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 구법 건축순례행기

의상대사 구법 건축순례행기

김승제 지음/ 조계종출판사
김승제 광운대 건축학과 교수가 의상대사의 당나라 구법행로를 추적한 연구성과물을 책으로 엮은 <의상대사 구법 건축순례행기>를 최근 펴냈다. 사진은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광운대 건축학과 교수
유학시절부터 간직해온
30여년 ‘화두’ 책 출간

의상스님 당나라 구법
행적 추적한 연구 결실
“양주 도착설 확인했다”

화쟁사상을 주창한 원효대사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상대사. 중국 당나라에서 화엄종을 연구하고 돌아와 영주 부석사 등 10여 개의 사찰을 건립하고 화엄의 교종을 확립하는데 힘썼다. 한국불교사의 큰 획을 그은 고승인 만큼 스님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당나라 유학을 마친 귀국 이후에 집중돼 있어 스님의 초기 구법활동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김승제 광운대 건축학과 교수는 1980년대 일본 동경 유학시절부터 이에 대해 의문을 품고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의상스님이 어떠한 행로를 통해 당나라로 이동했고, 유학생활은 어떠했는지, 또한 귀국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을 화두로 삼아 그 행적을 추적했고 30여 년의 시간이 흘러 그 성과물을 책으로 펴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승제 교수가 최근 펴낸 <의상대사 구법 건축순례행기>는 1983년 동경 유학시절 이미 정해놓은 책 제목이다. 당시 일본고대사 서적을 탐독했던 그는 일본 저자들이 어김없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언급한 부분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부석사와 문무왕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책자를 접했고, 의상스님에 대한 호기심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당시 의상의 활동 행적에 대한 기록이 저마다 달라 더욱 혼란스러웠다”는 저자의 말에서도 알 수있듯 의상스님에 대한 연구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기존의 옛 자료를 통해 신라와 중국에서의 행적을 추이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기존의 등주(登州) 도착설이 아닌 양주(揚州) 도착설을 뒷받침하는 기록을 찾았다. 

물론 의상스님과의 직접적인 자료는 아니지만 당나라 양주 대명사의 감진스님이 일본 스님들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여 753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천태종의 시조가 된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838년 엔닌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847년에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당나라에서 겪은 내용을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를 저술했다.

고대에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가는 험난한 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엔닌의 저술을 살피니 배를 타고 일본을 출발해 서해를 건너 양주에 도착한 후 다시 장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장안에서 귀국하기까지 다사다난한 당시의 상황설명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이 책으로 “그동안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궁금증이 한 번에 걷히는 듯했다”는 저자는 곧 엔닌이 다녀온 그 길이 바로 의상스님이 이미 다녀왔던 길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당나라 시대에는 스님들의 이동에 대한 규제 제한 등이 엄격히 이루어진 점과 당시 장안으로 가는 것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의상스님의 행적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으나 기존의 애매모호하고 서로 다른 내용의 입당 과정을 정리하면서 스님이 입당 후 신라로 귀국하기까지의 행적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저자는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비롯해 <의상전교>, <부석본비>, <송고승전>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2016년 의상스님의 발자취를 탐방하는 현지답사 등을 통해 기존의 학설과는 다른 제안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현재 통용되는 ‘625년 출생→초세 19세(643) 출가→26세(650) 영휘원년 1차 입당실패→37세(661) 용삭원년 2차 입당성공’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625년 출생→초세 19세(643) 출가(사도승)→26세(650) 1차 영휘원년 입당실패→ 9세(653) 황복사에서 출가(관도승)→37세(661) 용삭원년 2차 양주 입당성공’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주장했다. 

의상스님이 1차 입당시기까지는 국가의 인가를 얻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불교에 입문한 사도승이었고, 653년 황복사에서 원효스님과 함께 관도승으로 출가했다. 이후 스님은 37세가 되는 661년에 관도승의 자격으로 2차 도당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의상스님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자료 분석과 현장답사는 물론 부처님의 생애에서 시작해 불교교리도 열심히 공부했다. 이어 동북아시아불교사를 탐구했고, 영주 부석사와 경주 석굴암, 양양 낙산사 홍련암 등 불교건축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래서 이 책은 젊은 날 의상에 심취한 한 건축학도가 내놓은 30여 년 불교공부의 결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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