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허무의 깊은 우물에서 
나를 건져 올린 것은 
산사의 풍경소리와 
독경소리의 두레박이었다

여행을 할 때마다 
나의 스무 살 적 부산여행을 
기억해 내곤하면서 새롭게 
솟아나는 용기를 느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스무 살은 열정으로 온통 가득 차 있었다.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이었다. 그럼에도 내 호주머니는 늘 비어 있었다. 항상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슴에 꿈만을 가득 채우고 틈만 나면 동촌이나 청천으로 나가 금호강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래서인지 갈대 무성한 강가를 적시며 굽이굽이 돌아 흘러가는 금호강은 나에게 왠지 슬프고 아름다운 상여처럼 보였다. 나는 둑에 가득 핀 클로버를 뜯어 강물에 실어 보내거나 파란 색종이를 접어 종이배 만들어 강물에 띄우곤 했다. 그 종이배에는 사랑하는 소녀의 이름과 박인환의 시가 적혀 있었고, 좋아하는 친구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금호강을 만지면서 흘러간 강물은 바다에 당도하여 어떤 꽃으로 피어나는 것일까. 

그해 겨울방학에 부산을 찾게 된 것은 금호강물이 바다까지 흘러가 하나의 화려 장엄한 꽃으로 피어나는 그 위대한 모습의 하구언 바다를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매표하여 부산가는 야간열차를 탔다. 열차는 아직도 겨울의 도시는 어둠과 추위로 다리를 오그리고 있었고, 부옇게 뿜어내는 가로등 빛에도 눈꺼풀이 감겨 있었다. 나는 새벽공기를 뚫고 버스를 타다가 걷다가 하여 여명의 빛이 강물을 적시는 동틀 무렵 낙동강하구에 있는 을숙도에 도착했다. 지금은 큰 다리가 놓이고 을숙도는 인간들이 둥지를 틀면서 오염된 아픈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그때는 말과 같이 자연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과 수를 헤일 수 없이 날아오르고 내리는 겨울 철새들의 장관은 가슴 벅찬 감동이었고 한편의 서사시였다. 

나는 그 오랫동안 들어 온 금호강의 노래가 여기서 오케스트라로 바뀌는 황홀감을 맛보았다. 겨울임에도 초록의 잎으로 누워있는 해안선과 괭이 갈매기의 찬 울음 우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화석이 돼 서 있었다. 하구언 바다는 퍼덕이는 숭어의 비늘 같은 물보라가 수없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하얀 파도의 이빨은 허무의 부리가 돼 나를 마구잡이로 쪼아댔다. 내 안에서 출렁이던 무의미한 분노와 텅 빈 호주머니가 만들고 하던 작은 우울들이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다. 밀려 온 파도가 나의 발자국을 지웠다. 부서져서 바람으로 채워진 가슴에 바다가 걸어서 들어 왔다. 그날부터 나는 가슴에 바다를 안고 살게 되었다. 내 가슴에는 항상 파도가 출렁거렸다. 쉼 없이 흩어져 내리는 파도의 포말과 순간순간의 박탈감이 허무의 발톱이 되어 가슴을 내내 후벼 파곤 했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의미 없이 반복되는 삶이 죽음이라는 것을 나는 낙동강 하구언, 다대포 겨울바다에서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며칠간 몹시 앓았다. 그 후 나는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산을 찾게 됐다. 그리고 산사를 지나면서 듣는 풍경소리와 독경소리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됐다. 지금 내가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창작에 몰두 할 수 있는 것은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과 새로운 산을 오르는 기쁨에서 얻는 수확물이다. 그리고 허무의 깊은 우물에서 나를 건져 올린 것은 산사의 풍경소리와 독경소리의 두레박이었다. 여행을 할 때마다 나의 스무 살 적 부산여행을 기억해 내곤하면서 새롭게 솟아나는 용기를 느낀다.

※ 필자 김찬일 시인은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문학사랑>으로 등단, 대구문인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불교신문3363호/2018년1월24일자] 

김찬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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