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왔다. 포근했던 어제와 매서운 추위를 지내고 보니 도량의 어느 곳이 음지이고 양지인지 확연히 알겠다. 햇살이 잘들은 곳의 눈은 흔적도 없지만 음지에는 아직도 질척하고 엉망이다. 사람 마음도 응달진 곳에는 햇빛이 들지 않아 엉클어지고 얼어붙어 있으리라. 템플스테이가 마음에 햇살도 들게 하고 따스한 온기도 불어넣어주는 창문이 되길 바래본다. 눈 쌓인 도량 구석구석을 쓸며 긴 호흡으로 투명한 햇살을 지긋이 응시한다. 살아오면서 과연 나는 마음속의 얼어붙은 음지를 어떻게 녹여내고 있는가? 

마음의 음지는 과거의 어딘가에 막혀서 얼어붙게 되는 병이다. 신체의 어딘가가 안 좋으면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마음도 괴롭다고 아프다고 갑갑하다고 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아플 때 문득 나의 몸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에 알맞은 처방을 받거나 스스로 휴식을 취하여 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회복해 낸다. 

마음도 그러하다. 자신의 마음 속 음지, 단단히 얼어붙은 골에 대한 이해는 치료를 돕는다. 어디서 어떻게 막혀서 흐름이 막혔는지 이해하면 순리 안에 들게 되고 원래의 투명한 마음을 회복하게 된다. 우리가 힘들 때 친구에게 고통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간다. 

그러므로 살면서 겪는 괴로움은 일종의 성장제이기도 하고 마음의 음지에 환한 햇살을 끌어들이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실 삶은 과거를 모른다. 수많은 인연의 조합이 순간순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라는 그늘 속에 꽁꽁 얼어 멈춰버린 마음으로 새 삶을 맞이한다. 그늘은 그늘을 만드는 그 무언가를 치우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간단명료하다.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으면 지금 이 현재의 순간에서의 삶과 조화롭게 부드럽게 공존할 수 있다. 그러면 과거를 현재로 끌고 오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득, 이제까지 의지해 왔던 과거의 의지처들을 뚫어지게 직시하는 것이다. 모든 이러저러한 과거의 스토리들을,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해체하고 현장에서 새롭게 직면하는 것이다. 

나 또한 조금 전의 내가 아니고 오늘 해도 어제의 해가 아니다. 그러니 하던 대로, 보던 대로에서 패턴 밖으로 살짝 비껴가보는 거다. 그럼 비켜간 자리만큼 길이 열리고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도 녹아 흐를 것이다. 2018년 새해를 맞이했다. 그 찬란하고 투명한 햇살 앞에 음지와 결별하고 이제 시작된 새 삶을 맑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본다.

※ 필자 선우스님은 1998년 해인사 보현암에서 정지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후 9년여 간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현재 서울 금선사에서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소임을 맡고 있다.

[불교신문3362호/2018년1월20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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