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종사자나 선출직 공무원 등에 의한 종교차별 행위에 대한 징계는 사실상 어려워 강력한 입법이나 불교계의 따끔한 대응이 필수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사진은 지난해 12월7일 세종시청 브리핑실에서 시의회의 전통문화체험관 예산 삭감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세종시불교사암연합회 스님들의 회견 모습.

신년 벽두부터 지방자치단체의 종교편향으로 불자들의 가슴이 멍들었다. 서울 종로구는 지난해 12월부터 관내 보행자 안내표지판을 새로 교체하면서 조계종총본산 조계사를 가리키는 표식으로 엉뚱하게 십자가를 넣었다. 이를 확인한 종단 관계자들이 지난 16일 구청을 찾아가 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자 종로구는 “실수인 것 같다”며 “업체에서 만든 표지판 내용을 제대로 검수하지 못한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곧바로 종로구는 잘못된 부분을 스티커로 덮으며 땜질 처방에 나섰다. 1월 안에 표지판을 전면 교체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불교문화체험관 건립지원 관련
세종시의회 '예산 삭감' 소동
조계사 표지판에는 십자가 '표식'

종교편향 공무원 징계 어렵고
불자들은 '착해' 인식도 만연

강력한 대응... 따끔한 징법 필요
차별금지법 제정이 궁극적 해법 

올해는 '범불교도대회 10주년'이 되는 해다. 2008년 8월27일 전국의 20만 스님과 불자가 서울시청 광장에 운집해 당시 이명박 정부의 지속적인 종교편향과 헌법파괴 행위를 규탄했다. 범불교도대회에서 표출된 불자들의 분노에 놀란 정부와 정치권은 나름 성의를 보였다. ‘국가 공무원 복무규정’에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있어 종교 등에 따른 차별 없이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4조 2항). 종교편향과 차별을 국가차원에서 막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국회는 ‘국가공무원법 59조2(공무원은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를 신설했다.

그래도 국가기관과 공직자들의 불교폄훼는 잊을 만하면 반복된다. 본지 보도에 따르면 대구시립합창단의 노골적인 찬송가 공연(2014년), 서울시 교육청의 특정종교 상징 포스터 전국 800여 개 유치원 배포(2013년), 광주 모 공립고등학교의 전교생 예배 강요(2012년), 국가보훈처의 현충일 행사 찬송가 연주(2011년)가 해마다 거듭됐다. 지난 연말엔 세종시 한국불교문화체험관 지원예산 삭감과 도로표지판 '사찰' 표지 삭제가 있었다. 강산이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으나, 불교에 대한 공격과 홀대는 깔끔하게 바로잡히지 않았다.

공적 영역에서의 비일비재한 종교편향의 원인으로는 우선 공무원들의 비뚤어진 종교관이 꼽힌다. 우리 사회의 주류인 개신교인 특유의 신앙에 대한 충성심과 타종교에 대한 배타심이 시정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재발하리란 전망이다.

더구나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는 고위공직자들이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할 경우, 극심한 국민 분열과 국가적 재앙을 촉발할 수 있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타종교를 폄훼하고 깎아내리는 것만이 본인이 믿는 종교를 선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웃 종교인들이 존재한다”며 “이들이 공무(公務)에도 공격적 선교 방식을 남용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치(法治)는 아직도 느슨하다. 종교중립을 명시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한 공무원은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만 두루뭉술한 ‘위반의 정도’를 갖고 판단하는 만큼, 실효성 있는 처벌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종교차별신고센터’도 신고 접수 후 심의의 통해 피고발자의 행위를 판단한 뒤 합당한 조치를 시달할 뿐 처벌권한이 또한 해당 기관에 있기 때문에 강력한 처벌은 요원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처벌에 미온적인 공무원사회의 오래된 정서 역시 ‘솜방망이’ 수준의 징계에 한몫하고 있다.

불자들 스스로 권리 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도 대두된다. 최근 제6교구본사 신도회와 세종시신행단체연합회 등이 세종시 한국불교문화체험관 건립 반대 집회를 주도한 일부 개신교 단체에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죄’로 고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역 불교계가 종교편향 사례에 대해 단호히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란 평가다.

이날 고발장을 접수한 김동협 세종시신행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건립되는 불교문화체험관을 마치 편법과 특혜로 진행된 것처럼 호도하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그간 ‘인욕(忍辱)’을 불자의 미덕으로 삼아 소극적으로 일관하던 과거 관행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무엇보다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을 뒷받침하면서 종교를 비롯한 모든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위원)는 “종교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직무를 망각하거나 간과하는 행동이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종교 폄훼 등으로 일어나는 사회적 갈등을 막기 위해서 결국 국가는 이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법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를 설명했다.

[불교신문3364호/2018년1월27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