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을 마친 고3 학생들과 함께 한 ‘마음치유 행복여행’ 템플스테이 모습.

수능 시험을 마친 고3 학생들의 일상은 그리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고3 수험생을 위한 마음치유 행복여행 템플스테이’. 서울의 여고 법사님들과 의논하고 일정을 잡아 신청서를 제출하고 학생들을 모집했다. 고맙게도 평소에 교화 활동을 도와주시던 고3 담임선생님들의 협조로 모집을 하고 여고 학생들과 합쳐 버스 2대로 출발했다.

지난 12월6일 가평 백련사. 입재식에 앞서 다 같이 부처님께 3배를 올리고 절 받기를 극구 사양하시는 지도법사 스님께 강권해 절을 올렸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나를 깨우는 108배’. 스님의 죽비 소리와 간간히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경건함으로 가득했다. 스님, 남녀 학생, 지도교사 모두 오롯이 자신과 마주하는 거룩한 만남이었다.

108배를 마치고 포행시간에 밖으로 나서려는데 고즈넉한 산사에 학생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흰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고요함, 깨끗함, 여유, 평화, 그리고 함께하는 즐거움! 이로써 템플스테이는 완성이었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예불을 모시러 가려는데 선불장 기둥 옆에 우산통이 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학생들이 눈을 맞고 옷이 젖을까 염려하여 마련해 둔 것이다. 감동!

대웅전에서 저녁예불을 마치고 선불장에서 스님의 지도로 소금만다라 촛불명상이 진행됐다. 색깔소금을 이용해 만다라를 완성하고, 촛불을 밝히고 명상을 하고 만다라를 다시 흩어트리는 과정이었다. 내가 놀란 대목은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스님께서 색깔소금을 준비한 과정을 확인하고서다. 막대형 파스텔을 사다가 칼로 일일이 긁어서 가루를 만들어 소금에 색을 입혔다는 배경을 알고 다시 감동!

이후 프로그램들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이 모두 즐거움과 어울림의 시간들이었다. 푸짐한 간식까지 차려 주신 덕분에 즐거운 야식파티까지 아이들의 행복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숙소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간식으로 나눠준 귤들이 벽에 부딪쳐 깨져 뭉개지고 과일 즙이 흘러내린 자국이 선명했고, 좌복들도 귤즙에 젖고 물들어 나뒹굴고 있었다. 벽에 묻은 흔적을 열심히 지워봤지만 완전범죄는 성립불가. 슬슬 걱정이 되어 엉망이 된 좌복 피를 벗겨놓았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좌복피는 어느 샌가 말없이 사라졌고 다시 만난 스님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또 다시 감동!

사찰을 재미있는 곳으로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이 지혜롭고 자비로운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찰 종무원들은 말없이 친절하게 봉사하는 분이라고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들에게 백련사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원해 온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고 기대 이상이었다”, “개인적으로 다시 한 번 오랫동안 템플스테이를 체험해보고 싶다”, “정말 잘 챙겨주신 스님 감사합니다.” 학생들이 남긴 소감문의 일부분이다. 괜스레 내가 뭔가를 잘 해낸 교법사 같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그리고 십 수 년 쯤 흐른 뒤에 자녀들 손을 잡고 다시 이곳을 찾는 학생들 모습을 그려보는 건 나만의 상상의 자유일까. 12월의 산사에서 흰 눈과 함께 즐거운 경험을 나눠준 학생들이 대견하고 고맙다.

[불교신문3362호/2018년1월20일자] 

이학주 의정부 영석고 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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