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태양 속 걸으며 한반도 평화 서원하다

옹진군 영흥면 선재도에는 작은 무인도인 목섬이 있다. 만조 때는 섬이였다가 다시 물이 빠지면 선재도와 연결된다. 목섬을 다녀온 사람들이 일몰을 바라보고 있다.

신년 초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북핵문제로 긴장관계에 있던 남과 북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만나기로 했다는 뉴스다. 1998년 금강산 관광을 시작으로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이 가깝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계종에서도 2004년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시작하는 등 남북 불교계가 많은 교류사업을 함께 했었다. 하지만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후 교류가 끊겼다.

이 뉴스를 가장 기다리던 분들은 바로 이산가족들일 것이다. 벌써 남북이 분단된 지 73년이 됐으니 당시 10대였던 사람들도 이미 80이 훌쩍 넘었을 텐데…. 이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지기 시작했고 복잡한 국제관계속에 남북이 다시 만나는 일은 요원하게만 느껴졌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 중 불과 2만7천여 명만 헤어진 가족들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영흥도에 유일한 사찰 통일사. ‘남북통일을 평생의 화두’로 삼고 정진하던 명주스님이 창건했다.

지난 6일 인천 옹진 영흥도를 향해 가면서 남북 관계를 생각난 것은 2000년에 영흥도에서 만난 ‘남북통일은 평생의 화두’라는 스님 때문이다. 당시 도서지방의 불교를 탐사취재하는 <해안불교를 찾아서> 기획에 참여한 적이 있다. 영흥도에는 중박골, 탑골, 절골이라는 지명은 남아 있지만 불교관련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선재도에서는 불교신자가 전무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한 어르신은 “절골이란 지명은 있는데 기와조각 하나 나왔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다”고 전했다. 불교세가 미약한 영흥도에 사찰을 창건한 통일사 주지 명수(선규)스님은 영흥도의 성보 1호였다. 스님께 왜 이렇게 외진 곳에서 사찰명을 군법당 같은 통일사로 지었는지 어떻게 20년 동안 남북통일 기도정진을 하는 지 물으니 스님은 남다른 불연(佛緣)을 얘기해줬다. 출가 전 스님의 남편이 1951년.1.4 후퇴 당시 학도병을 참전했는데 중공군 대부대와 맞서 싸우다가 전우들이 모두 전사하자 자신도 장렬하게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 후 미망인이 된 스님이 그 한을 풀기위해 영흥도 국사봉 아래 통일사라는 사찰을 1983년 창건하고 조국 통일 기원 염불을 계속하고 있다고…. 스님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통일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새해에 남과 북이 서로 대화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뉴스를 들으니 영흥도를 향하는 길 문득 4년 전에 입적한 통일사 명수스님이 떠올랐다. 

장경리해수욕장부터 통일사를 거쳐 국사봉까지 이어지는 1.85km의 통일염원길.

영흥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더 이상 섬은 아니지만 영흥도를 가기 위해 두 곳의 섬을 거쳐야 한다. 대부도와 선재도를 지나 영흥대교를 건너 통일사로 향한다. 예전과 달리 섬은 많이 변해있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펜션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장경리 해수욕장 방면으로 가다가 우연히 오래된 통일사 이정표를 발견했다. 옛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니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거리가 멀지 않아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영흥도, 선재도에는 걷기 좋은 영흥익령군길 17코스 조성되어 있다. 익령군(翼靈君) 왕기(王琦)는 고려 왕족으로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 이후 말을 키우며 살았는데 영흥도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목장이 커지면서 부터라고 한다. 비포장도로는 영흥익령군길의 17코스 중 하나인 통일염원길과 이어졌다. 통일기원 기도를 하던 스님은 떠났지만 그 원력은 길 명칭으로 남아있다. 

‘남북통일이 평생의 화두’였던 명수스님 

명주스님의 공덕비와 부도.

통일염원길을 따라 걸으니 통일사에 다다랐다. 예전에 비해 도량은 많이 커지고 정돈된 느낌이다. 참배를 마친 후 대웅전 아래에 위치한 명수스님의 작은 부도와 공덕비를 찾아 인사를 올렸다. 예전에 마치 오랜 만에 찾아온 손자를 맞이하듯 반갑게 대해준 스님이 떠오른다. 통일염원길은 통일사 위로는 국사봉까지 아래로는 장경리 해수욕장까지 어이진다. 장경리 해수욕장으로 내려간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해변 너머에 거대한 풍력터빈 펼쳐져 있는 이유다. 

영흥도의 또 하나의 명소인 십리포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십리포해수욕장에는 100년에서 150년 된 소사나무 350그루가 있다. 소사나무는 높게 자라진 않지만 소금기에 강하며, 줄기가 잘려져도 새싹이 잘 나오는 등 척박한 조건에 잘 적응하는 나무이다. 해변 모래 위에서도 잘 자라고 있었다. 겨울철이라 잎이 다 떨어져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지 못했다. 십포리해변 바다 건너에 있는 송도국제도시와 인천대교가 이국적으로 펼쳐진다. 춥지만 맑은 하늘, 일몰이 기대됐다. 일몰을 맞기 위해 선재도로 향한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 수 있는 ‘목섬’

미국 CNN은 지난 해 11월 3300개가 넘는 한국에 있는 섬들 중 방문해야 하는 아름다운 섬 33개를 선정했다. 그 중 제일 위에 이름을 올린 곳이 선재도이다. 선재도가 선정된 이유는 홍해와 같이 갈라지는 작은 무인도 ‘목섬’이 있기 때문. 

선재도에서 목섬을 바라보며 일몰을 맞는다. 붉은 기운이 수면에 다가 갈수록 바닷물이 해안으로 몰려오고 밝게 타올랐던 태양은 마지막 사자후를 토해내듯 강렬한 붉음으로 하늘과 바다를 장엄한다. 밀려오는 바닷물에 서둘러 목섬을 빠져나오는 사람들도 발길을 멈춘다. 남북대화가 잘 진행돼서 70년 넘도록 헤어져있는 가족들이 서로 만날 수 있기를 서원한다. 손을 모아 나지막이 불러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불교신문3361호/2018년1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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