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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불상을 찾아서] <6>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강원지역에서만 전해지는 공양보살상
국보 48-2호 월정사 석조공양보살좌상. 사진=문화재청

제4교구본사 월정사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그 앞에 연화대좌 위에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공양하고 있는 모습을 취한 석조보살상을 볼 수 있다. 국보 48-1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한 세트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보살상 또한 지난해 국보 48-2호로 지정됐다. 현재 보살상은 월정사성보박물관에 이운돼 전시 중이며, 탑 앞에는 복원한 보살상이 놓여 있다.

보살상의 명칭은 정확하지 않다. 월정사가 자리한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주석하던 성지 문수보살이라고 하고 또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 공양보살이라고도 한다. 약왕보살로도 불리는데, 고려 후기 문신인 민지(閔漬, 1248∼1326)가 찬한 <오대산사적(五臺山事蹟)> ‘신효거사친견오류성중사적(信孝居士親見五類聖衆事跡)’ 기록이 약왕보살이란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탑 앞에 약왕보살석상이 있는데 손에 향로를 들고 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석상은 절의 남쪽 금강연에서 나왔다고 한다”고 전해 기록을 전하는 당시에는 석조보살상이 약왕보살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약왕보살에 대한 설명은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 잘 설명돼 있다. 약왕보살이 전생에 일체중생희견(一切衆生喜見)보살일 때 부처님을 찬탄하며 자신의 몸을 태워 공양을 올렸는데 그 불이 1200세까지 꺼지지 않았다. 다시 홀연히 화생한 희견보살은 부처님 입멸 전 두 팔을 공양했다. 이처럼 약왕보살은 부처님께 두 차례 소신공양을 했다고 경전에 전해지는데, 공양하는 모습의 보살상이 약왕보살의 고행과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해본다.

보살상은 1.8m 크기로 안정되고 균형 잡힌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고 얼굴은 타원형으로 긴 편이다.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쪽 무릎을 세워 앉아 가슴 앞으로 모은 두 손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뭔가 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사적에서는 향로를 들고 있었다고 서술했으나, 전해지는 유물은 없다.

이 같은 탑전(塔前) 공양보살상은 고려 전기에만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강원도 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유사한 사례로 보물 84호 신복사지 석조보살상을 꼽을 수 있다.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앞에 조성된 이 불상은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과 마찬가지로 탑 앞에서 공양을 올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원통형 보관 위에 천개(天蓋)가 놓여있다는 것이다. 국보 124호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원통형 보관을 쓰고 미소를 지은 모습이 월정사와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과 유사하다. 한송사지 보살상이 10세기 전반, 신복사지 보살상이 10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미뤄보아 월정사 석조보살상 또한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불교신문 3369호/2018년2월14일자]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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