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말이나 1월 초가 되면 기자에게 전화를 하는 보살님이 있다.

“기자님, 불교신문사에 계시니 혹시 조계사 달력 좀 얻을 수 없을까요?” 항상 미안해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인사동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주인이다. “몇 개나 필요한데요?” “어…, 한 20개 정도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이 많은 달력이 왜 필요하면 어디에 쓰는 지가 궁금해 자세하게 물어보았다. 달력이 필요한 이는 식당 주인이 아니었다. 자신은 달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들에게 전달만 한다고 했다. 

“꼭 조계사 달력이어야 하나요?” 신문사에 연말이면 우편으로 도착하는 사찰이나 단체 달력이 좀 있어 그것을 전해 주면 되겠거니 하고 물어 보았었다.

“네, 꼭 조계사 달력이어야 해요.” 사연이 궁금해서 자초지종을 물어 보니 거기에 담긴 사연을 들려주었다. 

“제가 자원봉사를 하는 서울역 인근의 노인복지관에는 조계사를 다녔던 어르신들이 많아요. 젊은 시절 조계사에서 신행생활을 했던 추억이 남아 있다고들 해요. 지금은 다리가 아파 조계사까지 다니기가 힘들어 달력 하나 얻어 벽에 걸어놓고 보는 것으로 조계사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들 하세요.”

제주도 출신인 식당 주인은 수년 전 섬에서 혼자 살다가 돌아가신 모친 생각이 나서 수시로 노인복지 시설을 찾아 봉사를 하다보니 부모님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고 했다. 다행스럽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면 조계사 주지 스님도 종무소에서도 흔쾌히 달력을 내어 주곤 했다. 긴 줄을 서서 달력을 한 부만 얻어가는 분들한테는 미안했지만 말이다. 

요즘 사찰을 다녀보면 달력을 주문하는 수량이 부쩍 줄었다. 그만큼 사찰을 찾는 불자들이 줄어들었다는 증거로 보인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 종교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상황에서 부처님 도량을 찾는 인구도 그만큼 줄어드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부처님 도량을 못 찾는 이들도 있다. 조계사의 경우와 같이 전국 사찰도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한 달력보시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유의미한 포교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불교신문3363호/2018년1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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