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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사지서 대석단기단 발견...왕실사원 실체 드러나십이지신상, 금동불입상과 보살입상 7점 출토
  • 경주지국=이은정 기자
  • 승인 2018.02.0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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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서 금동불입상과 보살입상이 출토됐다.

사적 163호 경주 낭산 일원 황복사지에서 대형 석돌로 정교하게 쌓인 기단과 십이지신상, 금동불입상과 보살입상이 발견돼 신라 왕실사원으로 황복사지 위상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경주시와 (재)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은 지난 1월31일 경주 낭산 일원에서 황복사지 유적 2차 발굴현장 공개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황복사지 삼층석탑의 동쪽으로 약30m 떨어진 경작지(4670㎡)를 대상으로 지난해 8월부터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조사 결과 신라왕실사원의 위엄을 보여주는 대석단(大石壇) 기단 건물지, 십이지지신상(十二支神像) 기단 건물지와 함께 회랑(回廊,지붕이 있는 긴 복도)지, 담장 터, 배수로, 도로와 연못 등이 확인되었고, 금동불입상과 금동보살입상 7점 등 10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대석단 건물지 전경

황복사(皇福寺)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654년(진덕여왕 8년) 의상(義湘)대사(625~702)가 29세에 출가한 곳으로, 1942년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37호)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황복사탑 사리함(舍利函) 뚜껑에서 확인된 명문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을 통해 신라 왕실의 종묘적 기능을 한 왕실사원일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왕실사원의 위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석단 기단 건물지는 내부를 회랑을 돌린 독특한 구조로 이는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은 가람배치 방식으로 황복사지의 중심 건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쪽의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에 덧붙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남쪽 면에는 돌을 다듬은 장대석을, 북쪽 면에는 자연석을 쌓아 약 60m에 이르는 대석단을 구축한 후 전면 중앙부 북쪽에 돌계단을 설치하였다. 아직 정확한 사역과 건물의 배치가 확인되진 않았지만 탑의 위치가 금당보다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탑이 별도의 공간을 점유하는 동당서탑 배치의 탑원식 가람으로 나원리사지, 창림사지 등에서도 확인된다.

출토된 십이지신상 중 토끼.

서쪽건물지에서는 기단으로 사용한 평상복 차림의 토끼, 뱀, 말, 양으로, 십이지상 4점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인 1928년 노세 우시조(能勢丑三·1889~1954)가 발굴해 현재 사진이 남아 있다. 이후 다시 땅에 묻혔다가 9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 십이지신상은 신라왕릉의 십이지신상과 비교했을 때 조각미가 뛰어나고 김유신묘, 헌덕왕릉의 십이지신상보다 앞서는 8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박광열 성림문화재연구원 원장은 “이번 출토유물로 미뤄볼 때 유적의 성격은 당시 최고의 격조 높은 건축물로 추정되고, 대석단 기단 건물지는 당대 최고이자 최초”라고 언급하면서“계속 발굴을 해봐야 알 수 있지만 이후 조성된 불국사와 비교 검토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봄부터 이번 조사지역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이 구역을 더 발굴할 계획이다. 점차 구역을 넓혀 조사하다보면 황룡사에 버금가는 황실사원으로서의 황복사지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발굴조사지역 전경. 사진=문화재청
대석단 건물지 계단지 세부
출토된 유물.

경주지국=이은정 기자  bibianlej@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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