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불기 2562 (2018).10.18 목

사이드바 열기
상단여백
HOME 수행&신행 수행&법문 다시 듣는 사자후
[다시 듣는 사자후] <28> 효봉스님 - 1978년11월26일자 ‘이달의 설법“무심하고 버리는 궁극 목적은 부처되는데 있다”
판사라는 ‘화려한 직업’을 버리고 출가한 효봉스님은 생사문제 해결을 위해 오직 참선수행에 몰두하며, 후학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부처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백가지 지혜가 ‘무심’만 못해
마음에 집착 없으면 뒷생각이
저절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니

이치를 알면 단박에 부처 되고
그렇지 못하면 만겁 수행해도
헛수고일 뿐 道는 이루지 못해

○…마음과 짝하지 말라. 무심(無心)하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하니라. 만일 마음과 짝하게 되면 움쩍만 해도 곧 그 마음에 속느니라. 그러므로 이조(二祖) 혜가(慧可)가 달마(達磨)대사에게 “제자의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할 때 달마대사는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하게 해 주마”라고 하였다. 혜가가 “안이나 밖이나 중간에서 아무리 그 마음을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습니다” 하자 달마는 “그대 마음을 이미 편하게 해 주었노라”라고 하였다. 이 도리는 마음을 찾아 마음이 없음을 알았으니 그것은 편안한 마음을 찾은 것이므로 어디서든 편하지 않겠는가. 그로부터 허공이 홀로 드러나 여전히 봄이 와서 꽃이 피었던 것이다.

우리 세존께서 성도한지 3000년이 가까운데 바른 법이 지금보다 더 쇠퇴한 적은 없었다. 왜 그러냐 하면 선교(禪敎)의 무리들이 제각기 견해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교학자들은 마치 찌꺼기에 참착하여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는 것과 같아서, 교(敎)를 말할 때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깨달아 들어가는 문이 있는 줄 알지 못하고 곧 사견(邪見)에 떨어져 있으며 선학자들은 이른바 본래부터 부처가 되었으므로 미혹(迷惑)도 없고 깨침도 없으며 범부도 없고 성인도 없으며 닦을 것도 없고 증(證)할 것도 없으며 인(因)도 없고 과(果)도 없다하여 도둑질과 음행과 술 마시기와 고기 먹기를 마음대로 감행하니 어찌 가엾지 아니한가. 

이 일을 밝히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바다 속에 들어가 육지를 다닐 수 있는 수단과 번갯불 속에서 바늘귀를 꿰는 눈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머리는 날마다 희어가고/ 산빛은 언제나 푸르러 있네/ 사람과 산을 모두 잊어버리면/ 흰 것도 없고 푸른 것도 없으리” 

○…영가(永嘉)스님의 말에 “마음은 감관이요. 법은 경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 거울 위의 흔적과 같은 것이니 마음의 때를 모두 지워버리면 비로소 광명이 나타나고, 마음과 법을 모두 잊어버리면 그 성품이 곧 진실이다”라고 하셨다. 이 말은 망상을 쉬고 마음을 닦는 방편으로 가장 친절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저 나그네가 부질없이 그런 말로 후학(後學)들로 하여금 깨진 기왓장 속에 그대로 머물게 하는 것이다. 

이 산승(山僧)은 그렇지 않고 이렇게 말하리라. 즉 조계의 거울에는 본래 티끌이 없는데 깨끗한 그 성품에 무슨 흔적이 있겠으며 처음부터 덮지 않았는데 무엇이 다시 나타나겠는가. 이 광명은 허망한 것도 아니요 진실한 것도 아니다. 

눈 밝은 사람 앞에 어두움이 석자로다.

도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백가지 지혜가 하나의 무심(無心)만 못한 것인 그 마음에 집착이 없으면 뒷생각이 저절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심의 법을 얻으려거든 그 마음이 항하(恒河)의 모래처럼 되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등 여러 하늘이 밟고 가거나 오더라도 그 모래는 기뻐하지 않고 소, 말, 개, 돼지, 독사, 개미, 땅강아지들이 밟고 가거나 오더라도 그 모래는 성내지 않으며, 금, 은, 동 보물과 향, 꽃 등을 거기에 뿌리더라도 그 모래는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 마음 쓰는 것도 그러해야 하나니, 만일 단박에 무심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겁(劫)을 두고 수행하더라도 끝내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다음에는 모두 버리는 것이다. 안팎의 마음과 몸을 모두 버리고 지금까지 지은 복덕도 모두 버리며 모든 경계에 집착 없는 것을 모두 버림이라 한다. <금강경>에 말한 바와 같이 과거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하였으니 그것은 과거를 버리는 것이요, 현재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하였으니 그것은 현재를 버리는 것이며, 미래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하였으니 그것은 미래를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삼세의 일을 모두 버려야 비로소 불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니, 위에서 말한 무심과 버림의 궁극 목적은 부처되는 데 있다. 

불교신문 전신 대한불교 767호(1978년11월26일자) 2면에 실린 효봉스님의 ‘이달의 설법’. ‘마음’ ‘자성’을 주제로 한 세 가지 법문을 엮었다.

그런데 부처에는 삼신(三身)이 있으니 이른바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이다. 법신불은 자성의 허통(虛通)한 법을 말하고, 보신불은 일체의 청정한 법을 말하며 화신불은 육도만행(六度萬行)의 법을 말한다. 그러므로 법신불은 설법하되 언어, 문자, 음성, 형상 등을 빌지 않고 다만 자성의 허통한 법만을 말할 뿐이니 가히 말할 법 없는 것이 바로 설법인 것이다. 

보신불과 화신불은 설법하되 언어, 문자 등을 빌어 오직 세간, 출세간의 법만을 말하므로 그것은 참부처가 아니며 또 설법이 아니다. 위에서 삼신불(三身佛)을 말하였지마는 그것은 다 한 정명이란 마음이요 육화합이란 육근(六根)이다. 육근은 다 진(眞)과 합하는 것이니 구체적으로 말하면 눈은 빛깔과 합하고, 귀는 소리와 합하며 혀는 맛과 합하며, 몸은 감촉과 합하고, 뜻은 법과 합한다. 이렇게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이 화합해 육식(六識)을 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십팔계(十八界)다. 그러나 만일 이 십팔계가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알면 그 여섯 가지 화합을 거두어 한 정명이 될 것이다. 그 정명이란 곧 마음이다. 옛날 세존께서 가섭을 불러 자리를 나누어 마음을 전하시니 그것이 곧 말을 떠난 설법이다. 만일 그 분부하신 도리를 깨우쳐 알면 아승지겁(阿僧祗劫)을 지내지 않더라도 곧 부처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이 삼계의 불타는 집에 누가 그 큰 법왕인고? 그는 석가도 아니요 미륵도 아니다. 오직 대중의 눈동자에 맡기노라.” 

○…연기와 구름이 흩어지니 외로운 달이 스스로 밝고 모래와 자갈이 다 없어지니 순금이 저절로 드러난다. 이 일도 그와 같아서 미친 마음이 쉬면 그곳이 바로 보리(菩提)이니라. 이 깨끗하고 미끔하고 밝은 성품은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며 밖에서 구할 것도 아니니 다만 자기가 안으로 살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 세존께서 처음으로 이 일을 깨치고 푸른 연꽃 같은 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시고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딱하고 딱하도다, 내가 일체 중생을 관찰하니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갖추고 있건만 망상과 집착으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그러므로 망상만 떠나면 무사지(無師智)와 자연지(自然智)와 무애지(無碍智)가 모두 나타날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부처님은 진실을 말하는 분이신데 어찌 우리를 속이겠는가. 만일 이 이치를 믿거든 당장 서슴지 말고 처단하여 아주 쉬어버리면 곧 온갖 풀잎 끝에 조사의 뜻이 분명해 질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게 되면 벗어버려야 할 생사도 없고 구해야 할 열반도 없다. 왜냐하면 거기는 생사가 없으므로 그 본체는 편원(偏圓)을 뛰어났고 생각은 비록 옮겨 흐르나 본래의 묘한 광명은 홀로 빛나기 때문이다. 만일 그 뜻을 잃으면 여러 겁의 수행도 헛된 노력일 것이요, 그 미묘한 문에 들어가면 단박에 부처를 이룰 것이다. 

문성 영가여, 위에서 말한 법문을 알겠는가? 알 수 있다면 천당과 불찰(佛刹)을 마음대로 소요할 수 있겠지만 혹 그렇지 못하거든 이 산승의 말후(末後)의 게송을 들으라. 

“아득하여라. 저 공겁 밖에 따로 한 천지가 있나니 그 집의 사람들은 다 늙지 않고 그 산의 나무들은 뿌리가 없네.”  

■ 효봉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스님(1888~1966)은 평안남도 양덕에서 출생, 26세 때 법관이 됐으나 판사생활 10년 만에 법복을 벗었다. 3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참회와 고행의 길을 걷다가 1925년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의 석두(石頭)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법명은 원명(元明), 법호는 운봉(雲峰). 이후 깨달음을 위한 용맹정진에 들어간 스님은 1932년 금강산 법기암에서 대오하고, 유점사 동선스님을 계사로 구족계와 보살계를 받았다. 1936년 한암스님과 만공스님으로부터 도를 인가받고 송광사, 해인사, 표충사 등에 주석하며 선풍을 진작시켰다. 스님은 송광사 삼일암(三日庵)에서 조실로 10년을 머물면서 후학들에게 길을 열어 보였다. 또 이 무렵 정혜쌍수(定慧雙修)에 관한 확고한 신구도관을 가지게 됐다. 

8·15광복 이후 해인사에 가야총림(伽倻叢林, 현 해인총림)을 개원하자 스님은 초대 방장으로 추대됐다. 1962년 통합종단 조계종 초대종정에 추대돼 종단의 기틀을 다졌던 스님은 1966년 10월15일 표충사 서래각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랍 42년, 세수 79세. 스님은 입적하는 날도 “스님, 화두가 들리십니까?”라는 물음에 “무(無)라 무(無)라 무(無)라”고 답하고는, 세상과의 인연을 마쳤을 만큼 평생 화두를 놓지 않았다. 

[불교신문3364호/2018년1월27일자] 

정리=김형주 기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SNS에서도 불교신문
뉴스를 받아보세요"

kakaostory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