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충남도의회 인권조례 폐지 가결’ 왜 문제인가?

보수 개신교 주장하는 ‘동성애 반대’ 
대규모 조직 구성해 의원들에 압력
지방선거 앞둔 도의원 ‘표’ 눈치 봐
인권취약계층에 피해 고스란히

조계종 사회노동위를 포함해 100여 곳의 종교·인권·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은 지난 2일 충남도의회가 조례 폐지를 가결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조례 폐지’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충청남도의회(의장 윤석우)는 지난 2일 열린 본회의에서 ‘충남도민 인권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그간 조례 폐지 움직임이 일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를 비롯한 충남지역 인권단체들이 “헌법에서 보장한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무시한 위헌행위”라며 규탄했지만 막아내지 못했다. 끝내 충청남도의회는 도민의 인권을 증진한다는 목적으로 제정한 인권조례를 스스로 백지화하는 선례를 최초로 남겼다. 충남도지사가 도의회에 재의(再議) 요구를 할 수 있지만, 지켜볼 일이다.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는 지난 2012년 제정됐다. 조례에 따르면 “충청도민은 성별, 나이, 외모, 장애, 종교,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충남인권선언을 충남도지사는 이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바꿔 말하면 헌법이 규정한 국가의 인권보장의 내용을 지자체에서 구체화 한 것이다. 당시 ‘지자체가 솔선수범해 헌법의 내용을 세분화해 실현한다’는 점에서 각계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지역 내 보수 개신교에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인권조례는 폐지돼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일부 도의원들도 “충남인권조례는 도민들 간 역차별과 부작용의 우려가 나타나며 이에 따른 갈등관계가 지속되는 실정”이라며 맞장구쳤다. 명분이야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실상은 지역 교회의 입김이 지자체의 입법 활동까지 흔든다는 지적이 일었다.

조례 폐지를 주장한 의원들은 보수 개신교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충남인권선언에 나오는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 대목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에 동조했다. 그러면서도 인권조례와 동성애 조장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다수의 힘’으로 무작정 밀어붙였다. 본회의 상정 전, ‘충남인권조례 폐지를 위한 도민 시국 집회 및 기도회’ 등 무력시위가 잇달았다.

결국 지역에서 견고한 유권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개신교의 압박에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다수의 충남도의원들이 화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한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충남도민의 뜻이 아니라 일부 개신교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헌법으로 규정한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특정 종교의 교리 때문에 폐지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이번 인권조례 폐지안 가결의 최대 피해자는 조례 안에서 보호 받던 사회적 약자들이다. 보수 개신교인들이 반대하는 ‘성 소수자’ 이외에도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이주 노동자 등 인권 취약계층이 인권조례를 근거로 진행되는 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진경아 충청남도 인권센터장은 “인권조례는 폐지 찬성자들이 문제점으로 보는 소수자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도민 전체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라며 “재의의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인권조례 폐지가 확정된다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망까지 없애버리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을 쏟고 있는 조계종의 활동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차별금지 사유인 ‘성적 지향’을 정치 쟁점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정치분야까지 영향을 미친 보수 개신교의 훼방에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도 크고 작은 논란이 재발하리란 예상이다. 때문에 종단이 여론 호도를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도 대두된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사건은 본인이 믿는 종교의 교리를 위해 ‘인권’ 전체를 삭제해버린 일”이라며 “종단에서도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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