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찾아 잡은 뒤 집 돌아오는 심우도
모든 성과 함께 나누되 구분하지 않고
행복한 노년으로 마무리하는 일생 묘사
새해는 복덕 담은 자루 나누며 살기를

새해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곧 민족 고유 명절 설(舊正)이다. 덕(德)과 복(福)을 베푸는 새해다. 새해가 되면 많은 계획을 하고 기대를 한다. 영화가 본업인 필자는 올해 더 근사하고 멋진 영화 한 두 편 만들 수 있기를 염원한다. 

산 중 사찰이나 암자를 찾는 습관은 젊은 날부터 이어진 오랜 습관이다. 새해도 마음을 다지기 위해 산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오솔길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며 가볍게 산책하듯 오르다 보면 어느 새 일주문이 다가서고, 경내에 들어서면 생각의 줄기들이 가지런해진다. 고즈넉한 풍경은 폭포처럼 쏟아지던 생각과 마음을 다독여준다. 

많은 시간 산사를 찾으면서도 심우도(또는 십우도) 불화에 마음을 던진 때는 불과 몇 년 전이다. 사람이 평생 무언가(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간결하게 보여주는 열 개의 그림에 저절로 발걸음이 멈추고 눈길이 닿는다. 그리고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누구나 자신의 소를 찾아 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 까?’ 십우도는 인생살이를 보여주는 삶의 궤적이며 경책으로도 보인다. 전혀 보이지 않던 소가 어느 날 문득 발자국(흔적)을 드러내고. 다가서면 숨어있던 꼬리가 살짝 보이는 십우도의 첫 페이지는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에만 관심 보이고 전부인 양 활개치던 젊은 날 치기(稚氣)와 방황을 보는 듯 하다. 소를 찾아 나서는 여정은 이처럼 우리 삶과 아주 흡사하다. 인생을 100세로 간주하면 10대에는 소를 찾아 열정과 성심을 다하고, 20대는 소의 흔적을 다소간 살필 수 있는 나이이며, 30대는 그 소의 꼬리(일부)를 잡을 수 있는 시기다. 이윽고 40대에 소를 잡고 50대에 키워 60대에 이르러서야 잡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우귀가(騎牛歸嫁)의 여정이다. 십우도 스토리가 바로 한 편의 영화다. 

진짜 마무리는 이제 부터다. 돌아온 집 마당에서 타고 온 소를 잊어버리고(忘牛存人), 소를 잊어버린 나도 없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의 단계는 평생을 일궈온 성과와 욕심 마저 내려놓은 평온한 노년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말년이 이 정도면 가히 부족함 없고 만인의 존경 받아 마땅한 군자의 경지다. 그러나 십우도는 이 마저도 부족하다며 한 걸음 더 내딛는다. 본원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반본환원(返本還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에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를 거쳐 ‘산도 없고 물도 없다’는 반전을 거듭하더니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처음으로 돌아왔지만 전혀 다른 경지다. 젊은 날 치기와 방황, 중년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 진정한 탈속의 경지가 아닐 까? 그리하여 복과 덕을 가득 담은 자루를 메고 산 아래 마을로 돌아가는 입전수수(入纏垂手)는 지혜와 경륜, 평생 쌓은 복덕 마저 전부 나누고 베풀되 구분하지 않고 함께 편안하게 어울리는 최고의 삶이다. 

잡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할 나는 그런데, 여전히 소를 찾아 방황하고 있으니 아직 젊다고 웃어야 하나, 나이 값 못한다고 울어야 하나. 새해는 모두 복과 덕을 담은 자루를 메고 세상의 바다로 나아가기를 염원한다. 

△ 백학기는…

전주아시아영화유치단장 역임, <이화중선> 등 시나리오 다수 집필, 전주국제영화제 경쟁작 출품 <앙코르 와트> 제작 총지휘. 시나리오 작가, 시인이며 영화 감독, 현 서울디지털대 객원교수. 

[불교신문3368호/2018년2월10일자] 

백학기 논설위원·시인·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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