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뱃사공이 미륵부처님에게 인도한 것일까

지난 1월12일·13일 양일간 부여 성홍산 대조사에서 봉행한 ‘53기도도량’ 제23차 부여 대조사 순례법회는 미륵불을 닮은 ‘백제의 미소’를 가득 담아 오는 의미 있는 무술년 첫 순례였다.

‘53기도도량’ 제23차 순례법회가 지난 1월 12일·13일 양일간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홍산 대조사에서 여법하게 봉행됐다. 2006년 9월 ‘108산사순례’ 첫 순례를 시작하고 2016년 10월 회향한 뒤, 2016년 1월 다시 시작된 ‘53기도도량’ 순례도 어느덧 두해가 지나갔다. 고인(古人)의 말씀에 어떤 일을 하든지 ‘첫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했듯이 ‘처음’이라는 말은 늘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한다. 그래서 새해 첫 순례를 떠나는 스님과 회원들의 각오는 늘 새롭고 의미심장하기 마련이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자, 칼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귀를 파고들었다. 매서운 추위였다. 우리 회원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맹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례를 나섰다. 순례를 가는 자의 마음은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회원들의 마음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듯 모두 상쾌하였다. 부여 대조사 입구에 도착하자 대중들이 우리 회원들을 마중 나와 있었다. 새해 첫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주지 임하스님의 합장한 손과 우리 회원들의 합장한 손에 따뜻한 정감이 넘쳐흘렀다. 무술년 첫 순례의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과 함께 합장하는 순간이었다. 날은 추웠지만 덕분에 마음은 따스했다. 

평화의 불을 이운하는 순례회 회주 선묵스님(오른쪽)과 대조사 주지 임하스님.

부여 대조사는 백제 성왕 때 승려 겸익이 창건한 백제의 역사와 흔적이 깊이 스며있는 천년고찰이다. 가파른 계단을 지나 경내에 이르자 원통보전과 삼층석탑이 눈에 들어왔다. 불도량의 아름다움과 그윽함이 천년의 품격(品格)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지만 대조사도 사연이 많은 곳이다. 고려시대에 세운 삼층석탑은 원래 지붕 하나만 달랑 남아있었는데 40여 년 전 스님들이 주변 숲을 샅샅이 뒤진 끝에 석탑의 몸통을 발견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장 크랭캉(Jean Crinquand)’ 신부가 쓴 ‘불유정(佛乳井)’ 약수터도 눈에 들어온다. 

회원들은 첫 순례 기도를 하기 위해 곳곳마다 자리를 잡았다. 멀리 성홍산에서 불어오는 매찬 겨울바람이 한 차례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절마당 바닥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올라왔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무릎은 시렸고 손은 빨갛게 물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순례의 길이 어찌 편할 수만 있으랴. 선재동자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한 생을 53선지식을 친견하기 위해 멀고 먼 길을 순례하지 않았던가. 우리 회원들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오늘 23번째 바시라 뱃사공을 친견하러 온 것이리라. 이런 회원들의 마음을 다 아시는 듯 미륵석불이 온화한 미소로서 순례자들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그건 다름 아닌 백제의 미소였다. 

미륵불은 불교의 미래불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 56억7000만년 후에 사바세계에 출현하는 부처님이다. 그 세상은 이상적인 국토로서 유리처럼 맑고 깨끗하고 꽃과 향으로 뒤덮여 있는 곳이다. 인간의 수명도 8만4000세나 되고 위덕과 지혜가 가득한 용화세계이다. 

지금 이 자리에는 마치 미륵부처님이 미리 오신 듯 했다. 무술년의 첫 순례에 나선 우리 회원들의 얼굴도 어쩌면 대조사 미륵석불의 미소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회원들은 원통보전 앞에서 한해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평화의 불’을 상징하는 연꽃초로 원을 그리며 놓은 뒤 육법공양, 천수경과 사경, 안심법문, 나를 찾는 108참회기도를 여법하게 봉행하고 선묵혜자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올해 우리는 첫 순례를 미륵도량으로 유명한 부여 대조사에 왔습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눈을 뜹니다. 선지식들은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눈을 뜨지 못한다는 건 뭘 말하지요. 바로 생사의 갈림길을 뜻합니다. 제가 오늘 왜 이런 법문을 할까요. 오늘이 바로 무술년의 첫 순례이기 때문입니다. 무술년 이곳에 여러분이나 스님이 건강한 몸으로 순례를 왔다는 그 사실이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좋은 날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신 대조사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미래불로 수기를 받았던 미륵부처님이 상주하신 곳입니다. 우리는 오늘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23번째 선지식인 바시라 뱃사공을 친견하러 왔습니다. 선재동자는 그에게 무엇을 배웠을까요? 바시라 뱃사공이 선재동자에게 준 가르침은 항상 거친 바다를 오고가는 뱃사공처럼 중생들을 부처님의 공덕바다로 잘 인도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선지식은 따로 없습니다.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스님이 선지식이요, 대조사 주지 임하스님이 선지식이요, 옆자리에 앉은 도반이 바로 선지식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대조사 주지 임하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백제의 역사와 흔적이 깊이 스며있는 아름다운 부여 대조사에 오신 선묵혜자스님과 회원 여러분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절 마당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성홍산 골짜기가 쭉 빠져나가는 명당에 대조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왕 이곳에 오셨으니 올 한해 미륵불을 닮은 미소를 담아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오늘 대조사에서 올린 기도가 꼭 성취되길 바라며 돌아가시는 길까지 미륵석불의 가피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회원들은 부여 대조사 순례를 봉행한 뒤 기와불사와 직거래장터, 국군장병 초코파이보시,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108약사여래 보시금 수여행사도 가졌다. 

“53기도도량순례는 가장 아름다운 여행”

■ 순례와 가피

<화엄경>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발심, 깨달음을 얻기 위해 53선지식을 찾아 구도(求道)의 길을 나서는 것이 그 요지이다. 내가 9년간의 ‘108산사순례’를 회향하고 지난 2016년 1월부터 ‘53기도도량 순례’를 시작하게 된 것도 선재동자의 구도행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착안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53기도도량순례’는 가치 있고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태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늙어 죽는다, 이를 두고 우리는 일생이라고 한다. 삶도 하나의 여행이다. 그럼 부처님과 범부(凡夫)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부처님은 생(生)의 여행 중에 깨달음을 얻어서 성불을 하셨고, 범부는 탐ㆍ진ㆍ치 삼독(三毒)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육도를 윤회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 우리는 생의 여행 중 절반을 훨씬 지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누구든 기쁨보다 후회가 더 크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또 다른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53기도도량’ 순례도 절반을 지나고 있다. 남은 3년간의 장정(長程)은 자신과의 진실한 약속이다. 우리 회원들은 순례를 회향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속 하나를 지켰음을 알고 스스로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회원들의 얼굴은 언제나 어린 아이처럼 해맑고 곱다. 그도 그럴 것이 매달, 공기 좋고 물 좋은 천년 고찰(古刹)에 와 부처님 앞에 백팔배하며, 지난 한 달간 잘못 살아온 삶을 참회하고, 선지식의 법문들을 듣고, 또한 번뇌를 산사에 놓고 가니 어찌 시름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한 달, 한 달 이런 뜻 깊은 여행을 하다 보면 부처님이 강조하신 중도(中道)와 하심(下心)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여기에 순례의 지극한 뜻이 서려 있다. 중도란 평상심(平常心)을 뜻하고 하심은 한없는 겸손을 뜻한다. 이런 중도와 하심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결코 탐진치 삼독이 머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종교는 중생의 잘못된 욕망을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삶의 여행 속에서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기 위해 존재한다. 

순례의 삶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삶의 여행이다. 부처님은 가피를 그저 얻으려는 사람에겐 주지 않는다. 성실하게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것이 가피이다. 순례를 다니다보면 가족들이 건강하고 가정에 평화가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피이다. 눈으로 보이는 가피만을 구하는 것은 곤란하다. 순례를 꾸준하게 다니다가보면 생활도 규칙적이 되고, 선행을 하면 자연스럽게 신구의(身口意)도 청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명훈가피가 아니겠는가. 순례 그 자체가 바로 엄청난 가피일 수 있다는 말이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순례도 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몸으로 순례를 떠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피임을 명심해야 한다. 선묵스님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ㆍ군종교구장 

[불교신문3368호/2018년2월10일자] 

선묵 혜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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