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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읽는 한국禪사상사] <1> 연재를 시작하며옛 선지식 발자취에서 불교 미래비전을 찾다
  • 정운스님 동국대 선학과 강사
  • 승인 2018.02.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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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종주국 한국불교 禪원류
‘동아시아 선 보편성’ 이해 바탕
선종ㆍ선사상사에 이정표 남긴
옛 어른들 진면목 조명해 갈 것 

우리나라 선사들은 중국 선사들의 법맥을 이어받거나 큰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다. 또한 가장 많은 불자들이 구마라집본 <금강경>을 수지독송 하듯 경전과 어록 등에 미친 영향도 마찬가지다. 그가 한역한 경전이 300권이 넘는다. 사진은 중국 섬서성 서안 종남산 초당사 구마라집의 사리탑과 보호각.

불교학이든 불교사이든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역사학자와 불교학자의 견해가 다르다. 또한 같은 내용일지라도 불교학과 선학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게다가 동일한 주제도 문제의식에 있어 재가학자와 승려 입장의 관점이 다르다. 소납은 선학전공인데다 승려 입장이다. 어찌 보면, 내 집안의 일을 관망하기 때문에 주관적인 관점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에 스스로의 브레이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20세기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불교가 서양에 전해진 것”이라며 “동양의 불교가 서양에서 기독교를 대체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몇 년 전 작고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20대부터 명상을 했으며, 미국의 유명한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도 선수 시절 하루 1시간씩 명상을 일상화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2016년 겨울에 발간된 세계 경제잡지 <포브스>에서는 “글로벌 기업 문화에서 명상은 이제 주류 문화가 되었다”면서 세계 CEO들의 명상을 소개했다. 

이처럼 서구에서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대안으로 불교, 이 가운데 선(禪, meditation)을 내세우고 있다. 불교는 더 이상의 동양종교가 아닌 전 세계인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근자 들어 전 세계인에게 선과 명상이 보편화돼 있는 시점에서 조계종은 어떤 카드를 내놓을 것인가? 한국불교의 중심은 조계종이고, 조계종은 선종(禪宗)에 속한다. 게다가 조계종은 세계 유일의 간화선 종주국이다. 16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화두로 삼아야 할 이즈음이다. 

소납은 10년 전, 외국 선방에서 1년여 가까이 지낸 적이 있다. 당시 귀국하면서 ‘앞으로 내가 한국불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씨앗을 마음 밭에 심었다. 그런데 씨앗에 자양분을 주고, 가지를 뻗게 해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로 성장하지 못했다. 늘 원고와 강의로 씨름하며, 밥만 축내며 살았다. 마침 ‘인물로 읽는 한국선사상사’를 연재하면서 한국불교를 위해, 그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부심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는다. 

한국의 선은 중국선을 받아들였고, 우리나라 선사들은 중국 선사들로부터 법맥을 이어받았다. 이에 한국선의 원류에 해당하는 중국의 선사들과 사상을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실은 중국에서 발전된 선은 우리나라뿐만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사상이다. ‘한국선인데, 왜 중국의 선을 먼저 언급하냐?’는 경고 카드를 내밀지 않았으면 한다. 

이 원고의 전체적인 조망도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시대별로 불교 사상과 선사들의 선사상을 살펴본다. 즉, 한국 선의 원류가 되는 동아시아 선의 보편성을 언급하고, 이어서 한국의 선종과 선사상사에 이정표를 남긴 옛 어른들의 진면목과 사상을 살펴본다. 고대 선사의 발자취를 현대적 관점으로 정확히 인식한 뒤, 한국불교의 미래지향적 비전을 담고자 한다. 

동아시아불교의 시발점 

한국불교의 원류는, 물론 석가모니부처님의 진리가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중국불교로부터 전래됐다. 중국에서 받아들여 발전시킨 선은 곧 동아시아불교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중국에 불교가 전파된 경로는 여러 이설이 있지만, 역사적인 전거에 의하면, 67년 후한 효명제(58˜75 在位) 시대이다. 중국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통해 대승불교를 받아들였다. 중국이 불교를 처음 받아들일 무렵, 인도와 스리랑카에서는 불교가 비약전인 발전을 하는 때였다. 즉, 스리랑카에서는 B.C 94년에 대사(大寺)에서 빨리(pli) 대장경이 결집되었다(곧 승려들이 암기해왔던 것을 처음으로 문자화함). 또한 1세기 무렵, 당시 인도에서는 대승불교가 싹트고 발전하고 있었지만, 이전의 상좌부불교도 함께 존속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여러 정황을 볼 때, 중국에 처음 유입된 불교는 대승만이 아닌 상좌부불교 사상이 함께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안세고의 <안반수의경>이 번역되었고, 지루가참이나 축법호에 의해 선 관련 경전이 한역되었고, 초기 습선자들이 있었다.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인도 상좌부불교나 스리랑카불교 보다는 대승불교 사상이 중국인의 코드에 맞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즉, 중국인의 습성에 대승불교 사상이 더 매료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에서 외래 종교인 불교가 중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데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5호16국시대(4세기˜5세기)에 불교가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북위 때는 극도로 성행하게 되었는데, 그 상징물이 바로 현재 세계문화유산급이다. 위·진 남북조시대 이후, 경전 번역이 성행하였다. 수대부터 이 경전을 중심으로 여러 종파가 형성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역경승으로는 구마라집(344˜413), 보리유지(?˜527), 진제(499˜567) 등 수많은 역경사들에 의해 역경이 이루어졌다. 이들에 의하여 소·대승의 경율론 삼장이 중국에서 거의 한역되었다. 

수·당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한역된 경전을 중심으로 종파불교가 형성되었다. 여러 종파가 생겨났다가 단멸한 종파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8종이다. 8종은 천태종, 법상종, 밀교, 남산율종, 삼론종, 정토종, 화엄종, 선종이다. 당나라 시대는 중국 역사상 문화적으로도 최고였지만, 불교도 최고의 불학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운데 화엄학과 천태학은 중국불교의 정화라고 할 만큼 중국적 사유가 깃든 고도의 철학적인 면이 담겨 있다. 

중국에 불교가 처음 유입되었을 때와는 다르게 후대로 갈수록 중국인의 실용성 추구와 실천 성향의 종파인 선종과 정토종만 남고, 그 이외 교종은 거의 단멸되었다. 이 점은 지금까지도 중국불교에 흐르고 있는 성향이다. 

중국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불교가 중국에 유입된 이래 중국에서 불교가 발전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 점을 보자. 첫째, 불교사상이 원융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불교가 중국에 유입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중국문화와 결합하였다. 인도문화는 신비적이고, 환상적이며, 상상력이 매우 풍부하다. 이 점은 불교경전에도 드러나 있다. 반면 중국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며, 현세지향적인 문화이다. 방거사(?˜808)의 게송에서 보면 “신통과 묘용은 물 긷고 땔나무 줍는 일이로다(전등록)”라고 하였다. 즉,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성향이 바로 이점이다. 인도 사상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사람들은 장자와 노자이다. 이들은 현실을 초월한 면에 있어서는 인도 선사상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장자는 넓은 바다와 하늘에 초월한 상상력은 인도의 선사상과는 다른 점이 있다. 장자는 구름을 타고 비상해 대붕(大鵬) 위에 올라타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그 후 도교는 장생불사의 약을 먹고 천계(天界)에 오르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당연히 도교의 도사들은 사람들과 떨어진 깊은 산속에서 거주하는 측면이다. 8세기 중엽에 형성된 조사선(祖師禪)도 중국적인 사유(도교)가 깃든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인의 성향이나 민족성이 불교에 가미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중국에 한자 문화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불교가 처음 유입되면서 불경 한역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던 점을 보면, 그 배후에는 한자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곧 불교라는 본체에 중국문화라는 옷을 입었지만 인도와는 다른 성향의 불교가 형성, 발전됐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중국인들은 유교와 도교의 한계점을 불교에서 찾았다. 도교는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중국의 민속신앙이나 다름없다. 구마라집의 한역 이전, 도교 사상에 견주어 불경을 번역했기 때문에 ‘격의불교’라고 한다. 그런데 구마라집에 의해 어느 정도 격의불교가 극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도교는 실제 수행적인 측면이나 정교화된 교리가 부족했다. 실은 당나라 때, 도교에서도 경전을 만들어 도장(道藏)이라고 했는데, 불교 경전을 본 따서 만들었다. 또한 도교에서 행하는 의례도 불교에 비추어 형식화였다. 유교 문제를 보자. 유교는 종교적인 차원보다는 자신을 수양하고, 부모에게 효를 다하며, 국가에 충실한 인간의 기본 윤리를 받침으로 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5대 종교 가운데 유교는 포함되지 않는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중국의 사상계는 불교교리로 인해, 크고 넓은 시야로 발전했다. 또한 불교는 송나라 때 성리학이나 명나라 때의 양명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와 같이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유교와 도교가 종교로서나 사상면에 있어 불교 영향권 아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 정운스님은…

1982년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운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계종단의 교육과 연구를 전담하는 교육아사리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구법-선의 원류를 찾아서>, <경전숲길>, <동아시아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명상>, <대승경전과 선사상> 등이 있다. 

[불교신문3366호/2018년2월3일자] 

 

정운스님 동국대 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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