각으로 표현되었는데, 가늘고 긴 목이 S자형으로 굴곡을 이룬 용두는 그 입을 천판 위에서 떨어뜨려 앞을 바라보고 있다. 용의 윗입술은 앞으로 높게 들려있으며 입 안에 물은 여의주 아래로 혀가 길게 돌출된 모습이다. 오른 발은 위로 들어 보주가 부착되었고 반대쪽 왼발은 뒤로 힘차게 뻗은 모습으로서 특히 오른 발 위의 올려 진 보주에는 칠보문(七寶文)을 투각 장식하였다. 비늘과 갈기의 섬세한 조각과 용의 이마 위로 솟아난 두 갈래의 뿔이 앞뒤로 갈라져 있는 독특한 모습은 이 시기 다른 범종 용뉴에 비해 정교함이 두드러진다. 

굵은 음통에는 별도의 구획 없이 연당초문을 부조하였고 음통 상단에는 6개의 연잎을 바깥으로 벌려 그 위에 1개씩의 작은 보주를 둥글게 돌아가며 장식되었음이 독특하다. 또한 이 음통 위로 마치 새 깃털 같은 용뉴의 갈기가 돌출되어 있는데 이후 13세기 범종에는 이 부분이 더욱 장식적으로 강조되어 매우 크고 화려하게 나타난다. 

천판에는 용뉴와 음통이 웅건한 조각으로 표현돼 있다.

천판의 바깥 테두리에는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중판복엽(重瓣複葉)의 입상연판문대(立狀蓮瓣文帶)를 높게 돌출 장식하였다. 앞서 소개한 1201년 제작의 승안(承安)6년명 범종에서 보였던 입상연판문대 장식이 불과 10여년 뒤에 이처럼 별도의 독립된 문양으로 확연히 자리 잡게 된 점이 주목된다. 그 아래로 상대와 종구 쪽의 하대에는 위 아래로 연주문 띠를 두른 뒤 그 내부로는 활짝 핀 연꽃과 연꽃을 줄기로 연결시킨 연당초문을 유려하게 부조하였다. 상대에 비해 폭이 넓은 하대에는 특히 측면관으로 묘사된 연화문이 도드라진 고부조로 처리되어 더욱 생동감을 준다. 상대 아래의 방형 연곽대(蓮廓帶)에는 유연한 굴곡을 이룬 당초문을 얕게 부조하였고 연곽 안으로는 연좌(蓮座) 위에 높게 돌기된 연꽃봉우리(蓮) 9개씩 배치하였으나 일부는 부러졌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 해당되는 몸체의 하단부에는 구름 위에 무릎을 꿇고 좌측으로 몸을 돌린 채 합장을 한 보살좌상을 앞, 뒤 두 곳에 부조하였다. 이 보살좌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있으며 뚜렷한 이목구비와 미소를 띤 모습이다. 양 어깨에 걸쳐진 천의 사이의 가슴에는 목걸이가 장식되고 배 앞에서 흘러내린 천의 자락 아래로 매듭이 보인다. 합장한 보살상의 양 손 옆으로 감겨진 천의 자락은 양 옆으로 굴곡을 이루며 짧게 솟은 반면에 몸 뒤에서 나온 굵은 천의가 두광 뒤로 감겨지다가 몇 번의 굴곡을 이루며 높게 솟구쳐 있어 다른 범종의 부조상 중에서 그 섬세함이 단연 돋보인다. 그리고 보살상과 보살상 사이에는 원형의 당좌를 2개소에 배치하였는데, 1+6개로 구성된 연밥을 장식한 자방 주위에 여의두형(如意頭形)의 엽문을 두르고 그 바깥을 세 겹으로 구성한 13엽의 방형 연판으로 장식한 모습이다. 그리고 연판의 외곽은 13세기 범종의 당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원권(圓圈) 없이 연판으로만 마무리하였다. 

특히 이 종에서 주목되는 것은 한 쪽 당좌 위로 위패 모양의 긴 장방형 곽을 만들어 그 안에 ‘옴마니반메훔’으로 보이는 ‘육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을 양각시킨 점이다. 지금까지 이처럼 몸체에 범자가 새겨진 종으로는 당좌에 범자문을 새긴 계미명종(癸未銘鐘, 1233)이나 둥근 연곽에 범자문을 두른 국립부여박물관 소장의 무술명종(戊戌銘鐘, 1298)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그 보다 앞서 1216년 오어사 종에 처음으로 범자문이 등장되었고 그것도 구체적인 ‘육자광명진언’이 사용된 점이 새롭게 밝혀지게 되었다. 오어사 종의 명문구처럼 독립된 별도의 위패형(位牌形) 범자문은 점차 계미명종이나 무술명종처럼 문양화 되는 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형의 당좌.

한편 명문은 한쪽 연곽 아래의 당좌와 비천상 사이를 택해 7행 도합 82자가 음각되어 있다. 발견 당시 다른 부분엔 특별한 손상이 없었지만 아쉽게 명문의 일부분이 포클레인에 의해 약간의 손상을 입는 바람에 일부 판독되기 어려운 부분이 보인다. 그러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확인되는데, ‘동화사도감중대사순성여동사(桐華寺都監重大師淳誠與同寺), 중대사청련도인승영(?)▨여동발 (重大師請蓮道人僧英(?)▨與同發), 성원공▨사저겸집중연주성(誠願共▨私貯兼集衆緣鑄成), 금종일구삼백근현배우오어(金鍾壹口三百斤縣排于吾魚), 사이차편선보원법계생망공(寺以此片善普願法界生亡共), 증보리자정우사년병자오월십구일(增菩提者貞祐四年丙子五月十九日), 대장 순광 조(大匠 順光 造)’ 이다. 이를 간략히 풀이해 보면 ‘동화사의 도감 중대사 순성과 같은 절 중대사 청련도인, 스님 영▨이 함께 발원하여 대중들과 사저를 모아 주성한 금종 한 구로서 삼백근의 중량을 들여 오어사에 걸어 두어 작은 공덕과 법계의 생망(生亡)이 함께 보리지원하기를 두루 기원하고자 정우 4년 병자년 (1216년) 5월19일에 대장 순광이 만들다’는 내용이다. 

명문 가운데 첫 행의 ‘동화사’는 오어사종이 위치한 경북 영일 지역으로 보아 팔공산의 동화사로 보이며 중대사(重大師)는 고려시대 선종의 승계인 ‘대선(大選) →대덕(大德) → 대사(大師) → 중대사(重大師) → 삼중대사(三重大師) → 선사(禪師) → 대선사(大禪師)’ 가운데 4번째 승계에 해당되는 지위이다. 둘 다 중대사의 승계를 지니고 있지만 도감의 역할을 한 순성(淳誠)이 보다 위에 있었던 듯 하며 청련도인은 아래쪽에 쓰인 것으로 보아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300근이란 중량을 들여 이러한 대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오어사의 사세가 꽤나 융성했음을 말해준다. 

위패 모양의 긴 장방형 곽을 만들어 그 안에 ‘옴마니반메훔’으로 보이는 범자를 양각했다.

또한 말미에 보이는 제작자인 대장 순광(順光)은 당시 뛰어난 장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내소사종(來蘇寺鐘, 1222)을 만들었던 한중서(韓仲徐)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또 다른 주종 장인이라 짐작된다. 고려시대의 대장(大匠)은 <고려사(高麗史)>에 보이는 것처럼 무산계(武散階)에 속해 있으면서 국가로부터 전70결(田70結)의 녹봉을 받았던 관장(官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장 뒤에 무산계의 별장동정(別將同正)의 직급을 기록했던 관장 한중서에 비해 순광은 대장으로만 기록되어 있는 점은 그가 승려 장인일 가능성이 많다. 즉 사원에 소속되어 승려의 신분으로 각종 기술직에 종사했던 승장(僧匠)의 경우 별도의 직분 없이 대장이란 명칭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거나 이 오어사종 한 점만 놓고 보아도 순광은 한중서에 비해 절대 역량이 뒤지지 않는 뛰어난 장인이라는 점에서 이 종의 출토를 계기로 고려 13세기에 활동한 또 다른 장인의 행적이 밝혀지게 된 셈이다.

 여음(餘音)

‘옴마니반메훔’이라는 6자로 이루어진 ‘육자광명진언’은 일체의 죄장(罪障)을 소멸한다는 광명진언 가운데 6자를 발췌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에 육자대명주(六字大明呪), 육자대명진언(六字大明眞言), 육자다라니(六字陀羅尼) 등으로 부른다. 조선시대 범종에서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과 함께 가장 널리 사용된 진언 타라니의 하나로서 1469년의 봉선사종(奉先寺鐘)에 처음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고려시대 오어사종에 장식된 육자광명진언이 새롭게 발견됨으로써 고려 13세기 전반부터 이미 사용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불교신문3369호/2018년2월14일자]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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