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영선사 겨울 별미

겨울철 절집 별미 ‘무왁자지’.

김소희 윤정진 유명 셰프도
다녀간 사찰음식 특화사찰

'왁자지글~' 볶은 무왁자지
바락바락 씻어 부친 물미역전
“맛내려면 더하기보다 덜어내야”

어금니 절로 꽉 물리는 매서운 날씨, 뜨끈한 밥에 따뜻한 국물 생각이 간절하다. 겨울 별미 찾아 떠난 길, 대전 시내를 돌고 돌아 찾은 영선사 공양간에 들어서자 소박한 밥상이 반긴다. 무 조림, 시래기된장국, 시금치나물, 두부조림, 연근조림... 김소희, 윤정진 등 국내 최고 셰프들이 레시피를 배워갔을 정도로 유명세를 탄 사찰음식특화사찰답지 않게 평범하기 그지없는 밥상이다. “별 거 없네”하며 밥 한 숟가락에 무 조림을 올려 입안으로 밀어 넣는 순간, 입 안에서 터지는 단 맛과 눈 녹듯 사라지는 식감에 할 말을 잃는다.

겨울철 절집 단골 메뉴인 무왁자지는 영선사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한창 맛이 든 겨울 무를 듬성듬성 잘라 고춧가루, 간장과 함께 졸여내는데, 졸이기 전 무를 먼저 들기름에 달달 볶는다. 이 때 ‘왁자지글~’하는 소리가 난다해서 무왁자지라 이름 붙여졌다는 속설이 있다. 겉모습은 그저 그래도 한 조각 입에 넣으면 팍 터지는 무즙에 먼저 놀라고 촉촉하게 부셔지는 식감에 눈이 번쩍 뜨인다. 코끝까지 진동하는 기름 냄새도 기가 막힌다. 간이 세지 않은데도 먹을수록 입안에서 녹아드는 담백하고 개운한 맛이 자꾸 젓가락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영선사 회주 현도스님은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도는 음식”이라며 “고춧가루와 뜨거운 기름이 만나면 매케한 연기 때문에 콜록콜록하면서도 스님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 열심히 달달 볶는다”고 설명을 보탰다.

영선사가 사찰음식으로 유명세를 탄 건, 주지 법송스님 역할이 크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식에 지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요리법만으로 재료가 가진 맛을 최대한 살려내는 스님의 자연 밥상이 입소문을 타면서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쇄도할 정도다.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법송스님 요리 비결은 바로 ‘꾸미지 않은 맛’.

은사 스님으로부터 손맛을 그대로 물려받은 영선사 주지 법송스님 요리 비법은 “불필요한 맛을 가하지 않는 것”.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 맛을 살리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밀가루 냄새가 날까 부침개를 사용해 물미역전을 꾹꾹 누르는 법송스님.

그 때문인지 영선사 공양간은 허전할 정도로 휑~하다. 아침마다 30분 거리에 떨어진 재래시장에서 그날 쓸 식재료는 바로바로 사고, 적지도 많지도 않게 먹을 만큼만 만들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맛만 낸다는 스님의 말마따나 조미료라고 해봤자 신도들과 철마다 직접 만드는 집된장, 집간장, 수제 조청, 천일염 정도가 전부다.음식은 ‘멋’ 보다 ‘맛’이 있어야하고, 맛내기에는 ‘더하는 것’ 보다 ‘빼는 것’ 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법송스님은 소금 하나를 쓰더라도 그냥 쓰는 법이 없다. 스님은 “나물을 삶을 때 습관처럼 소금을 넣게 되는데 그러면 맛이 한 번 더 입혀지게 된다”며 “여러 가지 조미료를 넣는 것 보다 불필요한 조리는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음식의 제 맛을 살린다”고 귀뜸했다.

맛있는 건강식이 차고 넘치는 요즘 세상에 화학조미료‧오신채 안 쓰는 사찰 음식이 뭐 그리 대수냐 싶지만 영선사 음식은 생소하면서 알수록 재밌다. 겨울이면 바닷가 사찰에서 포대자루 째 보내주던 물미역을 겨우내 생으로 먹고 데쳐서 먹고 부쳐서 먹던 물미역전도 그 중 하나. 법송스님 표현에 의하면 ‘먹다 먹다 지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란다.

물미역을 딴 지 얼마 되지 않은 처음 며칠은 미역을 씻지 않고 그대로 먹어도 제 맛이 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신선도가 떨어지면 천일염에 바락바락 씻어 초고추장을 찍어 먹어야 맛이 더 난다. 며칠 더 지나면 미역을 물에 데쳐서 먹는데, 그렇게 먹고 먹어도 미역이 남으면 이 때 밀가루 옷을 입혀 기름에 지져내는 것이 ‘물미역전’이다. 법송스님은 “사찰음식이라해서 별다를 것은 없다”면서도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성으로 만들면 크게 뭘 더하지 않아도 제 맛을 내는 음식이 된다”고 했다

‘물미역전’.
물미역전.

법송스님에게 사찰음식을 배우러 찾아오는 신도들도 이미 여럿, 시내 작은 포교당이지만 자원봉사자만도 60여 명에 달한다. 빼어난 음식 솜씨 못지않게 사람도 살뜰하게 챙기는 까닭이다.

신도들이 한나절 꼬박 정성으로 빚어낸 덕분인지 밥맛이 꿀맛인데 법송스님이 옛다 한마디 한다. “손님 왔다고 예쁘게 담으려 음식이 이리저리 그릇을 옮겨 다녔구만! 어째 음식에 기가 빠졌다 했어.” 때깔만 보고도 정성이 든 음식인지 아닌지 귀신같이 알아차리곤 했던 은사 성관스님 손맛을 그대로 물려받은 타박이다. 법송스님 애정 가득한 질책에 신도들이 “우리 스님 또 그러시네”하며 수줍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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