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에서

시인 백석은 이 시를 1938년에 발표했다. 이 시를 창작했던 당시에 백석은 함흥에 살았다. 함흥의 영생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있었다. 백석의 연인 김자야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때였다. 경성 청진동에 숨어 살던 자야를 만난 후 함흥으로 떠나가면서 이 시를 누런 미농지봉투에 적어 자야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의 첫 연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한다. ‘나’의 가난과 ‘나타샤’의 아름다움이 대비를 이루는 이 시구는 비록 사랑의 감정과 강설(降雪) 사이에 그럴듯한 인과관계가 성립하지는 않지만 연인들에겐 아름다운 문장으로 내내 남아 있다. 백석은 자야에게 만주로 가서 단둘이 살 것을 제안한 적이 있지만 자야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만주와도 같은 곳으로, 둘만의 사랑의 살림이 차려지는 곳으로 ‘출출이(뱁새)’가 사는 ‘마가리(오막살이)’가 제시되어 있고, 자야가 백석의 제안에 ‘고조곤히(조용히)’ 동의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마가리’는 속진(俗塵)을 버린 곳이기도 하다. 

[불교신문3362호/2018년1월20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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